미국이 인도태평양과 유럽이라는 2곳의 전장(theater)에 동시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며 러시아와 함께 중국에 대한 견제 수위를 높였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러시아 지원에 나서지 못하게 중국을 압박해 중러 공조를 약화시키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1일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커트 캠벨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조정관은 28일(현지시간) 미 싱크탱크 저먼먀셜펀드가 주최한 화상 세미나에 참석해 “미국이 2차 대전과 냉전 기간을 포함해 동시에 2곳의 전장에 깊이 관여한 경험이 있다”면서 “행정부와 백악관 내에는 인도태평양 관여에 관한 모든 요소를 유지하려는 깊은 인식과 의도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외교 초점이 현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쏠려있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 외교 정책의 가장 우선 순위인 중국 견제를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이 동시에 진행될 것이란 의미다. 바이든 대통령은 3월 중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정상들과 회담을 주재하고, 5월에는 일본, 호주, 인도와의 대 중국 견제 협의체인 쿼드 정상회의를 위해 일본을 방문한다.
또 미국은 전직 고위 관료들로 구성된 대표단을 대만에 파견키로 해 중국을 자극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마이크 뮬런 전 합참의장, 메건 오설리번 전 국가안보부보좌관, 미셸 플러노이 전 국방부 차관으로 구성된 대표단은 대만을 방문하기 위해 28일 미국에서 출발했다. 이들은 대만의 차이잉원 총통과 추궈정 국방장관을 비롯한 고위 관계자들을 잇따라 만난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닮은 꼴’인 대만에 대한 중국의 침공 우려를 사전에 불식하면서, 중국이 러시아처럼 대만을 무력으로 침공할 경우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사전 경고장을 날린 것이다.
이와 함께 미국은 대러제재에 반하는 행위를 할 경우 중국도 함께 제재할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 국무부 관리는 “만약 중국이나 기타 국가가 우리 제재에 해당하는 활동에 연루되면 그들 또한 우리 제재 대상에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은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의 국제결제망에서 러시아 주요 은행들을 퇴출했고, 기술, 핵심부품 유입을 차단하는 수출규제까지 가했다.
미국은 반미를 공통분모로 삼아 러시아와 밀착 관계를 형성한 중국이 지원에 나설 것으로 보고 중국 금융기관이 러시아의 어려움을 해결해주거나 중국 기술기업이 대러제재를 우회하는지 주시하고 있다.
중국은 대러 제재와 관련해서는 반대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중국 외교부 왕원빈 대변인은 SWIFT 제재에 대해 “중국은 제재를 통한 문제해결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제재에 부닥친 러시아를 경제적으로 지원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민간인을 무차별적으로 죽이고 있는 러시아에 대한 국제 여론이 악화하면서 중국이 러시아를 지원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있다. 사실상 ‘명분’이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중국은 러시아를 두둔하는 듯한 메시지를 보내면서도 노골적인 지지 입장은 지양하고 있다.
미국 등 서방의 압박이 강해지는 만큼 러시아는 중국에 더 강하게 도움을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를 지원하는 중국을 제재하겠다는 것은 러시아에 대한 지원을 더 어렵게 만든다. 미국은 중국이 러시아 지원을 줄여 이번 사태에서 러시아가 더 고립되면 양국 협력이 다른 부문에서도 약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캠벨 조정관은 “중국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 관계를 지속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이것이 중국을 곤란한 위치에 서게 했다”며 “우리 관점에서 볼 때 러시아와 중국 간 매우 공개적이고 심도 있는 제휴가 지금 당장은 꽤 불편하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