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22-03-02 12:48:12
기사수정 2022-03-02 14:50:04
수출통제·금융제재 등 사실상 독자 조치 나서…"추가 제재도 검토"
당초 '독자제재 없다'더니 국제사회 전방위 제재에 기류 바뀐 듯
우크라이나 사태로 국제사회가 러시아에 대한 전방위 제재에 나서면서 미국과 유럽연합(EU) 등보다 제재 수위가 다소 낮아 보였던 한국도 부랴부랴 보조를 맞추는 모습이다.
정부는 당초 대러 독자 제재에 선을 그었지만, 미온적이라는 안팎의 지적을 받은 뒤 최근 전략물자 수출 차단에 이어 러시아 국고채 투자 중단 등 실질적으론 독자 제재에 준하는 조치를 속속 내놓고 있다.
정부는 1일 7개 주요 러시아 은행 및 자회사와의 금융거래를 중지하고 러시아 국고채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며, 전 세계 금융기관이 결제 주문을 주고받는 전산망인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배제를 이행하기로 했다.
일본은 로시야 방크와 대외경제은행(VEB), 방위산업 지원 특수은행(PSB) 등 3개 은행에 대해서만 금융거래를 중지했지만, 한국은 미국에 준해 7개 러시아 은행과 자회사에 대한 거래를 차단한 것이다.
유럽연합(EU)이 SWIFT 배제 대상에 합의한 것보다도 빨랐다.
정부는 이보다 앞서 전략물자에 대한 수출을 차단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전략물자관리원을 통해 전략물자가 러시아로 수출되는 경우 불승인하는 방식으로 심사 제도를 까다롭게 운용해 실질적인 수출 차단 효과를 내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미국이 역외통제(FDPR·해외직접제품규칙)를 적용하기로 한 비전략물자 수출을 통제하는 방안도 추가로 강구하고 있다.
이억원 기재부 1차관이 "전략물자 수출금지를 시작으로 추가적인 제재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고,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도 오는 3일 미 상무부 등 고위층과 접촉하고 FDPR 적용 예외 확보 노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FDPR 적용을 면제받으려면 해당 국가가 미국의 제재에 준하는 대러 제재를 취해야 하는데, 정부는 수출기업을 계도하거나 고시를 통해 수출통제 품목 리스트를 정하는 방식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로의 수출을 제한하는 별도 고시의 도입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지금까지 내놓은 수출통제 및 금융제재만 따져봐도 사실상의 대러 독자 조치로 볼 수 있다.
다른 나라가 도입하지 않은 제재를 한국이 독자적으로 시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제사회의 제재를 원만하게 이행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조치가 수반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청와대와 정부는 러시아에 대한 한국의 독자 제재는 고려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EU와 영국, 일본 등이 미국의 대러 제재에 준하는 독자 조처를 하고 중립국인 스위스와 스웨덴 등까지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한국의 제재 의지가 상대적으로 약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자 기류가 바뀐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이 EU와 일본 등에 대해서는 FDPR 적용을 면제했지만, 한국은 적용 면제국가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기업 활동의 제약은 물론 한미동맹의 신뢰에 의문까지 제기되자 더는 뒤처질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는 현재 도입한 조치들이 독자 제재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선 말을 아끼고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국제사회와 같이 간다고 한다면 그것을 꼭 독자 제재라고는 할 수 없다"며 "독자 제재를 하고 말고는 현재 별로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독자 제재를 둘러싼 논란을 자초한 건 정부다.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지난달 24일 기자들과 화상으로 만나 '대러 독자 제재도 포함해 검토하느냐'는 질문에 "일부 국가의 경우에는 독자적인 것을 하고 있는데 저희가 그런 것을 고려하고 있지는 않다"고 잘라 말했다.
당시 일부 국가가 하고 있다는 '독자 제재'는 EU와 일본 등이 미국과 발맞춰 수출통제에 나선 것으로, 우리 정부가 도입했거나 도입을 고려하는 수준의 조처다.
정부가 독자 제재 배제 방침을 밝혔으면서도 실질적으론 독자 조처에 나선 것은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로 보인다.
하지만 러시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제재를 제외한 개별 국가의 조치는 모두 독자제재로 간주하고 있어 애초 한러관계를 관리하는 데 별 차이가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정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신북방경제실장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동일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지만, 독자제재는 또 다른 문제가 될 것"이라며 "맞대응 제재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리스크가 좀 더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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