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고공행진·증시 곤두박질… 공급망 위기에 세계경제 ‘쇼크’

대러제재 충격파 현실로

브렌트유 110弗 돌파… 8년래 최고치
IEA, 비축유 6000만배럴 방출키로

정유사들 러産 원유 구매 중단 속출
천연가스 선물가격 장중 60% 치솟아

폴크스바겐 등 완성차 업계 생산차질
‘제재회피 수단’ 가상화폐 연일 상승세
천정부지 휘발유값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수위가 한층 높아지면서 국제 유가가 급등하는 가운데 2일 서울시내 한 주유소에 유가 정보가 표시돼 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판매가격은 전날보다 2.88원 오른 ℓ당 1766.20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하상윤 기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 경제가 출렁이고 있다. 원유 주요 수출국인 러시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로 유가는 연일 고공 행진을 벌이며 배럴당 110달러(약 13만2700원) 선까지 돌파했다. 세계 공급망 위기가 현실화하는 가운데 미국 등 세계 증시도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브렌트유 선물은 2일(한국시간) 오후 1시 19분 기준 배럴당 110.23달러로 5.30달러(5.0%) 올랐다. 이는 2014년 7월 이후 최고치라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같은 시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선물도 5.02달러(4.1%) 오른 108.41달러로 110달러 선에 육박했다. 유럽 천연가스 가격을 대표하는 네덜란드 TTF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이날 장중 한때 약 60% 급등해 MWh당 194유로를 돌파하며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다.

 

국제유가가 치솟으면서 국내 증시에서는 에너지 관련주가 큰 폭으로 올랐다. 석유류 판매업체 한국석유는 전 거래일보다 15.35% 급등한 2만3300원에 거래를 마쳤다. 흥구석유(10.59%), 중앙에너비스(6.77%), 대성에너지(4.14%), 극동유화(3.60%) 등도 일제히 강세를 보였다.

 

미국과 동맹국들은 국제유가 급등 완화 조치에 나섰다. 국제에너지기구(IEA) 31개 회원국은 이날 화상 회의를 열고 비상 비축유 6000만 배럴을 방출하기로 합의했다. 회원국들이 비축유를 방출하기로 합의한 것은 2011년 이후 처음이다. 다만 6000만 배럴은 전 세계 하루 소비량보다 적다. 국제유가를 잡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IEA 회원국들은 시장 상황에 따라 추가 방출을 검토할 예정이다. 우리 정부도 이 같은 움직임에 동참하기로 했다.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사회에 참석해 “한국 정부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응해 수출통제, 금융제재 및 석유시장 안정화를 위한 비축유 방출에 적극 동참할 것”이라며 “회원국 간 논의를 통해 비축유 방출 시점과 물량이 구체화하는 대로 필요한 절차를 즉시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31개 IEA 회원국 에너지 장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국제에너지기구(IEA) 특별 장관급 이사회 영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이날 회원국들은 비상 비축유 6천만배럴을 방출하기로 합의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각국 정유사는 러시아산 원유 구매를 대폭 줄이고 있다. 핀란드 네스테, 스웨덴 프림 등 일부 정유사는 러시아산 원유 구매를 중단했다. 서방은 아직 러시아 에너지 수출을 직접 제재하지는 않으나, 정유사들은 최악의 경우에 대비하고 있다. 다만, 국내 정유사는 러시아산 비중이 작아 이런 움직임에서 다소 비켜나 있다. 지난해 전체 수입물량 중 러시아산은 5.6%에 불과하다.

 

완성차 업체처럼 복잡한 공급망을 가진 기업들은 이미 타격을 받고 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폴크스바겐은 이날 부품 부족으로 볼프스부르크를 비롯한 독일 공장들의 차량 생산이 지연될 수 있다고 밝혔다. BMW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영국 공장들에서 차량 생산을 줄일 방침이다. 여기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팔라듐, 감자칩과 화장품 제조에 쓰이는 해바라기유, 백금과 알루미늄, 밀, 보리, 옥수수, 비료 등의 주요 수출국인 점을 고려하면,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원자재 공급 차질은 커질 전망이다.

사진=신화연합뉴스

세계 증시도 연일 휘청이고 있다. 1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597.65포인트(1.76%) 하락한 3만3294.95로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전장보다 67.68포인트(1.55%) 떨어진 4306.26을, 나스닥 지수는 전장보다 218.94포인트(1.59%) 밀린 1만3532.46으로 장을 마감했다.

 

유럽 주요 증시도 큰 폭으로 하락했다. 범유럽 지수인 유로 Stoxx 50지수는 전날보다 4.04% 추락한 3765.85로 거래를 종료했다.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시의 DAX30 지수는 3.85% 떨어진 1만3904.85로 장을 마감했다. 프랑스 파리 증시의 CAC40 지수는 3.94% 하락한 6396.49로 끝났다. 영국 런던 증시의 FTSE 100 지수는 7330.20으로 1.72% 내렸다.

미국 등 서방의 제재에 따른 러시아인들의 가상화폐 수요 급증에 국내 시장에서도 비트코인 가격이 상승세를 보이는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의 전광판에 비트코인 시세 그래프가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가상화폐 시장은 ‘대장주’인 비트코인 가격이 이틀째 상승세를 보였다. 미국 등 서방이 러시아를 스위프트(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에서 축출하자 루블화 가치가 폭락함에 따라 러시아에서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비트코인은 이날 오후 3시 기준 글로벌 코인시황 중계사이트 코인마켓캡에서 24시간 전 대비 2.43% 상승한 4만4268달러를 기록했다.

 

러시아 증시를 추종하는 국내 상장지수펀드(ETF)도 폭락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유일의 러시아 증시 추종 ETF인 KINDEX 러시아MSCI(합성)는 전 거래일 대비 16.68%(3170원) 빠진 1만583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종가보다 3.7원 오른 1206.0원으로 시작해 1206.1원에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