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여수 돌산은 거북선대교와 돌산...대교로 뭍과 닿아있다. 섬 끝자락에 놓인 화태대교는 화태도를 돌산 여행권으로 묶었다. 돌산은 바다를 낀 아기자기한 드라이브 코스가 일품이다. 몇 해 전부터 풍광이 좋은 곳에 카페들이 들어서기 시작하더니 이젠 카페들만 둘러보는 여행객이 적지 않다.
대형 리조트로 불릴 만큼 규모가 크거나, 제주 감성이나 식물원 등을 콘셉트로 한 카페도 있다. 돌산 갓으로 만든 요리를 내놓거나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고향 마을에 자리 잡은 카페 등 돌산을 ‘힙’하게 만들고 있는 카페 이야기를 모아 봤다. 여수 바다의 윤슬은 어디든 필수다.
◆벌교 농장의 애기동백 정원, 프롬나드
산책을 뜻하는 ‘프롬나드’는 돌산 초입에 있다. 문을 연 지 4개월쯤 된 ‘신상’ 카페다. 여수 엑스포역에서 가까운 이곳은 부산 출신의 부자(夫子)가 운영한다.
김종필(55)씨는 “3년간 준비했는데 절벽이라서 공사가 쉽지 않았다”며 “식물원 콘셉트인데 벌교에서 운영하고 있는 농장에서 청단풍과 애기동백 등을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동백나무 산책길, 바다 산책길, 대나무 산책길 등이 있고, 야외에 공연장과 데크, 빨간 전화부스 등이 포토존이다.
프롬나드 자리에는 원래 더화이트빌리지라는 두 동짜리 펜션이 있었다. 2012년 여수 엑스포 직후 구매한 펜션을 위탁해 운영하다가 영업 이익이 줄자 4년 전 철거를 결정했고, 지난해 10월 프롬나드가 문을 열었다. 프롬나드는 여수 바다 풍광 외에도 지하에 갖춘 작은 식물원이 핵심이다. 김씨는 “벌교 농장에서 애기동백 11주를 가져와 5주를 지하에 심었다”며 “1∼2t에 달하는 동백을 좁은 입구를 통해 들여오는 데 힘들었다”고 소개했다. 공식적인 사장인 아들 지수(33)씨는 “아버지가 나무를 좋아하고 식물 가꾸는 것을 취미로 했는데, 그걸 콘셉트로 잡았다”고 소개했다.
지수씨는 김씨와 아침 일찍 출근한다. 김씨는 나무를 가꾸고 지수씨는 빵을 굽는다. 엄마와 여동생 등 가족 모두 제빵·제과 자격증을 땄다. 프롬나드는 오전 9시 오픈 직전과 오후 3시쯤, 하루 2번 빵을 내놓는다. 아침 일찍 찾으면 빵 냄새가 진동한다. 요즘 잘 팔리는 메뉴는 딸기 생크림 크루아상, 딸기 라떼, 여수바다 솔티 아인슈페너 등이다.
지수씨는 “서울 등 도심의 카페들은 맛 위주라서 먹거리가 다양하고 화려하다”면서 “뷰 위주인 돌산 카페들은 윤슬을 머금고 있다”고 했다. 풍광으로는 서울 카페보다 낫다는 자부심이다. 특히 해가 질 때 풍경을 즐기려는 손님이 많다.
김씨는 프롬나드에서 바다 건너 보이는 경도를 가르키며 “몇 년 뒤에 ‘아시아의 두바이’가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미래에셋 등이 33층짜리 호텔을 지을 계획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예술랜드 품은 절벽 카페, 라피끄
지난해 2월 문을 연 ‘라피끄’의 홈페이지에는 “여수 여행의 필수 코스인 예술랜드에서 만든 또 하나의 작품”이라며 “파도 소리까지 담아낸 여수 최대 규모의 오션뷰 카페”라고 소개돼 있다. 라피끄는 아랍어로 ‘동반자’라는 의미다.
조각공원, 짚라인, 카트, 공중그네, 오션스카이워크, 트릭아트 등이 담긴 예술랜드의 대표는 김현철(56)씨다. 김씨의 아들인 건(30)씨와 딸 한솔(29·여)씨가 각각 라피끄와 예술랜드를 총괄한다.
건씨는 “전남 영암이 고향인 아버지는 8남매 중 다섯째로 혼자 남자라 집안을 책임져야 했다”고 말했다. 건씨가 소개하는 라피끄의 포토존은 핑크 샹들리에와 카페 곳곳의 바닷가 통창, 카페 지하3층에서 통하는 몽돌 바닷가 등 세 군데다. 카페 외부로 나서서 바다로 이어지는 산책로도 풍광이 훌륭하다. 라피끄에서는 생딸기라떼와 달달한 연유가 들어간 라피끄라떼가 잘 팔린다고 했다.
라피끄 외부에는 특이한 모양의 흰색 건물들이 더 보인다. 펜션인 예술랜드리조트다. 건씨는 “81개 방 모두 오션뷰”라며 “올여름에는 인피니티 풀을 옮기고 그 자리에 대형 풀빌라 3동이 들어설 것”이라고 설명했다.
26세 때부터 노래방 등을 운영했다는 김씨는 “예술랜드는 문화와 예술을 결합한 복합리조트”라며 “2016년 조성이 시작돼 3년 전 문을 열었다”고 소개했다. 김씨는 완도 솔섬에 라피끄 완도점이 생길 예정이라고 했다. 목포 장좌도에 또 다른 예술랜드가 문을 열고, 고흥에 섬 4개를 연결한 시앤아일랜드 골프장 허가도 받았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예술랜드와 라피끄는 외국에도 없다”며 “사람들은 서울에 더 좋은 게 있는 줄 아는데 그런 점이 아쉽다”고 했다. 돌산에 카페가 늘고 있는 데 대해 김씨는 “여행관광 트렌드는 이미 카페”라며 일화를 소개했다. 지난해 2월 초 공식 오픈 전에 간판도 없는 라피끄가 입소문이 나면서 10일도 안 돼 사람들로 가득 찼다고 한다.
예술랜드에서는 공중그네와 오션스카이워크가 인기다. 공중그네는 여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높이에서 1분간 앞뒤로 움직이고, 스카이워크는 줄을 매달고 90m의 징검다리를 건너가서 짚라인을 타고 돌아온다. 하루 2000∼3000명이 몰리는 예술랜드 포토존인 ‘마이다스의 손’은 번호표 순서대로 오를 수 있다.
◆핀란드로 엮인 모이핀과 피읖
코로나19 창궐 직전인 2019년 12월에 문을 연 ‘모이핀(Moi Fin)’은 돌산 대형 카페의 유행을 불렀다. 4층짜리 건물의 3층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통유리 너머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이름은 ‘안녕 핀란드’라는 의미를 담았다.
모이핀 입구에는 ‘대규모 커피문화단지 조성계획’을 알리고 있다. 지금의 카페는 6000여평 부지에 700평 공간의 ‘모이핀 오션’이고, 5000여평 부지에 1000평 규모의 ‘모이핀 스카이’는 12월에 추가로 문을 연다. 지난해 4월에는 숲 속과 바다를 느낄 수 있는 ‘피읖 카페’가 인근에 문을 열었다. 모이핀 바로 위에서 공사 중인 모이핀 스카이는 지난해 11월까지 운영된 펜션 ‘핀란드의 아침’이 있던 자리다. 피읖 카페도 핀란드의 ‘ㅍ’에서 따왔다.
왜 핀란드를 고집했을까. 모이핀 대표 박정현씨는 아이와 농막을 짓고 주말농장을 운영하는 게 꿈이었는데 아기자기한 농막 디자인을 찾다가 핀란드 오두막 이미지를 보고 자연친화적이고 감성 있는 모습에 반해 핀란드 펜션을 기획하게 됐다고 한다. 모이핀 오찬배 차장은 “돌산 대형 카페의 원조는 모이핀”이라며 “핀란드의 아침 이후 핀란드 느낌을 주고 싶어 자연친화적인 카페를 구상했다”고 했다.
박씨의 핀란드 사랑은 펜션인 핀란드의 아침에서 모이핀 오션, 피읖 카페에 이어 모이핀 스카이로 이어지게 됐다. 펜션업에서 카페로 전환하는 사례가 많은 것은 펜션 쪽 경쟁이 심해진 때문이다.
모이핀은 층마다 분위기가 다르고 야외 테이블이 많다. 바다까지 내려가는 길은 공사가 끝나지 않았다. 규모로 봤을 때 돌산에서 모이핀의 경쟁 상대는 라피끄뿐이다.
피읖 카페에 들어서면 갈대와 소나무가 지천이다. 작은 분수의 물소리가 경쾌해 캠핑에 나선 느낌이다. 피읖 총괄매니저 백재명(31)씨는 “지난해 4월 문을 열었고, 10월에 모이핀에서 여기로 옮겨 일하고 있다”며 “제주 감성의 힐링 카페를 콘셉트로 하고 있어 A형 텐트 6개와 데크 자리 20여개가 놓여있다”고 소개했다. 피읖의 시그니처 메뉴는 아인슈페너와 에이드 종류다. 백씨는 “기본을 드립 커피로 바꿔나갈 예정”이라며 “봄 메뉴도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피읖의 한쪽에는 반려견과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있다. 피읖의 포토존은 거울과 피읖자 문 등이다.
◆커피를 닮은 자두, 카페 플럼
지난해 2월 문을 연 ‘카페 플럼’의 사장 김대신(63)씨는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고향인 돌산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향일암에서 차로 10여분 거리 떨어져있다.
김씨는 “커피에는 자두 맛이 다 있다”며 “달고 시며, 향기도 있는데 부르기도 좋아서 플럼으로 이름 지었다”고 말했다. 2층 건물 중 카페는 1층으로, 여수 바다의 윤슬을 마음껏 품고 있다. 2층 숙소는 직원을 채용하면 숙식 장소로 삼으려했지만 코로나19로 여의치 않다.
혼자서 커피를 갈고 내리던 김씨는 “돌산에서 핸드드립 커피는 플럼이 유일할 것”이라고 했다. 드립 커피하는 곳이 돌산에 더 있다고 알려주니 놀라는 눈치다. 그도 그럴 것이 돌산 곳곳을 다니다보니 풍광 좋은 곳은 으레 뭔가를 짓고 있다. 1년 뒤면 새로운 카페도 더 늘어날 것 같다.
플럼 카페 앞 성두마을은 109, 114, 116번 버스 종점이다. 하지만 돌산 여행을 하기에 대중교통은 불편하다. 김씨는 플럼 카페 주위에 나무를 여럿 심었다. 매화가 싹을 틔웠고 자두나무도 있다. 김씨는 “카페 이름이 자두인데 자두 나무가 없는 것도 좀 이상해서 심었다”며 멋쩍게 웃었다. 성두항은 돌담 길이 제법 많아 제주 느낌이 난다고 김씨는 설명했다.
◆“시댁이 루프톱에서 보여요”, 더 계동
계동항 인근에 있는 ‘더 계동’은 아직 공식 오픈 전인데도 여행객 발길이 잦다. 카페 규모가 아주 크지는 않지만 바다를 품은 통창이 시원하고 번잡하지 않다.
사장 원유희(36·여)씨는 “남편 고향에 카페 문을 열게 돼 계동이란 이름을 쓴 것”이라면서도 “2층 테라스와 루프톱 정리가 덜 됐다”고 했다. 돌산 농협에서 일하는 남편이 ‘언젠가 부모님 곁에서 일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게 계기가 됐다. 함께 일하는 시누이는 “요즘 직장들 퇴직이 빨라지다보니 미리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했다.
원씨는 지난해까지 카페 ‘숨은’에서 일하며 카페 일을 배웠다. 모이핀 측이 숲 콘셉트로 문을 연 피읖 자리에는 원래 숨은이 있었다.
여수가 고향인 원씨는 남편이 살던 계동으로 출근한다. 더 계동에 들어서면 여기저기 레고로 만든 스포츠카와 성 등이 수줍게 전시돼있다. 남편은 주중에 자기 일에 집중하고, 주말에는 카페에 나와 잔일을 돕는다. 레고 작품도 남편이 카페 한쪽 테이블에서 세 아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만든 것이다. 전체 바다 풍광이 궁금해 3층 루프톱에 올랐다. 원씨는 “저어기 멀리 옥빛 건물이 시댁”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아마 조만간 자잘한 공사가 끝나고 정식 오픈하게 될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가업 갓김치 접목한 파스타, 카페드몽돌
‘카페드몽돌’은 상호가 지어진 배경을 따로 설명할 필요 없다. 무슬목 몽돌해변가를 끼고 있다. 그런데 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돌산갓이 들어간 피자, 파스타, 리조토 등을 판다. 게다가 맛있다는 평가다. 돌산을 오가는 대절 택시 기사들 사이에서도 카페드몽돌의 요리들은 호평 받는다.
사장 강다연(33·여)씨 집안은 갓김치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대략 30년쯤 됐다. 돌산갓김치가 서울 등 도시에 알려지는 데 일조했다고 한다. 그래서 평소 ‘갓을 김치로만 파는 게 아니라 음식으로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돼지고기와 쇠고기, 돌산갓 등을 볶아 5시간 이상 끓여낸 라구소스로 만든 매콤한 여수돌산갓라구파스타 등 카페드몽돌의 시그니처 메뉴에 갓이 많이 들어간 배경이다. 다른 레스토랑에서 일한 친구 2명이 카페드몽돌 셰프로 일하며 갓을 이용한 파스타와 피자 등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카페드몽돌은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시작한 2020년 4월 문을 열었다. 2층과 루프톱, 야외 자리, 텐트 등으로 구성되는데, 텐트는 반려견 동반이 가능하다. 원래 있던 펜션 건물의 구조만 일부 바꿔서 카페드몽돌의 공간을 만들었다. 카페 인테리어는 직접 했다. 강씨는 카페드몽돌을 시작하기 전에 서울에서 패션 쪽 직장에서 디자인 업무를 맡았다. 그는 “원래 있던 건물이 마음에 들어서 최대한 살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천연암반 터널과 화태식당
여수에서 돌산 카페 여행만 계획했더라도 들러볼 곳은 많다. 여수엑스포 역에서 지척인 마래2 터널은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진 군사도로로 알려져있다. 버스 한 대 겨우 들어갈 법한 작은 동굴처럼 생긴 터널은 630m로 짧지만 신기하다. 2004년 12월 등록문화재 116호로 지정됐다. 굳이 찾아갈 정도는 아니지만 돌산 여행에 끼워넣으면 좋다.
마래2 터널을 통과하면 만성리 검은모래 해변과 모사금 해수욕장이 차로 5분거리다. 인적이 몰리는 여름이면 모사금 해수욕장 인근은 일방통행 길로 바뀐다. 모사금 인근에는 쥐포 공장이 지천이었지만 이젠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터널을 지나자마자 오른쪽으로 바다가 펼쳐지고 그 아래로 여수해양레일바이크가 다닌다. 패러글라이딩과 레일바이크를 즐기려는 젊은 층이 이쪽으로 몰려간다. 여수 토박이인 택시기사 김명수씨는 “예전에는 양방향 통행이 가능했다”며 터널 중간에 차량 2대가 겨우 지날 수 있는 작은 공간이 몇 개 있다고 했다. 3∼4년 전 터널 입구에 신호기가 생기면서 간헐적 일방통행으로 바뀌었다. 김씨는 “여름 휴가철에 터널 특징을 모르는 외지인들 때문에 꽉 막혀서 경찰이 출동하고서야 정리되곤 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돌산의 끝 화태대교를 건너 화태식당으로 길을 잡았다. 돌산대교에서 화태대교까지 평소 30분 넘게 걸린다. 화태도에 접어들어 좁은 골목을 지나며 ‘이런 곳에 식당이 있을까’하는 의심이 든다면 제 길로 온 것이다. 근처에 차 4대 정도 주차할 공간이 있다. 바닷가에 인접한 화태주막은 다른 집이다.
식당은 좌식과 입식 등 테이블 5개가 전부다. 생선이 포함된 7000원짜리 백반은 딱 시골 밥상이고, 소머리국밥은 8000원이다. 회와 매운탕, 전복죽도 많이 찾는다. 식당 주인 유공순(65)씨는 “남편이 동네 이장인데 마을에 식당이 없어서 오래전부터 간판 없이 하다가 다리가 놓인 해인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식당을 했다”고 말했다. 낚시꾼이나 여행객이 주 고객인데,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아 손님이 줄었다. 20년째 화태리 이장을 맡고 있는 이성남(68)씨는 “여수 큰 식당도 힘들다는데 작은 식당이야 오죽하겠느냐”고 했다. “횟감은 직접 잡느냐”고 물었더니 “요즘 자연산만 쓴다는 횟집은 다 거짓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