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미싱 타던 엄마’는 죄가 없다

1970년대 평화시장 10대 여공들
전과자 만든 ‘노동교실 사수 투쟁’
누군가 엄마가 된 지금에야 용기
이제 말한다… 참혹한 그 시절을

이혁래·김정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미싱 타는 여자들 : 전태일의 누이들’ 속 주요 인터뷰이 가운데 하나인 임미경은 1962년생이다. 1970년대 중반 13세의 나이로 평화시장 ‘시다’가 됐다. 아마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를 졸업하자마자였을 것이다. 1977년 9월 9일 ‘청계피복노조 노동교실 사수 투쟁’의 주역으로 실형을 살게 될 때, 그녀의 나이는 느닷없이 두 살 올라간다. 1962년생이 1960년생이 된 것이다. 제아무리 엉터리 유신헌법이라고 하더라도 15세의 형사 미성년자를 구속하고 기소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녀가 실형을 살기 위해선 적어도 두 살이 더 필요했던 이유다. 검경에 의한 주민등록증 ‘위조’라는 전대미문의 야만적 사건은 이렇게 부끄러운 역사가 됐다.

 

또 다른 인터뷰이들인 신순애·이숙희의 사정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그녀들 역시 임미경보다 조금 더 나이를 먹었달 뿐 십 대의 어린 나이에 노동자가 된 건 마찬가지다. 그녀들의 회고 가운데 잊히지 않는 삽화 역시 나이와 관련된 것이다. 중·고등학교로 진학한 또래와 달리 그녀들은 버스를 탈 때 학생용 ‘회수권’을 내지 못한다. 교복을 입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억울하고 분하다고 토로한다. 누가 봐도 어린 소녀에 불과했던 자신들이 왜 청소년 요금이 아니라 어른 삯을 내야 했는지!

신수정 명지대 교수·문학평론가

돌이켜보면 이 어이없고 뼈아픈 삽화들은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불과 몇십 년 전의 일일 뿐이다. 허리를 펴고 걷지도 못하는 8평 남짓 다락방에서 종일 무릎을 꿇고 먼지를 마시며 일을 해야 했던 그녀들은 지금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가 돼 있다. 보름 내내 철야가 이어지던 어느 날, 다른 무엇도 아니고 오로지 파란 하늘을 보고 잠을 자고 싶다는 생각에 동료 시다 둘과 함께 무작정 작업장에서 도망쳐 남산을 향해 걸어갔다가 하릴없이 되돌아온 적도 있다고 이야기하는 그녀들은 바로 오래 잊고 있던 내 친구이기도 하다. 누가 그녀들을 과거로 치부할 수 있을까. 그녀들은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살아가는 지금 이곳의 현재일 뿐이다.

 

그런데도 그녀들마저 자신들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이 쉽지는 않았던 듯하다. 그녀들은 일(壹), 이(貳), 삼(參) 등의 숫자를 한자로 읽고 쓰는 법을 가르쳐주고 ‘은행에 가서 통장을 만들어 저금과 인출 해 보기’ 따위의 숙제를 내 주는 ‘노동교실’에 너무 가고 싶어서 작업이 끝나자마자 저녁도 거른 채 달려갔다는 이야기나 바로 그 때문에 자신들에게는 적어도 저녁 8시에는 작업이 끝나야만 한다는 사실이 그토록 중요했다는 사정을 공식 채널에서 제대로 발설해 본 적이 없노라 고백한다. 사정이 그러할진대 그녀들을 ‘전과자’로 만든 ‘청계피복노조 노동교실 사수 투쟁’에 대해서는 더더욱 이야기하기 힘들었으리라 충분히 예상된다. 그녀들은 말한다. 자식들도 엄마에게 그런 일이 있었는지 잘 몰랐다고. 어쩌면 그녀들이 입을 닫게 된 결정적 계기는 바로 자식 때문일 수도 있겠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 ‘여공’ 엄마의 이력이 아이들에게 자랑이 될 수 없으리라는 지레짐작은 그녀들이 자신의 과거를 봉인하도록 자물쇠 역할을 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이달 2일까지 이 영화를 본 누적 관객 수는 9019명이다. 2일은 29명, 1일은 55명이 이 영화를 관람했다. 누적 관객 수 7000명대, 상영관 내 유일한 관객으로 ‘나 홀로 영화’를 관람했던 2월 어느 날에 비하면 낫다고 해야 할까. 아무도 그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란 그녀들의 기우가 맞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는 겁이 난다. 그래도 희망이 없지는 않아 보인다. 우리의 임미경은 인터뷰 요청을 받고 망설이다가 아이들과 상의한다. 그때서야 엄마의 사정을 잘 알게 된 아이들은 짐작과 달리 그녀를 응원한다. 나가라고, 나가서 이야기하라고, 죄지은 것이 아니지 않으냐고. 이런 아이들이 있는 한 그녀의 과거는 우리의 미래, 우리의 자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미싱 타는 여자들’은 바로 그런 아이들의 엄마다. 내내 울음을 참던 내가 신음을 내뱉던 순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