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투표 대혼란에 선관위 신뢰 추락… 근소한 차 승패 땐 후폭풍 불가피

투표지, 바구니 수거 전국서 항의 속출
신원 확인·용지 발급에 대기 길어져
공무원 실수로 투표권 행사 못 하기도

野 “선관위원장, 4·5일 출근도 안해”
선관위, 7일 긴급위 소집 대책 마련
전문가들 “지지자들 승복할 해명 필요”

민주·국민의힘, 과천 선관위 항의 방문
與 “재발 방지” 野 “선관위장 사퇴” 촉구
사진=연합뉴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0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 관리에서 허점을 드러내면서 ‘신뢰의 위기’에 봉착했다. 선관위는 코로나19 확진자 사전투표 용지 보관 등에서 부실한 관리로 비판을 자초했다. 선관위는 법과 규정상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고 해명했지만, 사전 국회 논의과정에서 이러한 문제점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해 선관위는 예측조차 못 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간 ‘박빙’ 대결로 치러지는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자칫 큰 후폭풍을 낳을 수도 있다.

선관위의 사전투표 부실 관리 논란은 코로나19 확진자·격리자 투표가 진행된 오후 5시부터 불거졌다. 확진자들이 투표 용지를 직접 투표함에 넣지 못하고 선거관리원들이 받아서 투표함에 넣은 것이 문제가 됐다. 투표용지를 바구니, 쇼핑백, 종이상자 등에 담아 옮긴 것이 불신을 키웠다. 전북 전주시 전북도청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한 유권자는 “우리 투표용지가 제대로 투표함에 넣어지는 거 맞냐, 직접 투표함에 넣고 싶다”며 항의했다.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마두2동 사전투표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60대 남성 격리자는 “기표 용지가 곧바로 투표함에 들어가지 않고 별도로 보관됐다가 옮겨지는 과정에서 바뀔 수도 있는데, 굳이 왜 이런 방식을 택했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원 확인 절차와 투표용지 발급 절차 때문에 대기 시간이 확진·격리 유권자들의 볼멘소리도 터져 나왔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한 사전투표소를 찾은 확진 유권자들은 2시간 넘게 야외에서 대기해야 했다. 광주에서는 공무원의 실수로 선거인명부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일부 유권자가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일도 발생했다. 투표소마다 유권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선관위 측의 적절치 못한 대응도 문제를 키웠다. 투표사무원들은 유권자들에게 확진자 투표는 원칙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유권자들이 항의하자 “이의신청을 하려면 선관위에 가서 하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권자들은 “투표하러 온 사람에게 왜 선관위를 찾으라고 하느냐”고 따졌다.

5일 오후 서울역 앞 임시기표소에서 코로나19 확진·격리자들이 투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관위는 한 기표소에 투표함을 두 개 이상 설치하지 못하도록 하는 공직선거법 규정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 확진·격리자가 투표용지를 직접 함에 못 넣는 것은 동선 분리 원칙에 의거해 2020년 총선과 2021년 4·7 재보궐선거 때 사용했던 방법이었다고도 했다.

야당은 선관위가 너무나 안이하게 판단했다고 했다. 국민의힘 이영 의원은 SNS에 “예상외로 많이 몰린 유권자들로 인해 1개의 봉투에 여러 장의 투표지를 받는 어이없는 일을 발생시켰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선관위 김세환 사무총장은 지난달 9일 국회 정치개혁특위에 출석한 자리에서 “(확진·격리자를) 100만으로 가정하더라도 1만4000여개 투표소로 분산이 된다”며 “제일 많은 서울을 예로 들어도 투표소당 20명 남짓 된다”고 관리가 가능하다고 했다. 김 총장은 “지금 100만명으로 추산하더라도 21대 총선이나 4·7 재보선에서 관리했던 방식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도 했다. 자가격리자가 6만여명 정도였던 2년 전 총선의 관리 방식을 하루에 20만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오는 현재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자신한 것이다. 이 의원은 이날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보고에서 “노정희 선관위원장이 지난 4일과 5일에 출근도 하지 않았다”며 “(선관위가) ‘비상임이어서 매일 출근하지 않는다’라고 하더라, 그게 답이냐”고 거세게 비판하기도 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이날 성명에서 “코로나19 확진자들의 투표용지가 부적절하게 취급됐다”면서 “선거관리 당국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여당도 “미숙한 관리”라며 전수조사 등을 요구했다.

기표된 투표용지 지급 부산 연제구 연산4동 제3투표소에서 지난 5일 오후 실시된 코로나19 확진자·격리자 사전투표 때 일부 유권자에게 각각 더불어민주당 이재명(왼쪽),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로 기표된 투표용지가 지급되어 항의가 일어나는 등 논란이 일었다. 사진은 당시 유권자가 현장에서 찍은 문제의 투표지.
부산=연합뉴스

선관위는 부실 관리에 대해 유감의 뜻을 밝히고 9일 본투표에서는 안심하고 투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선관위는 7일 오전 긴급위를 소집해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자칫 ‘박빙’ 상태로 치러지는 이번 대선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이날 통화에서 “지난 총선 당시 부정선거 논란은 일부 극우 세력들의 일방적인 주장이었는데 이번에는 정식으로 문제가 됐다는 점에서 보통 사안이 아니다”며 “선관위가 여야 지지자들이 승복할 수 있는 해명을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투표지를 가방에? 제주시 연동의 한 사전투표소에서 지난 5일 사전투표를 마친 코로나19 확진자(왼쪽)가 바닥에 놓인 가방 안에 투표용지를 넣고 있다.
제주=뉴스1

◆이낙연 “선관위, 어디가 고장 난 건가” 이준석 “책임질 인사 거취 표명해야”

 

여야는 6일 코로나19 확진·격리자 사전투표 부실 관리 파문의 파장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자칫 ‘초박빙’ 판세로 전개되는 20대 대통령 선거의 마지막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어서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항의 방문했고, 양당의 선거 사령탑들은 일제히 선관위를 질타했다. ‘재발방지’에 방점을 둔 여당과 ‘선관위원장 사퇴’를 요구하는 야당 사이에는 미묘한 온도차가 있었다.

 

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MBN 방송에서 선관위 사전투표 부실 관리 논란에 대해 “자기들(선관위)이 잘못을 인정하고 있고, 확진자가 많이 오다 보니 기표소와 투표소의 거리가 떨어져서 이동 등이 제대로 검증이 안 된 것”이라며 “본 선거일에는 만전을 기할 수 있도록 체크하겠다”고 밝혔다.

 

20대 대선 사전투표 이틀째인 5일 서울역 대합실에 마련된 사전투표소를 찾은 시민이 투표용지를 들고 기표소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 이낙연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선관위, 이게 뭡니까? 제가 알던 선관위는 이러지 않았는데, 어디가 고장 난 것입니까?”라며 선관위를 비판했다. 이 위원장은 “코로나19 확진자·격리자 사전투표 관리는 몹시 잘못됐다. 매우 실망스럽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정선거 소지는 없다고 한 선관위 해명에 대해서도 “입장 표명도 왜 이리 불성실합니까? 이것을 해명과 사과라고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라고 지적했다. 당 소속 서영교 행정안전위원장과 김영배·백혜련·양기대·이해식 의원은 이날 과천 선관위를 항의 방문했다. 민주당이 이처럼 선관위를 몰아세운 것은 자칫 이번 사전투표 부실 관리 논란의 불똥이 정부와 여당의 책임론으로 불거질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야당 역시 선관위를 향해 날을 세웠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이날 확대선거대책본부회의에서 “선관위는 이 사태가 발생한 데 대해 전체적인 책임을 질 인사의 즉각적인 거취 표명이 있어야 할 것”이라며 노정희 선관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권영세 선거대책본부장은 “초등학교 반장선거도 이렇게 허술하게 하지는 않는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논란이 벌어진 5일 밤 과천 선관위로 항의방문에 나섰다. 김웅·김은혜·유경준·이영 의원 등은 밤 10시쯤 선관위를 찾아 항의했다. 김웅 의원은 페이스북에 “선관위 항의방문 결과다. (김세환) 사무총장과 문답을 간략하게 정리한다”며 김 총장이 유권자를 향해 ‘난동’이란 표현을 썼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사전투표는 현장에서 투표용지를 출력하는데 왜 미리 인쇄된 투표용지들이 발견됐는지’ 묻자, 김 사무총장이 “확진자들이 직접 투표함에 넣겠다고 난동을 부리다 인쇄된 투표용지를 두고 간 것 같다”고 답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