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대통령, 美 CIA 국장과 조찬 회동… 왜?

러시아 전문가 CIA 국장한테 브리핑 받은 듯
‘美·핀란드 관계 동맹만큼 탄탄’ 외부에 과시
사울리 니니스퇴 핀란드 대통령(왼쪽)이 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윌리엄 번스 미 CIA 국장과의 조찬 회동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SNS 캡처

최근 미국을 방문해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사울리 니니스퇴 핀란드 대통령이 방미 기간 중앙정보국(CIA) 국장과도 회동한 사실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개해 눈길을 끈다. 정보기관 속성상 CIA 국장의 외부활동이나 동선은 가급적 비밀로 하는 것이 보통인데, CIA 측이 핀란드 대통령의 SNS 게시물을 ‘묵인’한 것은 미국·핀란드 관계가 동맹국 못지않게 탄탄하다는 점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7일 니니스퇴 대통령의 SNS을 보면 미국 워싱턴에 머물고 있던 4일(현지시간) 윌리엄 번스 미 CIA 국장과 나란히 찍은 사진이 게재돼 있다. 니니스퇴 대통령은 사진과 함께 올린 글에서 “윌리엄 번스 CIA 국장과 아주 통찰력 있는(insightful) 조찬 회동을 가졌다”며 “번스 국장은 러시아와의 외교 및 협상 분야에 상당한 경험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번스 국장과 아침식사를 함께하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것이 핀란드 안보에 미칠 영향 등에 관해 의견을 나눴음을 암시한 셈이다.

 

니니스퇴 대통령의 말처럼 번스 국장은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러시아 전문가다. 영국의 명문 옥스퍼드대에서 국제정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번스 국장은 미 국무부에서 오래 근무한 정통 외교관 출신이다. 특히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인 2005∼2008년 러시아 모스크바 주재 미국대사로 활동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선 국무부 부장관을 지냈다. 공화당과 민주당 행정부에서 연달아 중용된 점은 그만큼 정치색이 옅고 외교관 본연의 임무에만 충실한 인물이란 점을 보여준다. 지난해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후 그에게 CIA 국장이란 중책을 맡긴 것도 국제문제에 대한 전문성을 높이 평가한 결과로 풀이된다.

 

러시아 전문가와 만나 조언을 들어야 할 정도로 요즘 핀란드는 사정이 다급하다. 핀란드는 1939년 11월 소련(현 러시아)의 갑작스러운 침공을 받아 국토를 유린당하고 결국 상당한 영토를 뺴앗긴 쓰라린 경험이 있다. ‘겨울전쟁’으로 불리는 이 싸움 당시 핀란드군은 병력과 장비 면에서 월등히 우세한 소련군을 상대로 끈질기게 저항하며 되레 큰 타격을 입혀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비록 국력의 열세를 견디지 못하고 개전 4개월여 만인 1940년 3월 항복하긴 했지만, ‘소국’ 핀란드 국민들이 똘똘 뭉쳐 소련을 혼쭐낸 역사는 지금도 인근 강대국의 괴롭힘에 시달리는 약소국들 사이에 귀감이 되고 있다.

 

사울리 니니스퇴 핀란드 대통령(왼쪽)이 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SNS 캡처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핀란드는 소련 영향권에 편입되지는 않았으나 미국 등 자유진영과 소련을 필두로 한 공산진영 사이에서 철저히 중립을 지켰다. 스위스나 스웨덴이 ‘자발적으로’ 중립을 택한 것과 달리 핀란드의 중립은 소련과의 겨울전쟁 패배로 인해 ‘강요된’ 중립이란 차이점이 있었다. 1990년대 초반 소련이 해체되고 폴란드,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등 옛 공산권 국가들이 속속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으로 가입했으나 핀란드는 계속 중립국으로 남았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핀란드의 안보 불안을 가중시켰다. 1939년 핀란드를 상대로 그랬듯 러시아는 언제든 주변 소국들을 상대로 무력을 동원할 수 있는 잔인한 집단임이 입증된 것이다. 이에 핀란드는 미국 및 나토와의 국방 협력을 조심스럽게 타진하는 중이다. 이번 니니스퇴 대통령의 방미도 미·핀란드 및 나토·핀란드 안보 파트너십 구축을 위한 것으로 풀이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 등 나토의 대(對)러시아 전략에 핀란드가 적극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으며, 니니스퇴 대통령 또한 “양국 관계를 한 단계 더 끌어올려야 한다”고 긍정적 답변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