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따질 경황 아니지만 코로나 걸릴까 봐" 이재민의 한숨

울진 산불 피해자 임시 대피소 르포
좁은 공간서 500명 ‘다닥다닥’ 텐트생활
80% 이상이 고령층… 집단 확진 우려도
당국, 확진격리시설 마련 등 방역 ‘진땀’
지난 6일 울진국민체육센터에 마련된 임시 대피소에 이재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뉴시스

“사실상 거리두기는 실종됐죠. 다닥다닥 붙어 생활하기 때문에 코로나19 감염 걱정이 큰 상태입니다.”

7일 오전 경북 울진군 산불 이재민 임시 대피소가 차려진 울진국민체육센터. 가로·세로 3m, 높이 2.5m짜리 노란색 텐트 50여동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조금이라도 이재민 수용 공간을 늘리기 위해 폭 50㎝ 남짓의 통로를 제외하곤 모두 텐트를 설치했다.

 

이곳에서 만난 이재민 김모(71)씨는 “오갈 곳이 없어서 이재민 대피소에서 생활하고 있다”면서 “전쟁 같은 상황에 속에서 이것저것 따질 경황은 아니지만 텐트 간격이 워낙 좁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릴까 봐 걱정되는 건 사실”이라고 푸념했다.

화마가 휩쓸고 간 민가 동해안 산불 발생 나흘째인 7일 경북 울진군 북면 신화2리 민가와 주변 나무들이 불에 타면서 시커먼 잿더미로 변했다. 강풍을 타고 동해안 곳곳으로 번진 이번 산불은 이날 오전 11시 기준 산림 약 2만㏊를 태워 관련 통계를 낸 1986년 이후 두 번째로 큰 피해 규모를 기록했다. 울진=뉴시스

지난 4일 울진에서 발화한 산불로 평생의 보금자리인 집과 재산이 모두 불에 타 임시대피소 생활을 하는 이재민에게 걱정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 전국적으로 코로나19가 확산하는 가운데 이곳 이재민 대피소에서도 집단감염이 발생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재민대피소에서 머무는 주민의 80% 이상은 70대 이상인 데다 연이은 바깥 생활로 건강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이기다.

이날 찾은 이재민대피소에는 손 소독제가 군데군데 비치돼 있었다. 울진군은 방역의 틈을 줄이고자 출입구에 열 감지 카메라를 설치했다. 전날부터 매일 한 차례 이재민 대피소를 방역하는 한편 생활 중 마스크 의무착용과 외부 음식물 반입과 섭취 금지를 하고 있다. 하지만 좁은 공간에 500명이 넘는 이재민이 몰리면서 사실상 거리두기는 지켜지지 않고 있다. 노인들은 텐트 사이 바닥에 은박 돗자리와 매트, 담요를 깔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 몸을 추스르고 있다.



소곡1리에서 온 80대 이재민 이모(여)씨 역시 코로나19 감염이 걱정이라고 했다. 이씨는 “하루에도 수백명의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데 확진자가 없을 수 있겠냐”면서 “코로나19 감염 역시 운에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전날 이재민 대피소에서는 주민 2명이 발열과 기침 등 코로나19 의심 증상을 호소했다. 의료진이 이들을 격리한 뒤 신속항원검사로 감염 여부를 확인한 결과 다행히 모두 음성 판정이 났다.

7일 산림청 진화헬기가 강원 동해시 백봉령 인근에서 산불을 끄기 위해 막바지 진화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울진보건소 관계자는 “이재민 대피소에서 확진자가 나올 경우에 대비해 읍내5리 마을회관에 임시격리시설을 만들어 놨다”면서 “확진자가 다수 발생하면 구수곡자연휴양림으로 옮길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원 동해시 만우마을에선 소방차가 좁은 길을 제대로 진입하지 못해 2시간가량을 허비하는 일이 발생했다. 워낙 동시다발로 화재가 나 동해시 소방차가 아닌 타 지역 소방차가 불길을 잡기 위해 투입됐는데 길이 예상보다 좁았던 탓이다. 당초 소방차 2대가 불을 끄기 위해 출동했지만 결국 1대만 펜션에 진입해 불을 껐다. 만우마을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강모씨는 “소방차가 좁은 길을 진입하기 위해 왔다 갔다 하느라 시간이 엄청 걸렸다”며 “새벽 3시에 불이 났는데 해가 떠서야 진입했다”고 설명했다. 소방차가 2시간 넘는 시간을 길에서 허비하는 동안 불붙은 펜션 5채는 전소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나흘째 이어진 울진·삼척, 강릉·동해 등의 산불로 이날 오전 11시까지 1만9553㏊의 산림이 불에 탔다. 서울 면적(6만520㏊)의 3분의 1, 축구장(0.714㏊) 약 2만7400개에 해당하는 넓이다.

 

또 이번 산불로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울진 부구중과 죽변중·변동고에서는 원격수업이, 부고초에선 재량수업이 이뤄지는 등 4곳의 학교에서 수업이 중단됐다.

 

사투 남부지방산림청 울진국유림관리소 소속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이 지난 6일 경북 울진군에서 금강소나무숲을 지키기 위해 화마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산림청 제공

산림당국은 이날 헬기 90여대와 진화인력 1만7900여명을 투입해 산불 진화에 나섰지만 심한 연기와 안개로 진화 작업은 난항을 겪었다. 물을 퍼나를 소방차 대부분이 주택 작업에 투입되다보니 전날 울진에선 레미콘차량 수십대가 대신 물을 실어 날랐다.

 

이날 오후 강릉·동해 산불 진화율은 90%, 삼척은 80%까지 진행됐지만 울진의 경우 50%대에 머물고 있다. 최병암 산림청장은 이날 울진 산불현장 브리핑에서 “오늘 주불을 다 진화할 수 있다고 말씀드리기 어렵다”며 “내일 오후부터 위협적인 동풍이 불기 때문에 그 전인 (내일) 오전까지 반드시 화선을 제압해야 한다”고 말했다.

 

화재원인 조사도 진척이 없다. 산림당국과 경찰은 울진 산불이 폐쇄회로(CC)TV 확인 결과 도로를 지나던 차량에서 던진 담뱃불 실화로 추정하고 있다. 울진경찰서 관계자는 “아직까지 차량 소유주가 확인되지 않았다”며 “현장 CC(폐쇄회로) TV를 보면 차량이 지나가는 것은 보이는데 구체적으로 확인은 안 된다. 차량 물체만 보인다”고 말했다.

 

동해안 대형 산불 발생 나흘째인 7일 오전 강원 동해시 초구동에서 피해 주민 신원준(75)·손복예(66)씨 부부가 전소된 주택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실제 해마다 산불로 막대한 산림과 재산이 잿더미가 되고 있지만 실화자 검거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산림청에 따르면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전국에서 발생한 산불은 모두 4809건, 피해 면적은 1만872㏊, 피해 금액은 6649억5600만원에 이른다. 이 기간 검거한 산불 가해자는 1974명으로 검거율은 41%에 그쳤다. 지난해의 경우 349건 중 132건(명)만 검거해 37.8%의 검거율에 그쳤다.

 

정부는 이날 고의나 과실로 산불을 낼 경우 엄정처벌하겠다고 밝혔다. 중대본부장인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날 관계부처 대국민담화에서 “정부는 고의나 과실로 인해 산불 피해가 발생한 경우 관계 법령에 따라 강력하게 처벌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산림보호법상 고의로 산불을 냈을 경우 15년 이하의 징역형을, 과실로 인한 산불이더라도 징역 3년 또는 3000만원 이하의 처벌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