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주의 통로’ 열렸지만… 러 무차별 공격에 아비규환

우크라이나·러시아 합의로 민간인 대피 시작

키이우 인근 이르핀 등 피란 인파
러 언론 “민간인 대피 위해 휴전”

러, 포격으로 민간인 20여명 사망
우크라, 러 장군 잇단 사살 주장
러, 원전 볼모로 위협 수위 높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합의로 민간인 대피를 위한 ‘인도주의 통로’ 가동이 시작된 8일(현지시간), 서부 도시 리비우의 기차역에서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폴란드행 기차를 타기 위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리비우=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합의로 ‘인도주의 통로’를 통한 대피가 시작됐으나, 무차별적 공격으로 민간인 피해는 여전히 불어나고 있다. UN은 우크라이나를 탈출한 난민이 200만명에 달한다고 집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피신을 거부한 채 수도 키이우(키예프)에서 결사항전의 뜻을 재차 다졌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장군들을 잇달아 사살했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러시아는 원전을 볼모로 국제사회를 향한 위협 수위를 높였다.

 

AP통신 등은 우크라이나 당국이 8일(현지시간) 북동쪽 도시인 수미와 키이우 인근 이르핀에서 민간인 대피를 시작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외교부가 트위터에 공개한 영상에는 수미에서 빨간 십자가가 그려진 버스에 탑승 중인 시민들의 모습이 담겼다. 이리나 베레시크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이날 TV 성명에서 “오전 10시(한국시간 오후 5시)부터 수미시에서 호송대가 민간인 호송을 시작하기로 합의했다”며 “개인 차량에 탑승한 현지 주민들이 호송대를 뒤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드미트로 지비츠키 수미 주지사도 “첫 번째 버스가 이미 수미를 출발해 폴타와시로 향했다”고 전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 국방부 이고리 코나셴코프 대변인은 이날 키이우와 체르니히우, 수미, 하르키우, 마리우폴 등 5개 도시에서 인도적 통로가 열렸다고 발표했다. 그는 “거주지에서 민간인을 안전히 대피시키기 위해 모스크바 시간으로 오늘 오전 10시(한국시간 오후 4시)부터 임시휴전했다”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수미와 이르핀 외 다른 도시에서 민간인 대피가 시작됐는지 여부에 대해선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인도주의 통로가 가동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민간인 피해는 심각한 상황이다. 필리포 그란디 유엔난민최고대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우크라이나를 탈출한 난민 수는 200만 명에 달한다”며 “이는 세계 2차대전 이후 가장 빠른 속도”라고 말했다.

 

민간인을 향한 포격도 이어지고 있다. 수미 당국은 러시아군이 새벽에 주택가를 공습해 어린이 2명을 포함해 최소 21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마리우폴 등지에서 민간인 공격이 있었다며 “적이 정확히 인도적 통로에 공격을 개시했다”며 “(러시아군이) 어린이, 여성, 노년이 도시를 떠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6일(현지시간) 수도 키이우(키예프)에서 동영상 연설을 하고 있다. 키이우=AP연합뉴스

젤렌스키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우크라이나의 저항도 거세다. 미국 정치전문 매체 더힐에 따르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집무실에서 촬영한 영상에서 “나는 여기 키이우에 머물겠다”며 “숨지 않을 것이고 누구도 두렵지 않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국방정보국은 이날 하르키우 인근에서 러시아군 소속 비탈리 게라시모프 육군 소장을 사살했다고 발표했다. 개전 뒤 러시아군 고위급 인물이 교전으로 사망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이달 초 안드레이 수코베츠키 러시아군 소장도 우크라이나 저격수의 총에 맞아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는 원전 공격·장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하르키우 물리학·기술연구소의 중성자 발생 장치가 러시아의 공격 중에 파괴됐다고 밝혔다. 연구소 내에 방사성 물질 재고가 적어 방사선 누출은 감지되지 않았다. 러시아군이 유럽 최대 원전인 자포리자 원전을 장악한 데 이어 우크라이나 내 나머지 원전도 노릴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우크라이나는 4개 원전에서 원자로 15기를 운영하고 있다.

 

한편 러시아에서는 전쟁을 상징하는 알파벳 ‘Z’가 러시아 당국과 정치권을 중심으로 퍼지면서 전쟁을 지지하는 흐름도 나오고 있다. Z 기호는 러시아어로 ‘~을 위해’를 뜻하는 ‘자(Za)’에서 비롯됐다거나 서쪽(Zapad), 젤렌스키(Zelensky)를 의미한다는 해석이 나왔으나 정확한 뜻은 확인된 바 없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를 나치 독일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에 빗대며 러시아를 비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