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치러진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이번 대선 슬로건에서 ‘국민이 불러낸’, ‘국민이 키운’ 등 유독 국민을 강조하는 표현을 많이 썼다. 늦깎이 검사로 입직해 부침을 겪으면서도 끝내 검찰총장까지 오르는 등 ‘검사 외길’을 걸어온 그가 정치인이 된지 몇 달 만에 대권을 거머쥘 것이라고는 스스로도 예상치 못했다고 한다. 윤 당선인이 다소 수동적으로 비칠 수 있는 슬로건을 내걸었던 이유다.
윤 당선인은 ‘0선 정치 신인’으로 정계 입문 4개월여 만에 제1야당 대선 후보가 됐고, 검사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대통령에 당선되며 한국 정치사에 한 획을 그었다. 그를 일약 ‘스타 검사’로 발돋움하게 한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습니다”라는 발언은 성장 과정과 검찰 재직 시절 곳곳에서 엿보이는 그의 강직함을 함축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다만 ‘정치인 윤석열’이 보여준 리더십은 ‘통합’에 방점을 찍은 유연한 리더십이란 평가다.
◆교수 되려 사시 봐… 9수 끝 입직해 ‘특수통’ 명성
1960년 서울 성북구 보문동에서 대학 교수 부부의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윤 당선인은 유년 시절 부친의 영향을 받아 경제학자가 되길 꿈꿨다고 한다. 윤 당선자의 부친은 한국 사회의 소득 불평등과 통계학 분야에 큰 업적을 남긴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다. 윤 명예교수는 아들에게 ‘더 구체적인 학문을 하라’고 제안했고, 이에 윤 당선인은 서울대 경제학과가 아닌 법대에 진학했다. 5·18 민주화운동 직전 서울대 학생회관에서 열린 교내 모의재판에서 재판장을 맡은 윤 당선인이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건 유명한 일화다. 당시 윤 당선인은 외가가 있던 강원 강릉시로 가 석 달 간 ‘피신’해야 했다.
윤 당선인이 9수만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일도 익히 알려져 있다. 교수가 되려했던 그는 학부 졸업을 앞두고 사시 1차에 처음 합격하자 ‘사시에 붙고 유학을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본격적으로 시험을 준비했으나 2차에서 연거푸 낙방했다. 사람을 워낙 좋아하는 성격의 윤 당선인은 사시 수험생 시절에도 친구·후배들과의 술자리와 토론을 즐겨 ‘신림9동의 신선’이란 별명이 붙었다. 시험을 앞두고 상을 당한 친구를 위해 상여를 메기도 했다.
1991년 제33회 사시에 합격한 뒤 23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윤 당선인은 1994년 대구지검에서 첫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2002년 잠시 검찰을 떠나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1년 넘게 변호사로 근무하다가 “검찰청 짜장면 냄새가 그립다”며 다시 친정으로 돌아갔다. 늦깎이 검사로 평범한 이력을 거치던 윤 당선인은 노무현정부 들어 굵직굵직한 특수 사건들에 잇따라 투입되며 ‘특수통 검사’란 명성을 쌓았다. 그는 2003년 불법 대선자금과 2006년 현대차그룹 비리, 2011년 부산저축은행 비리 등 대형 사건들 수사에 참여했다.
◆부침 겪다 檢총장 올랐으나 또 정권 눈밖에 난 尹
승승장구하던 윤 당선인은 2013년 수원지검 여주지청장으로 국가정보원 댓글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맡아 수사를 벌이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윗선’의 수사 외압을 폭로한 뒤로 험로를 걷게 됐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작심 발언도 이때 국감장에서 나왔다. 대중에겐 그의 ‘정권에 맞서는 강골 검사’ 이미지가 각인됐다. 이후 지방 고검을 떠돌며 4년 간 사실상 ‘유배 생활’을 한 윤 당선인은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최순실 등 국정농단 사건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수사팀장으로 합류하면서 극적으로 부활했다.
이른바 ‘촛불 혁명’의 일등공신으로 인정받은 윤 당선인은 문재인정부 들어 까마득한 사법연수원 선배 기수들을 제치고 서울중앙지검장에 파격 발탁됐다. 그는 정권 초 ‘적폐 청산’ 수사와 공소 유지를 진두지휘하며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중형을 끌어냈다. 문 대통령은 야당의 거센 반발에도 윤 당선인을 검찰총장으로 임명했다.
검찰 수장이 된 윤 당선인은 “살아있는 권력도 엄정하게 수사해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당부를 문자 그대로 행동에 옮겼다가 또 다시 정권의 눈밖에 났다. 특히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전방위 수사를 밀어붙인 게 도화선이 됐다. 그는 정부·여당 인사들은 물론, 여권 지지자들에게 맹폭을 받으며 ‘공공의 적’으로 떠올랐다. 윤 후보는 당시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 간부들이 모인 자리에서 조 전 장관 일가 수사에 대한 의견을 들은 뒤 “수사를 안 하면 우리가 검사냐”는 말과 함께 철저한 수사를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 전 장관의 후임자인 추미애 전 장관은 아예 윤 후보와 1대 1 대립 구도를 형성하며 공개적인 거취 압박에 나섰다. 윤 당선인은 다시 한 번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 국감에서 추 전 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에 대해 “(검찰)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자신의 측근 인사가 모두 잘려나간 검찰 인사를 두고는 “전례가 없는 인사였다”고 작심 비판을 쏟아내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두 사람의 일명 ‘추·윤 갈등’은 추 전 장관이 이른바 검언유착 사건과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의 감찰 방해·재판부 불법 사찰 등을 이유로 윤 당선인의 검찰총장직 직무정지를 명령하면서 최고조에 이르렀다.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가 윤 당선인에게 정직 2개월 처분을 내리기도 했다. 이에 윤 당선인은 두 차례 모두 행정소송을 제기, 법원이 가처분신청을 인용하면서 총장직에 복귀했으나 지난해 3월 자진 사퇴했다.
◆고비 때 특유의 정치력 발휘… 정권교체 끝내 성공
검찰총장 시절부터 이미 ‘반문(反文·반 문 대통령) 세력의 구심점’으로 떠오른 윤 당선인은 임기를 넉 달여 남기고 총장직에서 물러나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는 말로 정계 입문을 시사했다. 이후 약 3개월 간 두문불출하며 각계 원로·전문가들을 만나 정치인으로서 기초체력을 다진 그는 지난해 6월29일 대권 도전을 공식 선언했다. 그가 내건 ‘공정과 상식’은 진보를 표방한 현 정권의 ‘내로남불’에 지쳐있던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윤 당선인은 곧 유력한 야권 대선 주자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정치인 윤석열의 행보도 마찬가지로 부침의 연속이었다. 여의도 문법에 익숙하지 않았던 그는 지난해 7월 말 제1야당인 국민의힘에 전격 입당할 때부터 이준석 당대표와의 불화설에 휩싸이는 등 좌충우돌했다. 일명 ‘윤석열 X파일’ 논란으로 도덕성 리스크가 부각된 데 이어 ‘전두환 옹호’ 발언 논란이나 ‘개 사과’ SNS(사회관계망서비스) 글 등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당내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도 그의 부인 김건희씨와 장모 최모씨 등 처가 관련 의혹이 꼬리를 물었고, 본인의 발언을 둘러싼 논란 역시 끊이지 않았다.
국민의힘 홍준표 의원 등 산전수전 다 겪은 경선 경쟁자들의 견제도 매서웠다. 야권 일각에선 윤 당선인이 문재인정부 초반 적폐 청산 수사를 이끌었다는 점을 겨냥해 ‘보수 궤멸의 주범’이란 꼬리표를 붙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윤 당선인은 정권을 넘나들며 키운 특유의 ‘맷집’으로 파상공세를 견뎌냈다. 당이 전국단위 선거에서 연전연패를 거듭하며 20대 대선 전망까지 어두웠던 만큼, 당원들은 그런 그의 모습에 환호했다. 결국 윤 당선인은 국민 여론조사에서 홍 의원에게 뒤지고도 당원들의 압도적 지지에 힘입어 대선 후보가 됐다.
당 대선 후보가 된 뒤에도 상황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특히 그의 정치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이준석 대표와 윤 당선인의 최측근 인사들을 일컫는 ‘윤핵관’(윤석열 측 핵심 관계자)들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가 하면, ‘매머드’ 선거대책위원회 안팎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온 문제점들로 그의 지지율이 점차 하락했다. 윤 당선인은 고심 끝에 이 대표와 극적으로 화해하는 한편, 그가 ‘원톱’ 총괄선대위원장으로 모셨던 김종인 전 위원장과 과감히 결별하며 선대위를 슬림화하는 등 결단을 내렸다. 이런 판단은 주효했다. 20·30 세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빠져나갔던 지지율이 회복됐고, 이 대표는 ‘비단주머니’를 연달아 내놓으며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의 야권 후보 단일화 문제 역시 공전을 거듭하다 윤 당선인과 안 대표가 직접 만나자 단번에 성사됐다. 다시 상승세를 탄 윤 당선인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지지율 격차를 벌리다 결국 대한민국 20대 대권을 거머쥐었다.
◆요리 즐기는 ‘애처가’… 반려동물에 각별한 애정도
윤 당선인은 ‘애처가’로 불리길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52세에 12살 연하인 김건희씨와 결혼했다. 슬하에 자녀는 없으며 반려견 4마리, 반려묘 3마리를 키우고 있다. 그 중에서도 반려견 ‘토리’는 별도 SNS 계정으로도 운영했을 만큼 윤 당선인에게 친딸 같은 존재다. 윤 당선인은 부동시가 심해 운전면허가 없다고 한다. 이 때문에 병역을 면제받았다.
또 윤 당선인은 유튜브로 ‘석열이형네 밥집’이란 프로그램을 진행할 만큼 요리를 즐긴다. 자신의 특기를 ‘음식 만들기’로 적어낼 정도라고 한다. 경선 중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스테인리스 팬으로 달걀말이를 타지 않게 부쳐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는 ‘한 자리에서 맥주 3만cc를 마신다’고 할 정도로 주량이 세고, 술자리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젊은 세대에서 유행하는 ‘MBTI’(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사람의 성격을 16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것) 검사 결과는 ‘ENFJ’(정의로운 사회운동가)라고 윤 당선인 측은 설명했다. 좋아하는 노래는 돈 맥클린의 ‘어메리칸 파이’, 프레디 머큐리의 ‘보헤미안 랩소디’, 송창식의 ‘우리는’, 정태춘·박은옥의 ‘그대 고운 목소리에’ 등이다. 존경하는 인물은 영국의 전 수상인 윈스턴 처칠, 좌우명은 ‘즐겁게 일하고 재미있게 살자’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