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통령선거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에게 처음부터 불리한 선거구도였다. 대선판을 뒤흔드는 건 구도와 인물, 정책인데, 높은 정권교체 여론이라는 구도를 깨뜨리기에는 인물과 정책에서 이른바 ‘2%’가 부족했다. 초박빙의 승부로 선거전을 이끈 것만도 쉽지 않았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말에도 40% 안팎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면서 문재인정부 및 친문(친문재인) 지지자들과 애매한 거리두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점도 패인으로 지적된다.
이 후보는 ‘일 잘하는 경제 대통령’을 내세운 인물론으로 정권 교체론을 정면돌파하려 했다. 그러나 ‘대장동 특혜 의혹’과 배우자 김혜경씨의 ‘법인카드 사적 유용 의혹’에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전문가들은 10일 통화에서 “이 후보가 유권자들의 정권교체 욕구를 이겨내기에 역부족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대장동 의혹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 데 더해 이른바 ‘형수 욕설’ 등 각종 구설수도 악재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선거 전략상의 실패도 지적됐다.
문 대통령이 선거판에 뛰어드는 양상이 벌어져 중도층을 자극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윤 후보가 언론 인터뷰에서 집권 시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할 것이라고 말한 데 대해 “현 정부를 근거 없이 적폐 수사의 대상, 불법으로 몬 것에 대해 강력한 분노를 표한다”며 윤 후보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강력한 분노’라는 이례적인 표현까지 담긴 문 대통령의 해당 발언에 여권 내에선 부글부글한 친문 세력을 중심으로 이 후보로의 결집 움직임이 벌어졌다. 이는 오히려 중도층에 부정적인 시그널을 주면서 이 후보의 최종 성적에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이 평론가는 “이 사건을 기점으로 이 후보는 문재인정부와 차별화를 못하고 결국 문재인정부와의 원팀 정신으로 복귀, 회귀했다. 차별화에 실패한 것이다. ‘문재인정부 시즌 2’라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주게 됐다”면서 “이는 정권교체론과 전면으로 반하는 선택이 됐다”고 언급했다. 이 후보가 전략적으로 이어온 문 대통령과의 대립각 및 차별화가 결국 흐지부지됐다는 것이다.
이 평론가는 “이재명 대 윤석열 구도로 끝까지 갔어야 했는데, 막판에 구도 자체가 망가져버렸다. 결과적으로는 문재인 대 윤석열 구도가 됐다”고 평가했다. 결국 이는 윤 후보에게 유리한 구도로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왜 윤 후보가 대통령 후보가 됐나. 정권 교체 욕망이 크기 때문”이라며 “결국 문 대통령이 (대선 후보로) 만들어 준 것인데 그때 그 전선으로 (상황을) 확 되돌려버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천대 이준한 교수(정치외교학)도 통화에서 “이 후보에겐 이번 대선이 텃밭도 안 좋았고, 씨앗도 안 좋았고, 농사도 안 좋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텃밭이라면 정권교체 여론 너무 높았고, 씨앗은 후보가 비호감도가 높았다. 농사는 문 대통령과의 관계 등 전략을 잘못 세운 거 같다”고 평가했다. 이 후보는 친노(친노무현), 친문 표심을 온전히 끌어안지도 못했다. 민주당 이낙연 총괄선대위원장의 최측근 출신인 정운현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의 이탈과 윤 후보 지지선언이 대표적이다.
정치평론가인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는 높은 정권심판론과 함께 이 후보가 보여준 오락가락한 정책 메시지를 원인으로 꼽았다. 이 후보는 적극 추진해온 전국민재난지원금과 관련해 여론이 악화하자 “고집하지 않겠다”고 한발 물러난 데 이어 국토보유세 공약에도 “국민이 반대하면 안하겠다”고 선회했다.
자신의 대표공약인 기본소득에 대해서도 “국민 의사에 반해 추진하진 않겠다”며 입장을 바꿨다. 차 교수는 “구도 측면에서 정권심판론이 너무 강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인물도 결국 대장동 의혹에 발목을 잡혀서 자신의 정책 비전을 호소하는 것 보다 대장동 방어에 급급하게 된 측면이 있다”며 “정책도 결국 기본소득 등을 이야기 했지만 반발이 나오니 또 거둬들이고 오락가락했다. 부동산 정책도 주택공급, 규제완화 등 기존 진보 진영 정책과는 다른 패턴을 보이면서 정체성에 혼란이 왔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