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대권 도전이 정권교체를 요구하는 냉엄한 민심의 벽을 넘지 못하고 끝내 좌절됐다. 2017년 대권 도전에 이은 두 번째 실패다. 피를 말리는 초접전 끝에 0.8% 포인트 차이로 석패한 것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 후보는 11개월 전 4·7 재·보궐 선거에서 확인된 부동산 민심이 완전히 진정되지 않은 불리한 구도 속에서 대선 선거전을 시작했다.
출사표를 내민 이래 정권 교체 여론은 줄곧 55% 안팎 수준을 유지했다.
이를 넘어서기 위해 이 후보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에 거듭 사과하고, 대대적인 공급과 세제 완화 등을 약속했다.
선거 과정에서 탈원전 정책에 대해서도 선을 긋고 조국 사태에 대해 사과하는가 하면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닌 이재명의 민주당"을 선언하는 등 문재인 정부와의 차별화에 박차를 가했다.
'유능 대 무능' 프레임을 전면에 내세워 인물론으로 정권교체론을 덮으려 했지만, 민심을 완전히 돌리지 못한 채 분루를 삼켰다.
선거전 초반 사전투표분이 먼저 개표되면서 근소한 차이로 윤 당선인을 앞서갔지만 개표율 51% 시점에서 역전된 뒤 다시 뒤집는데는 뒷심이 부족했다.
경선 기간에 터진 '대장동 의혹'은 부동산 민심과 결합해 선거운동 기간 내내 이 후보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부인 김혜경씨의 과잉 의전 논란과 법인카드 유용 의혹 등 신상 리스크도 거듭되면서 끝내 박스권 지지율을 뚫고 올라가지 못했다.
선거전 막바지에 이뤄진 야권 단일화는 정권교체론을 결집시키는 치명타가 됐다. 이 후보는 다당제와 개헌 등 정치개혁 의제를 부각함으로써 대항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 후보는 10일 오후 여의도 당사에 열린 선대위 해단식에서 "모든 책임은 부족한 후보에 있다"면서 "여러분은 최선을 다했고 또 성과를 냈지만, 이재명이 부족한 0.7%를 못 채워서 진 것"이라고 말했다.
'패장'이 된 이 후보는 당분간 잠행의 시간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이후 계획은 정해진 바 없으나, 이 후보 주변에서는 패배를 곱씹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 뒤에는 정치적 재기에 나설 것으로 예상하는 분위기다.
이 후보 본인도 지난 4일 유세 과정에서 "저는 정치를 끝내기에는 아직 젊다"고 말한 바 있다.
대선 패배 이후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은 아니지만, 측근들은 이 후보의 의중이 어느 정도 담겨 있는 표현일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그는 당내 경선을 전후해서도 꼭 이번 대선에 도전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그만큼 자신의 정치 인생을 길게 보고 있음을 시사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더욱이 50%를 넘는 정권교체 여론에도 불구, 47.83%의 득표율로 역대 대선 중 최소인 0.73%포인트 격차까지 따라잡으면서 차기를 도모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은 확보한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이 후보의 득표수인 1천614만7천738표는 2012년 대선의 문재인 후보(1천469만2천632표)를 넘어 민주당 출신 후보가 기록한 최다 기록이기도 하다.
이 후보가 다시 기지개를 켜는 시점은 민주당의 상황과 맞물리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5년 만에 야당으로 전락한 민주당은 당분간 책임 소재와 향후 진로를 두고 내부 격론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당장 당의 혼란을 수습할 리더십이 눈에 띄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172석의 거대 야당으로서 '윤석열 정부'를 효과적으로 견제할 구심점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 후보에게 생각보다 빨리 다시 정치적 공간이 열릴 수도 있다는 시선도 있다.
특유의 사이다 직진 본능을 다시 구현하며 대여 투쟁의 구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이날 민주당은 비공개 최고위를 열어 비대위 구성 등 대선 패배 수습책 논의와 함께 이 후보를 상임고문으로 위촉했다.
당내에서는 벌써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이재명 역할론'을 거론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후보와 가까운 한 의원은 "대통령 취임식 직후 야당의 입장으로 치러지는 지방선거라 대단히 불리한 환경인데, 역대 민주당 후보 중 최다득표를 해 본 이 후보에게 어떤 식으로라도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이들이 있지 않겠느냐"며 "그 과정에서 도움을 주면서 당을 빨리 추스리고 국민통합·정치교체를 독려하는 방안을 고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변방의 비주류 출신으로서 당내 기반이 취약한 만큼, 그간 주류 세력인 친문 지지층과 함께 한 시간이 정말 '화학적 결합'이었는지, 혹은 일시적 봉합이었는지에 따라 이 후보의 앞길이 얼마나 순탄할지도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대장동 의혹이나 배우자 김혜경씨의 법인카드 의혹 등도 변수다.
대장동 의혹에 대해서는 민주당이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특검을 추진하겠다고 공언까지 한 상태다.
애초에는 국민의힘을 겨냥한 것이지만, 이번 대선으로 수세에 몰릴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사정당국이 선거 종료를 계기로 대장동 의혹이나 법인 카드 문제 등에 대해 수사 강도를 높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