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프랑스, 네덜란드 등 유럽 일부 국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델타 변이와 오미크론 변이가 섞인 ‘델타크론’ 변이가 발견되면서 또 다른 감염 확산의 기폭제가 되지 않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WHO)와 해외 전문가들은 델타크론 변이가 큰 문제가 될 가능성은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다며 과도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입을 모았다.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12일(현지시간) ‘델타크론’으로 알려진 새 변이에 대해 과학자들은 대부분 큰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델타크론 변이가 가장 처음으로 보고된 곳은 지난 1월 동지중해의 섬나라 키프로스공화국이지만, 이는 잘못된 실험실 작업에 따른 오류로 판명 났다. 이어 지난달 미국 워싱턴DC 공중보건연구소의 과학자 스콧 은구옌이 국제인플루엔자정보공유기구(GISAID)의 코로나바이러스 게놈 데이터베이스를 살피던 중 1월 프랑스에서 수집된 샘플에서 델타 변이와 오미크론 변이가 혼합된 사실을 처음 확인했다. 당시 두 개의 변이에 동시 감염된 환자의 샘플일 뿐이란 주장도 제기됐으나, 각각의 바이러스가 두 가지 변이로부터 나온 유전자 조합을 지닌 것으로 확인되면서 델타크론 변이의 존재가 공식적으로 인정됐다. NYT는 이 같은 바이러스를 ‘재조합형(recombinants)’이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델타와 오미크론이 합쳐진 재조합형 패턴은 네덜란드와 덴마크에서도 발견됐다. 은구옌 박사가 새 변이 추적을 위한 온라인 포럼 ‘코브-리니지’에 새로운 발견 내용을 올리자, 다른 과학자들이 그의 발견이 사실이라는 점을 재확인했다.
지난 10일 기준 국제 바이러스 시퀀스 데이터베이스에 보고된 델타크론 샘플은 프랑스 33건, 덴마크 8건, 독일 1건, 네덜란드 1건 등이다. 여기에 추가로 유전자 시퀀싱 업체인 헬릭스가 미국에서도 델타크론 2건을 발견했다고 최근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두 가지 변이가 혼합된 만큼 델타크론 변이가 기존 변이보다 큰 파급력을 가질 수 있다는 보편적 두려움과는 달리 전문가들은 델타크론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의견을 내놨다. 충분히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의 확산력과 중증도 등을 살펴보면 특별히 위험한 수준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에티엔 시몬-로리에르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의 바이러스학자는 델타크론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걱정거리는 아니다”라며 델타크론이 극도로 드문 바이러스라는 점을 거론했다. 델타크론이 최소 1월부터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기하급수적으로 확산할 능력을 아직까지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시몬-로리에르 박사는 또 델타크론의 게놈(유전 정보)이 팬데믹의 새 단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강조했다. 이 변이의 스파이크 단백질 유전자가 대부분 오미크론에서 유래됐기 때문에 감염 또는 백신을 통해 오미크론 변이에 대한 항체를 보유한 사람들은 델타크론에 대해서도 보호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중증으로 이어질 확률이 낮은 오미크론의 스파이크 단백질 특성을 델타크론도 갖고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오미크론 변이의 스파이크 단백질은 코나 상기도에는 쉽게 침투할 수 있지만, 폐 깊숙한 곳으로는 잘 침투하지 못해 중증으로 이어질 확률이 다소 낮다.
WHO와 미국 연방질병통제센터(CDC)도 델타크론을 관심 변이 혹은 위험 변이로 분류할 필요는 아직 없다는 입장이다.
마리아 밴 커코브 WHO 코로나19 기술팀장은 “프랑스와 네덜란드, 덴마크 등 지역에서 델타크론이 확인됐지만 매우 적은 수준”이라며 “WHO는 이 혼합변이를 추적하고 있고 이 변이의 중증도는 다른 변이와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새 변이에 대해 좀 더 밝혀질 때까지 기다려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숨야 스와미나탄 WHO 수석 과학자는 “코로나19의 여러 변이체는 인간과 동물 체내에서 재조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며 “이런 바이러스의 특성을 알기 위해서는 실험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