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으로 번진 ‘꿀벌 실종’… 원인은 이상기후?

전국 양봉농가 18% 피해…50억∼70억마리 실종 추산
“이상기후로 면역체계 약화…밖으로 나왔다가 체력 소진”
벌, 식량자원 70% 수정…멸종 시 인류도 식량 부족 전망
세계일보 자료사진

최근 전국에서 일어난 ‘꿀벌 실종’의 원인은 이상기후 현상과 해충의 복합적인 작용인 것으로 농정당국이 분석하고 있다. 이상기후로 봄꽃이 조기에 개화하면서 꿀벌의 발육이 원활하지 못했던 데다, 방제약에 내성이 생긴 해충에 의해 폐사하는 꿀벌이 늘었단 것이다.

 

15일 최용수 국립농업과학원 양봉생태과 연구관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한국양봉협회에서 조사한 바로는 전체 꿀벌 중에 18% 정도가 피해를 봤다”며 “저희가 원인 분석을 한 결과, 기후변화와 꿀벌 해충이 같이 연결된 현상”이라고 말했다.

 

최근 국내 양봉 농가에서는 꿀벌 무리가 사라졌다는 신고가 잇따랐다. 벌통에 동면하고 있어야 할 꿀벌들이 자취를 감춘 것이다. 경남과 전남, 제주, 충북까지 유사한 현상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농촌진흥청은 지난 1~2월 전국 양봉 농가 99곳을 민관 합동으로 조사했다. 손해를 입은 벌통 숫자는 약 50만통으로, 50억~70억마리가 사라진 것으로 추산된다.

 

화창한 봄기운이 완연한 지난 12일 제주시 용담동 해안가 주변 유채꽃밭에서 꿀벌이 만개한 유채꽃 사이를 날아다니며 꿀을 모으고 있다. 연합뉴스

최 연구관은 이상기후와 꿀벌 해충을 실종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재작년과 작년 2~4월이 굉장히 고온이었다 보니까 봄꽃들이 조기에 개화를 해버렸다. 5~6월에는 강우, 강풍, 저온으로 벌들이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다”며 “꿀을 제대로 먹지 못하면 벌의 면역체계가 약해지고, 병이나 해충에 특별한 대응을 못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꿀벌에 기생하는 응애류와 꿀벌을 사냥하는 말벌류에 의한 피해 규모도 컸다. 이 같은 상황에서 농가가 해충 방제를 위해 과도하게 약제를 사용했는데, 이것이 꿀벌의 발육을 더디게 만드는 악순환이 발생했다고 최 연구관은 지적했다.

 

지난해 11~12월 나타난 고온 현상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약해진 꿀벌들이 밖으로 나왔다가 체력이 소진돼 벌통으로 돌아오지 못한 이른바 ‘월동봉군폐사’가 발생했다는 것이 농정당국의 분석이다.

 

최 연구관은 “일찍이 인류학자들이 꿀벌이 멸종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많이 발표했다”며 “꿀벌이 전 세계 식량자원의 70%를 수정해서 결실을 맺게 하는데, 결실을 맺지 못하게 된다면 인류도 식량 부족으로 생존할 수 없다는 가설”이라고 말했다.

 

그는 “꿀벌이 멸종하고 1년 정도 지나면 빈익빈 부익부가 극대화되면서 사회적 문제로 발전할 수 있다”며 “인공적으로 (식물을) 수정하더라도 식량 가격이 굉장히 상승하게 되면서 돈 있는 사람이 식량을 선점하게 된다”고 밝혔다.

 

이어 “자연 상태에서 화분을 매개하는 효과가 가장 좋은 것은 꿀벌”이라며 “이런 기후변화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화분을 매개하는 다른 곤충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