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북아일랜드의 수도 벨파스트는 슬픈 역사를 가진 도시다. 이곳은 18∼19세기 산업혁명 당시 아일랜드 섬 상공업 중심지였으며 강을 끼고 있어 조선업이 발달했다. 북대서양 횡단 여객선이자 1912년 승객 2200명을 태우고 첫 항해에서 빙산에 부딪혀 침몰한 타이태닉호 역시 벨파스트에 위치한 할랜드 앤드 울프사의 조선소에서 건조됐다.
1960년대 말 이후 벨파스트는 가톨릭교도와 개신교도 간 종교갈등으로 내전을 겪는다. 1998년 4월10일 영국과 아일랜드(아일랜드 공화국)가 벨파스트에서 평화협정을 맺기까지 도시는 종파별로 거주지를 분리하고, 총과 폭탄이 거리를 점령했다. 벨파스트 협정 이후 분쟁은 수그러들었으나, 물리적 충돌은 최근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쉬지 않고 자란다. 버디는 첫사랑에 빠진 아이를 보러 몰래 찾아가고, 매일 축구선수가 되는 기도를 한다. 바쁜 아버지와 어머니를 대신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그런 버디의 진실한 조력자 역을 맡는다. 그들은 손자에게 여자아이한테 말 걸기 전에 꽃을 건네주라고 조언하고, 숙제인 나눗셈을 가르쳐 버디가 수학 성적을 높일 수 있게 일조한다. 가족이라는 다정한 품이 있었기에 수상한 시절임에도 아이들은 제대로 성장할 수 있었다.
버디에게 종교는 이해되지 않는 존재다. 가톨릭은 믿고 회개만 하면 어떤 일이든 허용되며, 개신교는 지옥의 공포를 침 튀기며 말한 뒤 성금을 요구하는 아저씨가 있는 곳이다. 사촌 누나가 알려준 가톨릭교도와 개신교도를 구분하는 방법은 멍청하게만 느껴진다. 그런 것보다 버디는 좋아하는 여자아이와 가까워지고 싶고, 학교에서 좋은 등수를 받고 싶으며 가족과 함께 있길 원할 뿐이다.
소년의 시각에서 바라본 분쟁 시기 벨파스트를 다룬 이 영화는 성장 스토리이자 사랑스러운 한 가족의 이야기다. 어렴풋한 과거의 기억처럼 흑백으로 진행되는 영화를 보다 보면 관객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추억을 떠올리게 된다. 그곳에는 누구에게나 무언가 반짝이던 시절이 있었고, 다신 돌아갈 수 없어 더욱 애틋한 감정들이 흩어져 있다.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변화를 피할 수 없다. 때때로 어떤 변화는 야속하고 견디기 어렵지만, 그 뒤에도 삶은 계속된다. 울며 웃는 9살짜리 인생이 담긴 이 영화는 보는 내내 코끝을 찡하게 했다가 다시 흐뭇한 미소를 띠게 한다. 감독은 영화 말미에 관객들을 향해 “머문 이를 위해(For the ones who stayed)”, “떠난 이를 위해(For the ones who left)”, “그리고 길을 잃은 모든 이를 위해(And for all the ones who were lost)”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오는 23일 국내 개봉 예정인 이 영화는 ‘테넷’, ‘덩케르크’에 출연한 배우이자, ‘나일 강의 죽음’, ‘오리엔트 특급 살인’의 연출을 맡았던 케네스 브래너 감독이 벨파스트에서 자랐던 실제 경험을 토대로 빚어낸 자전적 이야기다. 영화 ‘벨파스트’는 제94회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포함 7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으며 제46회 토론토영화제 관객상 등 전 세계 영화상 38개 부문에서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