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부족에 車값 상승 ‘급가속’… 출고 대기도 ‘기본 옵션’ ['카플레이션' 현상 심화]

수급난에 원자재 상승까지 겹쳐
현대차 아반떼 최하위 트림 기준
2년새 1570만원서 19%나 올라
할인도 사라져 체감 상승폭 커져
인기 차종 1년 이상 대기도 많아
전문가 “2022년 가격 상승 이어질 것”

가장 비싼 소비재인 자동차 가격이 치솟는 ‘카플레이션’(차+가격 상승)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수입차와 국산차를 가리지 않고 “자고 나면 오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차량용 반도체 부족에 따른 공급 부족과 원자재 상승이 겹치면서 벌어진 이례적인 현상이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할인 혜택 실종되고, 가격은 수백만원 뛰어



23일 자동차 제조사와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 등에 따르면 ‘국민차’로 불리는 현대차의 준중형 승용차 아반떼(가솔린)는 2020년 최하위 트림 기준 1570만원에서 올해 1866만원으로 2년 사이 296만원(18.9%)이 뛰었다. 쏘나타도 같은 기간 2386만원에서 2547만원으로 161만원이 상승했다. 특히 쏘나타는 반도체 부족 현상이 심화하기 전만 해도 재고 차량 할인을 수백만원씩 해줬지만 현재는 이 같은 혜택이 사라졌다. 무이자·저리 할부 등 혜택도 요즘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동안 판매량이 적어 상대적으로 할인 혜택이 많았던 중견 3사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한국GM 트레일블레이저도 2년 사이 300만원가량 가격이 올랐고, 르노코리아차의 XM3도 100만원가량 가격이 인상됐다.

한때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까지 할인을 하며 판매 경쟁을 벌였던 수입차 시장도 달라졌다. 독일의 메르세데스-벤츠는 C-클래스의 가격을 2020년 5920만∼6310만원대로 판매했지만 이달 출시할 모델은 6150만∼6800만원으로 가격을 올렸다. E-클래스가 2020년 6300만원, 올해 6730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2년 사이 한 등급 높은 가격을 받는 셈이다. BMW의 대표 스포츠유틸리티차(SUV)인 X5는 2020년 9880만원에서 올해 1억870만원으로 1000만원 가까이 가격이 인상됐다. 수입차 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에도 연식 변경에 따른 가격 인상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폭이 크지 않았다”며 “특히 당연시되던 할인이 거의 사라지면서 실세 가격 상승폭은 더 크다”고 말했다.

미국 전기차 테슬라는 나흘 사이 가격을 두 번이나 올리기도 했다. 지난 11일 주요 모델의 가격을 100만∼200만원 인상한 지 나흘 만인 15일 다시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이에 전기 세단 모델3와 전기 SUV 모델Y는 350만∼440만원이 올랐다. 지난해 초 가격과 비교하면 모델3는 24%, 모델Y는 22%가량 인상됐다. 테슬라의 최고경영자인 일론 머스크는 가격 인상 당일 “최근 원자재와 물류에서 상당한 인플레이션 압박을 받고 있다”는 트윗을 올렸다.

최근 카플레이션 현상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 따른 차량용 반도체 생산 부족이 1차 원인으로 꼽힌다. 이어 원자재 가격 상승과 물류비 증가, 자동차 생산 차질, 코로나19로 인한 차량 수요 증가, 중고차 가격 상승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카플레이션 현상은 지난해 미국 중고차 시장에서 가장 먼저 나타났다. 현재 미국 신차 시장에서는 권장소비자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에 차가 팔리고 있다. 일부 중고차는 신차보다 높은 가격을 형성하기도 한다. 중국, 일본, 유럽 등 세계 주요 자동차 업체들은 잇달아 가격을 인상하며 카플레이션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사고 싶어도 안 팔아”… 마이너스 옵션에 출고 대기 1년도

가격 상승뿐 아니라 현재 자동차 시장에서는 “차를 사고 싶어도 없어서 못 산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온다. 출고 대기는 기본 수개월에서 길게는 1년을 넘기기도 한다.

현대차의 3월 납기표 자료를 보면 얼마 전까지 재고 차량이 쌓여 있던 쏘나타도 평균 납기일이 6주∼2개월로 나타났다. 최근 인기가 높은 하이브리드모델은 4개월, 그랜저는 2.5 가솔린 5개월, 하이브리드 7개월이 걸렸다. 인기가 높은 베뉴는 9∼11개월, 캐스퍼는 4개월이며 싼타페 하이브리드도 9개월에 이른다.

주문을 받으면 생산에 들어간다는 제네시스도 최소 3개월(G70)에서 길게는 10개월 이상(G90)이 걸렸다. 기아도 최소 2∼3개월에서 길게는 13개월(K5 LPI) 이상 걸리는 차도 많았다. 스포티지, 쏘렌토, 카니발 등은 짧게는 7개월, 길게는 16개월 이상 예상 납기가 예고되기도 했다. 특히 최근 인기가 높지만 반도체 소비량이 많은 전기차는 보통 12∼15개월의 대기 시간이 소요된다. 수입차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수개월 대기는 기본이고 인기 차종은 이미 올해 판매분이 다 팔려 1년 이상 대기 기간이 예고된 차량도 많다”고 했다.

◆올해는 카플레이션 유지될 전망… 반도체 수급난 풀려야 해결 기미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올해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이동헌 현대자동차그룹 경제산업연구센터 자동차산업연구실장(상무)은 올해 1월 시장 전망 세미나에서 ‘카플레이션’을 예고한 바 있다. 이 실장은 “지난해 생산 지연으로 나타난 초과 수요 현상이 올해에도 계속되고, 전 세계 인플레이션 압박에 따라 차량 가격이 크게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임은영 삼성증권 전기차(EV)·모빌리티 팀장도 “반도체 부족이 이어지는 올해는 카플레이션이 이어질 것”이라며 “어느 기업에서 가격을 낮추거나 인센티브를 확대하는 시점이 가격 하락의 시발점이 될 텐데 당장은 그럴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자동차는 부동산처럼 유한한 자원이 아니기 때문에 언젠가는 고점에 이르겠지만 그 이후에도 가격이 크게 떨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중고차 가격이 많이 올라 있다는 점도 가격 하락을 어렵게 하는 한 요인”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