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언과 난동, 폭행 등을 포함한 악성민원이 증가하고 있다. 제도적으로 민원담당 공직자를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 방안이 제시돼야 한다는 현장의 목소리는 그만큼 크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은 악성 민원 대응 매뉴얼을 배포하거나 조례를 만들고 있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2020년 중앙행정기관과 지자체 및 교육청 소속 민원 담당 공무원에 대한 폭언·폭행 등의 피해 사례는 4만6079건으로, 2019년(3만8054건) 대비 19.7% 증가했다.
한국행정연구원이 지난해 11월 24∼29일 서울시 본청과 자치구, 서울시 산하 사업소, 구청 산하 사업소 민원 담당공무원 51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보면, 악성민원의 행태와 빈도를 알 수 있다.
피해를 당한 공무원들이 극심한 모멸감과 우울증, 불면증을 겪는 일이 흔했고, 질병휴직을 신청하거나 공직을 그만두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업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7점 척도로 묻자, ‘보다 나은 타 직종이 주어진다면 언제든지 이직할 의사가 있음’이 5.10점으로 강하게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행정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조건만 만족되면 이직 의사에 대한 동의가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공직업무 전반에 대한 만족도가 낮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며 “민원업무 담당자의 낮은 업무 만족도는 조직몰입도 및 업무 수행 역량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조치가 고려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악성민원 증가에 따라 행안부는 ‘공직자 민원 응대 매뉴얼’을 마련해 지자체 등에 배포하고 활용하도록 권고했다. 서울시는 악성민원 대응 매뉴얼 ‘너, 나 지금 무시하냐?’를 자체 제작해 배포하고 활용을 권고하고 있다. 민원대응 공무원들의 정신적 피로도를 낮추기 위한 힐링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여전히 악성민원으로 인한 공무원의 피해를 개인 문제로 치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고, 악성민원 대응 공직자 보호제도 역시 소극적 대처 방안만을 제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행안부와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제시하고 있는 악성민원 대응 체계에 대해서는 공직자 개인의 역량 및 성향이나 직무 특성 등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대응방식을 권고하고 있어, 기초지자체 특성상 다양한 행태의 악성민원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데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고 봤다.
각 지자체의 대응방식에 대해선 가장 적극적인 노력을 보이고 있지만, 사후적 대응체계에 집중돼 사전적 대응개선 방안에 대한 논의가 동시에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행정연구원 관계자는 “민원인과 직접 대면이 빈번한 일선 공무원들이 반복되는 악성민원으로 겪을 수 있는 직무 스트레스 및 업무의 효율성 저하 등에 대한 고려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무원연맹 등은 악성 민원인에 대한 공무원 보호와 사전예방 조치를 담은 구체적인 시행령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민간노동자의 경우 업무와 관련해 고객으로부터 폭언·폭행 등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유발하는 행위를 당할 경우 ‘산업안전법 보건 및 동 시행령’에 관련 규정이 있지만, 공무원은 이 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