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대선 후 19일 만에 청와대에서 마주 앉은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28일 갈등의 진앙격인 추가경정예산안(추경) 편성, 인사권 논란 등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은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손실보상 등을 위한 추경의 필요성엔 원칙적으로 공감했지만, 구체적인 규모나 시기 등에 의견을 모으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양측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했던 한국은행 총재, 감사원 감사위원 등 인사 문제와 관련해서도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고 한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은 정권 이양기 인사, 집무실 이전, 법무부 업무보고 퇴짜 등을 둘러싸고 초유의 치킨게임식 충돌을 이어왔다.
그 결과 양측 모두 정치적 부담이 커진 만큼, 직접 대면한 자리에선 쟁점에 대한 날카로운 공방을 주고받기보다 갈등을 원만히 봉합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이날 저녁 청와대 만찬 회동을 마친 뒤 통의동 인수위 기자회견장에서 회동 관련 브리핑을 했다.
장 실장은 구체적인 추경 규모에 대해 논의했느냐는 취지의 질문에 "구체적인 언급은 안 됐다. '실무적으로 계속 논의하자'라고 서로 말씀을 나눴다"고 말했다.
장 실장은 "이 실무 현안 논의와 관련해 이철희 정무수석과 제가 실무 라인에서 (추경에 대해) 계속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부연했다.
그는 "추경 시기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이야기 안 했다. 구체적 사안은 실무적으로 협의하자고 말씀했다"며 "추경 필요성에 대해선 두 분이 공감하셨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손실보상', '50조원' 등 지금 이야기 나오는 예산 규모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이야기 안 했다"고 거듭 강조하면서 "인수위 측과 청와대가 할 수 있는 한 서로 실무협의를 계속해나가자고 말씀을 나눴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원칙적으로 추경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절차나 규모, 시기 등에선 뚜렷한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 임기 내 2차 추경 편성에 정부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현재 '세출구조조정을 중심으로 시급히 추경안을 짜야 한다'는 국민의힘과 '세출구조조정은 물론이고 더이상은 빚을 내서도 추경할 수 없다'는 정부 측 의견이 맞서고 있다.
여기에 조만간 국민의힘 원내사령탑 교체 이슈가 맞물려 4월 중순까지 원내지도부가 확정되지 않을 경우 문 대통령 임기 내 추가적인 추경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따라서 이날 청와대 회동에서 양측이 추경 관련 구체적인 합의점을 내놓지 못한 이상 결국 윤 당선인의 공약이었던 코로나 손실보상 추경은 차기 정부로 넘어갈 가능성이 커졌다고 할 수 있다.
장 실장은 신구권력 힘겨루기의 한복판에 자리했던 한은총재, 감사위원 등 인사 문제에 대해서도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언급을 피했다.
특히 감사위원 인사를 놓고는 '정당한 권한 행사'(청와대), '방탄 인사'(윤 당선인 측) 등 언쟁을 주고받으며 한때 양측 감정의 골이 깊어진 바 있기 때문에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마주했을 땐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관심이 집중됐다.
장 실장은 '인사 문제에 대해 윤 당선인이 입장을 밝힌 것이 있느냐'는 취지의 질문에 "오늘 구체적으로 어떤 인사를 어떻게 하자는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고 밝힌 뒤,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이 주고받은 짤막한 대화를 소개했다.
문 대통령은 "앞으로 남은 임기 동안 해야 할 인사 문제에 대해 이 수석과 장 실장께서 국민들의 걱정을 덜어드릴 수 있게 잘 의논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윤 당선인은 "이 수석과 장 실장이 잘 협의해주길 바란다"고 화답했다.
장 실장은 "인사 문제에 대해선 이 수석과 제가 실무적으로 계속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라고 덧붙였다.
가장 논란이 됐던 감사위원 인사 문제가 "임기말 감사위원 제청은 부적절하다"는 감사원 측 입장 표명으로 자연스레 해소된 만큼, 기타 공공기관 인사 등을 놓고는 더이상의 잡음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