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한 대학에 다니는 A씨는 지난달 선배들과의 술자리에서 성희롱을 당했다. 한 남자 선배가 술에 취해 다른 이들 앞에서 “너랑 자고 싶다” 등 성적 발언을 한 것이다. 며칠이 자나도 불쾌감이 사라지지 않자 A씨는 교내 성희롱·성폭력 전담기구(이하 전담기구)에 상담을 요청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해줄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 말이었다. A씨는 “담당자가 따로 있지도 않았고, 다른 일을 하던 교직원이 상담했는데 귀찮아하는 것 같아 당황했다”며 “피해가 크면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어떠냐는 이야기만 듣고 왔다”고 토로했다.
대학에서 성희롱·성추행 등 성폭력이 잇따르면서 사건을 일차적으로 담당하는 전담기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일부 대학에서는 전담기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행정기관에 소속된 전담기구는 독립된 전담기구보다 사건 처리 과정에서 미흡한 면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학 411곳 중 성폭력 사건 처리 규정조차 없는 곳은 2.7%(11곳)였는데, 특히 행정기관에서 전담기구를 운영하는 곳 중 규정이 없는 곳은 6.1%(6곳)나 됐다. 반면 독립기구로 운영하는 곳은 모두 규정이 있었다. 또 독립기구는 상담공간 설치율이 90.9%였으나 행정기관에서 운영하는 곳은 74.7%에 그쳤다.
초·중·고교나 직장은 성폭력 사건 발생 시 피해자 분리·보호 조치 등이 시행된다. 하지만 대학은 관련 규정이 없어 전담기구 설치 의무화, 표준화된 보호조치 규정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표준 가이드라인조차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전담기구 중 가해자 징계 등 조치는 57.3%만 하고 있었고, 법률적 지원(40%), 의료적 지원(37.8%) 등 피해자 지원을 하는 곳도 적었다.
전담기구들은 운영의 어려운 점으로 △전문 인력 부족(35.3%) △정규 직원 부족(19.7%) △재정 부족(13.2%) 등을 꼽았다. 업무 담당자들은 ‘업무가 과중하다’(32%), ‘중요 정보 및 지식이 부족하다’(20.8%)고 답하기도 했다.
서울의 한 대학 총학생회 관계자는 “현재 전담기구들은 제 역할을 못 하는 곳이 많다”며 “단순히 전담기구를 설치하는 게 능사는 아닌 만큼 정부 차원에서 전담기구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