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양성불평등지수(GII)에선 한국은 11등이고 아시아에선 1등이다.”
지난 5일 이수정 경기대 교수는 ‘여성가족부 폐지’ 관련 토론회에서 한국의 성차별 문제가 그리 심각하지 않다며 GII 통계를 근거로 들었다. GII는 유엔개발계획(UNDP)이 2010년부터 각국의 성 불평등을 측정하기 위하여 새로 도입한 지수로 순위가 높을수록 평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표상으로는 한국은 중상위권에 속하기에 결코 불평등한 상황은 아니며 순위도 상승하고 있어 여성의 지위가 과거보다 나아진 게 없다고 여기는 건 올바르지 않다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이다.
GII는 한국에 구조적 성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쪽에서 자주 인용하는 지수다. 다른 국제기구에서 발간하는 성 평등 관련 지표들에서는 한국이 하위권인 것과 비교하면 상이한 결괏값이다. 그렇다면 GII는 어떻게 측정하는 것이며 왜 다른 분석을 내놓는 것일까?
◆GII는 여성 인적자원 손실을 측정, 청소년출산율, 모성 사망비율 낮은 한국이 순위 높아
성불평등지수(GII)는 성 불평등으로 인해 나타나는 인간개발의 손실을 수치화했다. △생식 건강 △여성의 권한 △여성의 노동참여 등 3개 부문 5개 지표로 측정하며 0점에 가까울수록 완전한 평등을 실현하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이 11위를 차지한 2020 GII를 살펴보면 1위는 스위스 2위는 덴마크 3위는 스웨덴으로 한국보다 높은 순위를 기록한 나라는 전부 유럽 국가들이다.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가 12위 일본이 13위 중국이 14위를 기록해 한국보다 낮은 순위를 기록했다. 한국이 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여성 인적자원의 손실이 비교적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한국의 순위가 높은 이유는 생식 건강부문(모성 사망비, 청소년출산율)에서 선진국보다 월등히 높은 순위를 기록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한국에서 임신, 분만 및 관련 합병증으로 인해 사망하는 여성 수(모성 사망비)는 10만명당 11명 정도로 건강보험 시스템이 잘 구축되어 있어 저소득층도 출산하다 사망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이에 비해 미국과 같이 부유한 나라도 모성 사망비가 10만명당 19명꼴로 한국보다 높다. 미국의 경우 출산율이 높은 빈곤층의 경우 의료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한국의 청소년출산율은 1000명당 1.4명 정도로 선진국으로 불리는 프랑스(4.7명), 독일(8.1명), 미국(19.9명) 등 서구권 국가들보다 확연히 낮은 편이다.
반면 여성권한, 노동참여 부문은 저조하다. 2020년 지표에서 여성권한을 나타내는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6.7%로 2014년(16.3%)에 비해 0.4%밖에 증가하지 않았고 중등교육 이상을 받은 여성의 비율은 3%가량 증가했다.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도 52.9%로 6년 전(50.1%)보다 2.8%밖에 증가하지 않았다.
여성의 정치·경제활동 참여율이 낮고 유리천장이 높으면 여성들에게 꼭 필요한 입법이 이뤄지지 않거나 권익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할 가능성도 크다. 예컨대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상대적으로 큰 여성들이 요구했던 스토킹처벌법은 처음 발의된 지 22년이 지나서야 국회를 통과했다.
◆GII는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에 가까워
GII는 남녀 격차를 보여주는 상대평가가 아닌 여성의 인권 및 삶의 질을 보여주는 절대평가 성격이 강하다. 남녀 간 격차가 커도 여성의 경제력 수준이 높거나 사회로부터 서비스가 많으면 높게 측정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다른 지표들을 보면 한국은 하위권에 처져 있는 경우가 많다. 2021년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하는 성별격차지수(GGI)를 살펴보면 한국은 156개국 중 102위를 기록했다. GII와 GGI는 모두 한국 정부가 발표하는 통계를 사용하고 있지만 GGI는 남성의 지위를 기본값으로 놓고 그것과 비교해서 여성의 지위를 측정하는 남녀 간의 상대평가다. 한국은 특히 경제 부문에서 123위로 유독 낮은 편에 속했고 세부 항목에 해당하는 고위 임원 및 관리직 여성 비율은 15.7%로 세계 134위에 그쳤다. 이런 이유로 한국보다 경제력은 낮은 국가 중에서도 여성의 정치·경제활동 참가율이 높으면 한국에 비해 높은 순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런 차이에 대해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한국 여성들이 경제력이 좋고 이들이 누릴 수 있는 사회 인프라가 잘 갖춰진 것과 남녀 간 격차가 크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라며 “GII는 여성의 건강이나 수명 등 우리에게 유리한 지표로 구성된 측면도 있으니 단순히 인용할 것이 아니라 그 맥락을 잘 해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