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자만 57명…1999년 ‘인천 인현동 화재’의 실체 “돈 내고 가라고 막아”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방송화면 캡처

 

무려 57명의 사망자를 낸 ‘인천 인현동 화재 사건’의 실체가 공개됐다.

 

지난 7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1999년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를 돌아봤다.

 

1999년 일어난 해당 참사는 당시 서울의 홍대라고 불리던 인천 인현동에서 일어났다. 17살 고등학교 2학년 수연이(가명)는 시험이 끝난 후 절친한 진선이와 함께 당시 신분증 검사를 하지 않던 호프집 ‘라이브’를 찾았다. 

 

그런데 수연이가 잠깐 근처 지하상가에 친구를 만나러 간 사이 라이브 건물에 불이 났고, 바로 119 신고가 접수됐다. 당시 불길은 건물 전체로 번지지 않았지만 1층은 비어있었고, 2층은 출입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출동한 소방관들이 2층 문을 열자 시커면 유독가스로 인해 한치 앞도 볼 수 없었고, 가스가 빠진 후 보인 광경은 참혹했다. 비롯해 테이블 밑, 계단, 좁디좁은 화장실 등에는 곳곳에는 사람들이 겹겹이 쓰러져 있었다. 

 

당시를 기억하는 수연씨는 “내 친구가 저기 있다고 울고불고 했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진선이가 소방관들한테 나오는데 손도 얼굴도 그을렸다. 저는 그냥 기절한 줄 알았다” 증언했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방송화면 캡처

 

결국 이 화재로 진선이를 포함한 57명이 사망했다. 이는 대한민국 역사상 세 번째로 인명피해가 컸던 화재 사건으로 기록됐다. 그런데 2층의 사망자는 모두 중고등학생이었다. 

 

또한 2층 호프집만 사망 56명, 부상 62명으로 피해가 컸던 이유도 밝혀졌다. 호프집의 창문은 열고 뛰어내릴 수도 있을 법한 높이였으나 100명이 넘는 아이들은 나오지 못했다고.

 

화재가 시작된 곳은 지하 1층 노래방이었다. 왜 2층 호프집에서만 이렇게 많은 사망자가 나왔던 것일까. 생존자들에 따르면, 호프집 지배인이 술값을 계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출입문을 막고 나가지 못하게 했다.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견된 화장실은 ‘비상구’ 표시등이 붙어있었지만 실제 비상구는 없던 것으로 밝혀졌다. 옥상 또한 잠겨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당시 호프집 사장은 총 8곳의 업소를 운영하고 있었다. PC방, 노래방, 호프집 등대부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업종이었고, 학교 앞에서 ‘호프집’에 오라며 전단지를 돌린 것으로도 밝혀졌다. 인천시 구청 공무원은 “호프집이 무허가라 폐쇄 명령을 내렸고 출장을 갔을 때는 장사를 안 하고 있었다”는 거짓 보고서를 꾸민 것이 적발되기도 했다. 당시 호프집과 연관된 경찰, 공무원은 40명에 달했고, 호프집의 영업을 눈감아주고 있었던 사실이 드러났다. 

 

친구를 잃은 수연씨는 “술집에 갔던 애, 불량학생, 그런 애라는 말이 듣기 싫어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며 사랑하는 친구의 죽음을 마음껏 슬퍼하지 못했으며 우울증까지 겪었다고 전했다. 

 

이후 호프집 사장은 많은 인명 피해에도 불구하고 징역 5년을 선고받았으며, 당시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고(故) 이지혜 양은 ‘아르바이트생’이라는 이유로 보상금을 받지 못했다.

 

이날 ‘꼬꼬무’에 출연한 이들은 “호프집 사건이라는 이유로 아이들에게 잘못이 있는 것처럼 너무 강조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인식이 바뀌었으면”이라는 소망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