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위지 당티카, <열기구> (‘안에 있는 모든 것’에 수록, 이윤실 옮김, 문학동네)
수년 전 파리에서 인천공항으로 돌아오는 기내에서 한 청년을 유심히 보게 된 적이 있다. 외모와 언어로만 보면 외국인인 게 분명한데 목에 있는 한 글자의 문신을 보고서였다. 헐렁한 티셔츠를 입은 청년의 한쪽 목에 ‘집’이라는 한글이 크고 비뚜름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 한 글자에서부터 파생되는 추측과 상상 때문에 이름도 알지 못하는 그 청년에 관한 생각을 지금도 할 때가 있다. 청년에게 집이란 무엇이었을까, 그 한글을 목에다 새겨야 할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어쨌거나 그 후부터 누군가의 문신을 보면 이상하게 가슴부터 먹먹해지려고 할 때가 많다. 아름다워서, 너무 슬퍼서, 그 의미를 너무 잘 알 것 같아서.
아이티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활동하는 작가 에드위지 당티카의 단편소설 <열기구>의 줄거리는 비교적 단순해 보인다. 대학 신입생인 미국인 니아와 아이티 출신의 루시는 룸메이트가 되어 가까워진다. 추수감사절 동안 니아는 루시의 나라 아이티로 단체 봉사활동 여행을 갔다가 돌아와 여성단체 르베에서 상근직으로 일하기 위해 대학을 그만두겠다는 결정을 내린다. 학과장이자 니아의 아버지가 루시를 찾아와 딸을 설득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 여성단체를 니아에게 소개해준 루시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다면서. 소설의 현재 이야기는 루시가 여성단체가 환히 보이는 맞은편 카페에서 니아를 만나는 장면, 그 하루가 거의 전부다. 루시가 봉사활동을 하면서 본 것들, 상처받은 여성과 소녀들 이야기를 할 때, 잠깐 책을 덮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아니면 눈을 감아버리거나.
소설 수업을 열심히 듣던 제자가 첫 시집을 내 어제 만났다. 저녁을 먹다 말고 나는 제자의 오른쪽 손목 안쪽에 보이는 작은 문신의 의미를 망설이다 물었다. 수줍게 웃던 제자와 밤의 거리에서 헤어지며 <열기구>를 읽다가 네 생각이 났다고 말했다. 스물두 살에 제자는 오른손 손목 안쪽에 자판에 있는 엔터키 모양의 화살표를 새겨 넣었다. 키보드를 두드리다 오른손 약지로 그 키를 누르면 다음 줄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간다. 쓰는 글이, 자신의 인생이 그렇게 다음 장으로 넘어갔으면 하는 바람으로 화살표를 새긴 제자는 이제 시인이 되어 사회적 약자를 위한 연대의 시를 오늘도 쓰고 있을 것이다. 소설과 시. 어떤 문학들은 독자에게 뜨거운 손을 건넨다. 에드위지 당티카에게 큰 영향을 끼친 작가 토니 모리슨의 말처럼 우리가 “최선을 다해 타자를 상상해야” 하는, 바로 그 일에 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