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는 유럽 한 가족의 일원입니다. 우크라이나가 유럽의 미래를 향해 행진하는 동안 러시아는 몰락할 것입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 인근 부차에서 저지른 끔찍한 민간인 집단학살이 유럽인들의 마음을 완전히 돌려놓았다.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EU) 가입 신청에 주저하는 태도를 보인 일부 회원국마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곧 유럽의 전쟁’이라며 강한 연대의식을 표명하고 나선 것이다.
EU의 행정 수반에 해당하는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8일(현지시간) 키이우를 전격 방문한 뒤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향해 “당신들의 싸움은 우리의 싸움”이라며 “나는 오늘 키이우에 있다. 유럽은 여러분 편”이라고 선언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우크라이나에서의 공식 일정을 시작한 곳은 다름아닌 부차. 얼마 전 러시아군이 철수한 이후 잔인하게 살해된 민간인 시신 수백구가 발견돼 전 세계를 비통과 공분에 잠기게 한 장소다.
검은 비닐에 담긴 민간인 시신을 둘러본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참담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부차에서 우리 인류는 산산조각이 났다”고 단언한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을 겨냥해 “잔학 행위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재판에 회부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러시아군과 싸우다 전사한 우크라이나 군인 및 민간인들의 명복을 빌며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우리는 결코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희생에 필적할 수 없다”고 미안함을 표시했다. 직접 군대를 보내 도와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없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대신 그는 “푸틴이 대가를 치르도록 하기 위해 경제력을 동원하고 있다”는 말로 더욱 더 가혹한 대(對)러시아 경제제재를 준비 중임을 내비쳤다. “러시아는 결국 몰락할 것”이라고도 했다.
부차를 둘러본 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키이우 시내 모처에서 전투를 지휘 중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만났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얼마 전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을 신청한 데 이어 관련 절차가 신속히 진행되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한 바 있다. 당시만 해도 일부 회원국이 난색을 표했으나 부차 학살이 유럽인의 마음을 완전히 돌려놓았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우리 모두를 위해 자유의 횃불을 들고 있다”며 “오늘 우크라이나는 EU 가입을 위해 또 다른 중요한 발걸음을 내딛는다”고 선언했다. 이어 “EU는 이 과정을 최대한 가속화하면서 모든 조건이 존중되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가 EU의 당당한 일원이 되는 데 ‘청신호’가 켜진 셈이다.
EU는 이미 우크라이나에 군사원조 명목으로 10억유로(약 1조3366억원)를 지원한 바 있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은 “더 많은 도움이 제공될 것”이라며 젤렌스키 대통령한테 “우크라이나 군대 지원에 5억유로(6683억원)를 추가로 배정하겠다”고 굳게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