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12일 의원총회 끝에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4월 국회 안에 강행하기로 하면서 정국 급랭이 불가피해졌다. 민주당은 검찰이 집단 항명하는 모습을 보고, 더 이상 개혁을 물러설 수 없다는 판단과 함께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지층 결집을 위한 노림수를 둔것으로 해석된다.
민주당이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검수완박’ 법안은 형사소송법 196조에 규정된 검사의 직접수사 권한을 원칙적으로 폐지하는 내용이다. 검찰이 갖고 있던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산업·대형참사)’ 수사권을 명시한 검찰청법 4조의 단서 조항들도 모두 삭제된다. 대신 형사소송법 197조 3항을 신설해 경찰 직무에 관련된 범죄를 비롯한 일부 사안으로만 수사 범위를 제한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박주민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우선 검찰 수사권을 분리하는 법안을 4월 국회 중에 통과시킨 뒤 곧 여당이 될 국민의힘 및 (윤석열)정부와 협의해 경찰에 대한 통제 방안과 집행 방안을 논의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전날 당 소속 대의원들을 대상으로 ‘검수완박’ 추진 찬반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한 재선 의원은 통화에서 “찬성 비율이 80%가 넘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고 귀띔했다. 이 같은 배경에 한 여권 관계자는 통화에서 “지방선거를 앞두고 문재인정부 임기 안에 검찰개혁을 완수하라는 지지층의 문자폭탄이 쇄도했는데 이를 부응하지 못하면 안 되지 않겠는가”라며 “특히 지방선거는 투표율이 대선이나 총선보다는 낮은 경향이 있어서 집토끼라도 확실히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개혁 추진을 너무 촉박한 게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박 의원은 “수십년 된 논의다. 수사·기소 분리에 대해선 많은 검토가 있어왔다”며 “경찰이 6대 범죄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분들이 걱정하고 있지만 지금 이미 하고 있다.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고 답했다. 정치권과 법조계 일각에서 우려하는 수사 공백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셈이다.
마지막 변수는 국민의힘과 정의당 등의 공조다. 국민의힘은 앞서 예고했듯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등 가용한 수단을 총동원해서라도 저지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형수 원내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이달 중 (검수완박 관련 입법) 강행 처리를 하려고 한다면 필리버스터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저지할 것”이라며 “정의당과 검수완박 법안 추진에 대해 적극 연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본회의에서 필리버스터를 종결시키려면 재적의원 3분의 2(180석)가 찬성해야 하는데, 정의당이 필리버스터에 찬성할 경우 강제 종결이 어려워진다. 민주당과 민주당 계열 출신 무소속, 기본소득당, 시대전환 의원을 합하면 180석이다. 하지만 무소속 이상직 의원이 구속 수감 중이어서 민주당이 최대 확보할 수 있는 의석은 179석이다.
박 원내대변인은 민주당 정책 의총이 끝난 직후 낸 논평에선 “(검수완박 입법 추진은) 다가올 지방선거, 2년 뒤 총선에서 반드시 (민주당에) ‘자승자박’이 돼 돌아올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검수완박 법안 강행은 대선 민심을 거스르는 것이며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 이재명 (상임)고문을 지키기 위한 ‘방탄법안’을 만들겠다는 것”이라면서 “민주당은 검수완박 폭주를 당장 멈추고 야당과 형사사법시스템 개선 TF(태스크포스) 또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민변·참여연대도 “졸속입법 안돼”
변호사 업계와 학계는 물론 문재인정부의 검찰개혁을 지지한 시민단체도 정권 교체기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박탈)에 일제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이 검수완박을 당론으로 채택해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법센터는 12일 ‘검찰개혁은 계속돼야 하나 국민에게 불편을 끼쳐서는 안 된다’는 제목의 논평을 내고 “소위 검수완박, 수사권과 기소권을 (조직적으로) 분리하는 형사소송법 개정도 그 방향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면서도 “현시점에서는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센터는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등 새로운 제도가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수사역량을 확보할 방안 등 여러 가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달리 대한변호사협회 등 다른 변호사 단체들은 검수완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참여연대는 이날 오후 ‘검찰개혁 관점에서 본 검수완박,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의 좌담회에서 “검찰개혁 관점에서 수사·기소 분리는 논의될 수 있지만, 다양한 이해관계·제도·기관을 포괄하는 대단히 복잡한 영역인 만큼 충분한 논의와 협의가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현 정부 검찰개혁을 지지한 대표적인 시민단체다.
교수·변호사 등 형사소송 전문가들 모임인 한국형사소송법학회는 전날 “국가의 형사법체계를 놓고 감행한 섣부른 실험 뒤에 따라오는 여러 부작용과 고통은 잠재적 피해자인 일반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며 “근본적인 법 개정은 반드시 진지한 연구, 토론과 국민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초 검경 수사권 조정이 시행된 지 1년여 만에 또다시 형사사법제도를 바꾸게 되면 국가사법체계의 혼란이 불 보듯 뻔하다. 수사 지연 등 수사권 조정의 풍선효과도 심각한 실정이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전국 검찰청에서 경찰에 보완수사와 재수사를 요구한 사건 중 3개월 안에 해당 조치가 이행된 사건은 각각 전체의 56.5%, 50.0%에 불과했다. 또 허위 고소·고발 중 경찰이 불송치한 사건에 대해 검찰이 무고 인지를 할 수 없게 되면서 지난해 검찰의 무고죄 인지 및 처분 건수는 전년 대비 28.9%, 28.8% 수준으로 줄었다.
민형배·이수진 의원 등 민주당 의원들이 대표 발의한 각종 검수완박 법안들에 대해 대검이 지난해 관계 기관 의견으로 낸 내용을 종합하면 검찰은 위헌 소지도 검수완박 반대 이유로 내세운다. 검수완박이 헌법상 인권 보호 및 수사 주체로 명시된 검사의 기능, 즉 존립 자체를 부정한다는 것이다.
검찰은 또 6대 중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 참사) 수사권마저 박탈될 경우 갈수록 지능화·조직화되는 이들 범죄에 대응하는 국가적 수사역량에도 위협이 된다고 본다.
검찰은 이날도 적극적인 여론전을 펼쳤다. 김후곤 대구지검장은 CBS 라디오에 나와 “저희가 국민들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기에 이런 (검수완박) 법안이 추진되는 것”이라면서도 “빈대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고 날을 세웠다.
전국 검찰 수사관들도 일제히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서울남부지검 사무국장·과장·사무관 일동은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올린 입장문에서 “검찰 수사권 폐지가 우리 가족을 범죄로부터 지키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인지 의문”이라며 “수사는 국민 기본권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민의를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형사사법체계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법안을 이런 식으로 추진하는 게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냐”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