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 4월22일 저녁 벨기에의 서부 도시 이프레. 독일군과 대치하던 프랑스군 참호로 수상한 녹색 연기가 서서히 퍼져나갔다. 불과 10여분 만에 참호에 있던 프랑스군 6000여명이 심한 기침과 함께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이 연기는 치명적인 염소가스로 드러났다. 가공할 대량살상무기에 경악한 연합군도 즉각 화학무기 개발에 나서면서 1차 대전은 통제불능의 독가스 전쟁터로 전락했다. 그 결과 종전 때까지 약 9만명 사망, 120만명 부상이라는 흑역사가 만들어졌다.
화학무기는 인체에 해를 입히는 독극물이나 화학 물질을 이용한 모든 무기를 뜻한다. 폐와 호흡기를 공격하는 질식성 유독가스, 신경 전달 물질을 방해하는 신경 작용제 등은 극소량으로도 인체에 치명적이다. 액체상태인 VX 같은 신경성 독가스는 한두 방울로 성인 남성의 목숨을 짧게는 수분 안에 앗아간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됐을 때 VX 성분이 검출됐다. 북한은 VX 등 25종의 화학작용제 2500t 이상을 보유한 세계 3위의 화학무기 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