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정부의 한동훈 초대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13일 “(검찰 수사권 박탈 관련) 법안이 통과되면 국민이 크게 고통받게 될 것이기 때문에 법안 처리 시도가 반드시 저지돼야 한다”며 더불어민주당이 당론으로 채택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박탈) 법안 추진을 정면 비판했다. 이날 대통령직인수위도 민주당의 검수완박 추진을 “헌법 파괴이자 대선 불복”이라고 규정하며 즉각 중단을 촉구하고 나섰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과 공공기관 인사권 충돌에 이어 검수완박 법안으로 신·구 권력 갈등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정권 교체기에 정국이 급랭하고 혼란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한 후보자는 이날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뒤 기자들과 만나 “이 나라의 모든 상식적인 법조인, 언론인, 학계, 시민단체들이 (검수완박 관련 법안 추진을) 한목소리로 반대하고 있다. 법안이 통과되면 국민이 크게 고통받게 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하지만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이 취임 전부터 ‘취임덕’, ‘검수완박 강행’을 외치자 어차피 갈등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가장 신뢰하는 최측근을 법무부 수장으로 기용하며 정면돌파에 나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법무·행정부 장관에 정치인 배제 방침을 세우다 보니 새 정권과 호흡을 맞출 적임자를 찾기 어려운 현실적 여건도 고려됐다는 시각도 있다. 한 후보자가 장관이 되면 검수완박 법안이 처리되더라도 법무장관이 발의할 수 있는 상설특검제도를 활용해 일부 수사를 진행하며 민주당을 압박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윤 당선인 측은 민주당의 검수완박 추진에 대해 사실상 전면전을 선포했다. 인수위 정부사법행정분과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수사권의 완전폐지는 검사에게 영장신청권을 부여한 헌법의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으로서 헌법 파괴 행위”라며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대선으로 확인된 민의에 불복하는 것이자, 새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도 격앙된 반응을 보이며 맞섰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한 후보자 지명에 대해 “인사 참사 정도가 아닌 대국민 인사 테러이자, 통합을 바라는 국민들에 대한 전면적이고 노골적인 정치보복 선언”이라며 “측근들을 내세워 검찰의 권력을 사유화하고, 서슬 퍼런 검찰공화국을 만들겠다는 의도를 국민 앞에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오수 검찰총장은 이날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열고 “오늘(13일) 정식으로 대통령님께 민주당에서 당론으로 확정한 검찰 수사권 전면폐지 법안과 관련한 면담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어 “잘못된 제도가 도입된다면 10번이라도 사표를 내겠다”며 검수완박 저지를 위한 총력전을 예고했다.
◆尹, 檢 독립성 강화 힘 싣기… 韓 “수사지휘권 행사 안할 것”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13일 한동훈 법무장관 후보자 내정은 문재인정부 5년 동안 왜곡된 형사·사법체계를 바로잡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윤 당선인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추진 중인 더불어민주당의 극심한 반발에 맞설 최측근 인사로 ‘한동훈 법무장관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관측도 있다.
특히 이번 인선은 민주당이 검수완박을 당론으로 채택한 와중에 발표된 것이어서, 정권 이양기 속 여야 갈등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민주당은 즉각 “검찰공화국으로 가는 서막이 열렸다”며 한 후보자 지명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韓 “검찰은 나쁜 놈들 잘 잡으면 되는 것”
윤 당선인은 법무부의 독립 외청인 검찰이 지금보다 큰 독립성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현 정부 아래서 정치인 출신 장관의 수사 개입으로 인해 벌어진 폐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윤 당선인은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를 사법 분야 공약으로 제시했다.
윤 당선인과 한 후보자는 현 정부 법무장관들의 거듭된 수사지휘권 행사를 직접적으로 맞닥뜨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당시 검찰총장이던 윤 당선인을 처가 의혹 관련 수사 지휘 선상에서 완전히 배제했다. 이른바 ‘채널A 사건’도 추 전 장관의 지휘권 행사로 윤 당선인이 개입하지 못했다. 해당 사건은 한 후보자가 방송사 기자와 공모해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에게 여권 인사 비위 의혹을 털어놓을 것을 강요했다는 의혹에서 시작됐다. 한 후보자는 2년 만에 이 사건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 외에도 후임인 박범계 현 법무장관은 이미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 대한 모해 위증 의혹을 들여다보라며 지휘권을 행사했다. 결국 정치권력이 수사에 개입하는 통로로 수사지휘권을 활용해왔다는 것이 윤 당선인의 판단이다. 헌정사상 법무장관의 지휘권 행사는 4차례 있었는데, 이 중 3번이 현 정부 아래서 행사됐다.
애초 정치인 배제 기조를 세운 윤 당선인은 일찌감치 한 후보자를 차기 법무장관으로 염두에 뒀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의 수사 개입 시도에 휘둘리지 않을 인물이 마땅치 않았다는 말도 나온다. 윤 후보자는 지난 2월 대선 후보 시절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한 후보자에 대해 “거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처럼 해온 사람”이라며 “굉장히 유능한 검사라 아마 검찰 인사가 정상화되면 중요한 자리에 갈 것”이라고 했다.
한 후보자는 이날 인선 발표 후 기자들과 만나 “검찰은 법과 상식에 맞게 진영 가리지 않고 나쁜 놈들을 잘 잡으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검수완박’ 관련 견해를 묻는 말엔 “국민을 위해서는 통과돼선 안 되는 법”이라고 했다.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에 대해선 “박범계·추미애 장관 시절 수사지휘권 남용의 해악이 국민들에게 얼마나 큰지 실감했다”며 “제가 장관에 취임하더라도 구체적 사건에 대한 지휘권 행사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검찰독재에 맞설 것”
민주당은 즉각 반발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 회의에서 윤 당선인을 겨냥해 “측근을 내세워 검찰 권력을 사유화하고 서슬 퍼런 의도를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벌써부터 한동훈(후보자)보다 차라리 ‘별장 성 접대’ 김학의 전 (법무)차관이 낫다는 이야기도 나온다”면서 “국민통합과 협치를 생각한다면 한 후보자 지명을 철회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당 오영환 원내대변인은 논평에서 “윤 당선인의 검찰 독재에 맞서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고 검찰을 정상화하기 위해 모든 힘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정태호 의원은 “민주당의 ‘수사·기소 완전분리’ 당론 채택에 이어 나온 것이라 야당에 대한 전쟁 선언으로 보인다”며 “이로써 검찰개혁의 정당성이 더욱 분명해졌다”고 했다.
민주당의 반응은 향후 한 후보자가 장관 취임 후 상설특검법에 따라 여권 인사들을 수사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됐다는 평가다. 이 법은 법무장관이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사안에 대해 별도 특검법 제정 없이 곧장 특별검사 임명 절차에 들어가는 신속성이 장점이다.
◆윤석열 사단의 대표 ‘특수통’ 검사 “尹과 공정에 한 뜻… 맹종관계 아냐”
윤석열정부의 첫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13일 지명된 한동훈(49·사법연수원 27기) 사법연수원 부원장(검사장)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검사 시절 최측근이자 특수수사 분야에서 많은 경험을 쌓은 특수통이다. 검찰 출신 법무부 장관 내정은 2016년 박근혜정부 때 김현웅 전 장관 이후 6년 만이다.
한 후보자는 서울대 법과대학 재학 중인 1995년 제3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며 법조계에 발을 내딛었다. 2001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로 임관한 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찰 연구관, 대검 정책기획과장, 서울중앙지검 초대 공정거래조세조사부장 등을 지냈다. 전국 최대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의 특수수사를 총괄하는 3차장 검사를 비롯해, 전국 검찰청의 특수수사를 지휘하는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을 맡아 역대 최연소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윤 당선인의 검찰 재임 시절 SK 분식회계와 대선 비자금, 현대차 비리, 외환은행 매각, 최순실 국정농단 등 굵직한 사건 수사를 함께해 검찰 내 대표적인 ‘윤석열 사단’으로 분류된다. 특히 전임 법무부 장관들을 비롯해 현재 김오수(60·〃20기) 검찰총장이나 고검장보다 훨씬 낮은 기수라 ‘파격인사’라는 평가다.
한 후보자도 “그분(윤 당선인)과 저는 공정과 정의에 대해 뜻을 같이했다고 생각한다”며 “그 이상 인연에 기대거나 서로를 맹종하고 끌어주고 밀어주는 관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검찰, 법무부에서 근무하는 동안에 상식과 정의에 맞게 일하려고 노력했다고 자부한다”며 “그 과정에서 개인적인 연에 기대지 않았고 맹종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검사장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윤 당선인의 갈등으로 2020년 1월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좌천됐고, 이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사법연수원 부원장 등 비수사 보직을 떠돌았다. 이른바 ‘채널A 강요미수’ 사건에 연루돼 ‘검언유착’ 의혹을 받았지만 2년 만인 지난 6일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파격 인사, 물갈이 예고편”… “尹 사단 챙기기 우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13일 법무부 장관 후보로 검사 시절 최측근인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검사장)을 깜짝 발탁하자, 검찰 내부와 법조계에서는 ‘보복 수사’ 논란을 비켜갈 수 있는 ‘신의 한 수’란 평가와 함께 ‘윤석열 사단’ 챙기기가 반복되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엇갈리고 있다.
한 검찰 고위간부는 “의미 있는 파격 인사”라며 “문재인정부 초기 윤석열 당시 고검 검사가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직행한 것과 비슷한 일이다. 윤 당선인 최측근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어떤 수사를 해도 정치적인 논란거리가 될 수밖에 없는데, 한 후보자 개인으로 보나 검찰 조직으로 보나 ‘신의 한 수’”라고 평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후보자는 본인 손에 이제 더 이상 피를 안 묻힐 수 있어 법무부 장관 이후의 길도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반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저지를 위해 검찰이 집단 대응하는 상황에서 윤석열 사단의 득세가 여론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변호사는 “윤 당선인이 총장 시절 이른바 ‘윤석열 사단’ 챙기기로 검찰 내부에서 불만이 적지 않았는데, 한 후보자도 같은 길을 가는 건 아닌지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했다.
사법연수원 27기인 한 후보자를 장관에 발탁했기 때문에 검찰총장을 비롯한 선배 기수 검찰 간부들이 줄사표를 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검찰 관계자는 “법무장관은 정무직이고 검찰은 외청이기 때문에 후배 검사가 장관이 됐다고 당장 줄사표를 내지는 않을 것 같다”면서도 “이번 파격 인사를 신호탄으로 후속 인사에서도 비슷한 기조가 유지되면 결국 물갈이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