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이후 첫 한국 공연이 너무 기대됩니다. 팬데믹 동안에 아주 큰 변화가 있었어요. 특히, 대중 앞에서 연주하는 건 매우 중요한데 그럴 기회가 없었습니다. 물론 온라인 콘서트나 실황중계 같은 형태의 공연이 있었지만, 결코 (오프라인) 공연과 같지 않았어요. 마침내 사람들 앞에서 연주할 수 있게 된 게 너무 기쁩니다.”
‘첼로계 음유시인’이나 ‘첼로 거장’으로 불리는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74)는 피아니스트인 딸 릴리 마이스키(35)와 함께 5년 만의 내한 공연을 앞두고 최근 국내 언론과 서면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두 사람은 오는 29일 군산예술의전당을 시작으로 다음 달 1일 서울 예술의전당콘서트홀, 3일 광주문화예술회관에서 연주회를 한다.
전설적 첼로 거장인 로스트로포비치와 피아티고르스키를 모두 사사한 유일한 첼리스트로 독특한 음악 해석과 자유분방한 연주 스타일로도 유명한 마이스키는 한국 사랑도 각별하다. 1988년 3월 첫 내한공연 이후 꾸준히 한국을 찾아 국내 클래식 팬들에게도 친숙한 그는 인터뷰에서 “(이번 내한이) 24번째인 것 같은데, 가장 그리웠던 건 한국의 관객이었다”고 했다. 현재 지휘자로 활약하는 첼리스트 장한나가 애제자이기도 하다. 마이스키는 몇 달 전 독일 함부르크에서 장한나의 지휘로 함께한 연주를 언급하면서 “알다시피 한나는 제 유일한 제자”라고 애정을 드러냈다.
마이스키 부녀는 이탈리아에서 첫 공식 연주회를 가진 2005년부터 17년가량 함께 연주하고 있는데 서로를 가장 편안한 파트너로 꼽는다. 이번 무대에선 4개 곡을 들려준다.
공연 1부에서는 클라라 슈만의 3개 로망스와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을 연주한다. 원래 바이올린을 위해 작곡된 곡을 첼로용 버전으로 편곡해 들려준다. 그는 첫 곡인 클라라 슈만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3개의 로망스는 “특별하고 놀라운 곡”이라고 소개했다. “이 곡은 원래 바이올린 곡입니다. 사실 저는 클라라 슈만의 곡을 지금까지 연주해본 적이 없어서 새로운 발견이었습니다. 물론 클라라 슈만 자체가 대단한 여성이었죠. 슈만과 브람스라는 최고의 작곡가들이 사랑했던 여성이었고, 위대한 피아니스트이기도 했고요. 이 곡을 통해 경이로운 작곡가이기도 했다는 걸 다시금 알게 됐죠.” 특히,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은 클라라 슈만이 가장 좋아했던 곡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그녀는 브람스에게 자기 장례식에 이 곡의 마지막 악장을 연주해달라고 부탁했는데, 브람스가 전 악장을 모두 연주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런 점에서 첫 번째 곡과 두 번째 곡은 좋은 조합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이스키는 “이 곡은 위대하다고 부를 수밖에 없는 걸작인데, 제겐 감정 소모가 유난히 많은 작품”이라면서 “이 곡 (연주)후에는 어떤 것도 더 연주할 수가 없고 곧바로 휴식이 필요하다. 그(이 곡) 뒤에 인터미션을 둔 게 바로 이런 이유”라고 덧붙였다.
2부는 2019년 발매한 앨범 ‘20세기 클래식’ 수록곡 중 브리튼 첼로 소나타 C장조와 피아졸라 ‘르 그랑 탱고’가 장식한다. 두 곡은 스승이었던 로스트로포비치에게 헌정된 곡이기도 하다. ‘20세기 클래식’ 앨범은 메시앙, 피아졸라, 브리튼, 바르톡, 프로코피예프 등 20세기 작곡가 작품을 담았는데, 격변의 시기에 작곡된 곡들의 특성과 첼로의 방대한 음역, 폭넓은 음색, 풍부한 연주 기법이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았다.
“‘20세기 클래식’ 메인곡이자 제가 가장 좋아하는 20세기 작품인 브리튼의 첼로 소나타는 매번 관객들에게 큰 호평을 받는 곡이에요. 한국 관객들도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브리튼이 피아노를 연주하고 스승님이 첼로를 연주하는 걸 들었는데 진짜 대단했습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의 음악은 유독 마음에 와닿아요. 브리튼은 20세기 최고 낭만주의 작곡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고, 작품이 정말 아름다워 연주하는 게 즐겁습니다. 피아졸라의 ‘르 그랑 탱고’도 훌륭한 곡이에요.”
피아졸라가 1982년 작곡한 르 그랑 탱고는 마이스키 외에도 로스트로포비치, 요요마, 카퓌송 등 수많은 첼리스트가 녹음한 유명 레퍼토리다. 음악지 그라모폰은 마이스키의 르 그랑 탱고에 대해 “라틴 음악의 열정을 생생하고 선명하게 표현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라트비아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러시아에서 교육 받고 이스라엘로 귀환한 마이스키의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1965년 레닌그라드 필하모닉(현 상트페테르부르크 오케스트라)과 협연으로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얼마 후 첼로 대신 삽을 들어야 했다. 1969년에 누나가 이스라엘로 망명하자 노동형을 선고받고 강제수용소 생활을 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과 코로나19 사태 등 어려운 상황에서 음악가의 역할에 관해 묻자 그는 “클래식 음악이 세상을 구하거나 커다란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음악은 사람들이 어려운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돕고, 폭력을 겪은 후나 끔찍한 상황에서 더 좋은 인간성을 기르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