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식 검찰 개혁 시작됐다… 법조계 “한 법무 지명은 물갈이 신호탄” [이슈+]

검찰, 한동훈 발탁에 윤석열식 검찰권 회복 정공법 분석
검사들 “정치인 출신 법무보다 기수역전 검사가 더 나아
갈 사람과 남을 사람 스스로 거취 생각해야 한다는 뜻”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브리핑룸에서 2차 국무위원 후보 및 대통령 비서실장 인선 발표를 하고 있다. 오른쪽은 법무부 장관에 내정된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 인수위사진기자단

“결국 나가라는 뜻 아닌가. 윤(석열) 당선인의 정공법이다.”

 

지난 13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한동훈 사법연수원부원장(검사장)을 새 정부 초대 법무부장관으로 지명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나온 A 검사장의 촌평이다.

 

사법연수원 27기인 한 검사장보다 선배인 그는 “어느 정도 변화는 예상했지만 한 검사장의 법무부장관 행은 예상을 뛰어넘는 인사였다”며 “고검장 자리를 노렸던 검사장과 현직 고검장들은 어느 정도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한 검사장의 발탁을 검찰에 정통한 윤 당선인의 물갈이 전략으로 해석했다. 갈 사람과 남을 사람 스스로 거취를 생각해야 한다는 윤 당선인의 의중이 반영된 게 아니겠느냐는 얘기다.

 

김오수 검찰총장을 제외하더라도 한 검사장보다 선배인 검찰 고위 간부만 22명에 달한다. 검찰총장과 달리 법무부 장관은 기수에 따른 검찰 인사에 영향이 적겠지만, 새 정부에서 단행될 검찰 인사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검찰 안팎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검찰에 변화의 소용돌이가 불어닥치고 있다.

 

지난 13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검찰 깃발이 날리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 정상화’, 윤석열표 검찰개혁의 시작

 

14일 법조타운인 서초동에서는 이번 한 검사장의 법무부장관 발탁이 윤석열식 검찰 정상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금까지 검찰과 사사건건 부딪쳐온 법무부 장관에 대통령의 복심을 앉혀 ‘검찰개혁’을 기치로 진행되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대응하는 동시에, 특수부 수사를 포함한 수사권 회복에 나설 수 있다는 해석이다.

 

‘검찰공화국’이라는 더불어민주당 등의 비판 목소리가 크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 당선인이 한 검사장을 법무부장관으로 발탁한 것은 그만큼 검찰권 회복 의지가 큰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치인 출신인 추미애·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검찰개혁을 명분 삼아 정치적인 검찰 인사로 조직을 흔들고 검찰의 독립성을 훼손했다고 판단한 윤 당선인이, 한 검사장을 기용해 검찰 정상화 작업에 돌입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라는 법조계의 해석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총장에 대한 수사지휘권과 검찰 인사권, 상설특검 직권개시 권한을 모두 쥐고 있는 법무부장관 발탁이 묘수였다는 평가도 나온다.

 

재경 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이번 한 검사장의 법무부 장관행이 발표된 뒤 놀랍기도 했지만 기대가 더 컸다”며 “최근까지 이어져 온 법무부의 검찰 독립성 훼손에 대항해 한 검사장이 수사만 할 수 있는 검찰을 만들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정의 모습. 뉴스1

◆누가 떠날 것인가… 측근 중용 가능성

 

이번 한 검사장의 발탁으로 검찰 고위간부들은 거취를 고민할 수밖에 없게 됐다.

 

현재 직을 유지하고 있는 검찰 고위간부 중 한 검사장보다 선배 기수는 모두 23명이다. 김 총장이 사법연수원 20기이며, 이성윤 서울고검장을 비롯한 고검장급 9명 전원이 20~26기다. 검사장급 중에서는 서울중앙지검, 대검 등에서 함께 근무한 이두봉 인천지검장을 비롯해 모두 13명이 그보다 선배다. 


한 후보자는 1973년생으로 사법연수원 27기인 자신이 법무부 장관으로 취임하면 검찰의 연소화가 심해지는 것 아니냐는 취재진 질문에 대한민국은 이미 20∼30대 여야 대표를 배출한 진취적인 나라라며 기수문화는 지엽적이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27기 이상 윗 기수 간부들을 향한 사퇴 압박 시그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검찰의 관심은 윤 당선인의 확고한 신뢰를 받는 한 검사장이 단행할 인사로 향하고 있다. 한 검사장이 법무부 장관직에 오르면, 당장 윤석열 사단을 중요 보직에 기용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윤 당선인은 대선후보 시절 한 언론 인터뷰에서 검찰 인사 정상화를 언급하며 자신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검사들에 대해 “굉장히 유능하고 워낙 경쟁력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시스템에 따라 각자 다 중요한 자리에 갈 거라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한 검사장은 물론, 측근들의 복귀를 시사하는 발언이다.

 

월성 원전 경제성 조작 사건과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을 수사했던 이두봉(25기) 인천지검장과 박찬호(26기) 광주지검장, 대검 기획조정부장을 지낸 이원석(27기) 제주지검장 등이 중용될 것으로 점쳐진다. 이들은 윤 당선인의 총장 시절,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측근들이다. 후임 검찰총장으로는 김후곤 대구지검장(25기) 등이 거론되고 있다.

 

박범계(왼쪽) 법무부장관과 김오수 검찰총장. 박 장관이 사법연수원 23기로 김 총장보다 3기수 아래다. 연합뉴스

◆검찰, 정치인 장관과 잦은 불화…마찰 차단 의도

 

기수역전에도 한 검사장을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한 것은 지금까지 이어져 온 정치인 출신 장관과 검찰의 마찰과 무관치 않다.

 

한 검사장이 국회 인사청문 절차를 거쳐 최종 임명된다면 역대 일곱번째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간 기수역전이 발생한다.

 

지난 1972년 사법연수원이 설립된 이후 △강금실(13기) 전 장관과 송광수(3기) 전 검찰총장 △천정배(8기) 전 장관과 김종빈(5기)·정상명(7기) 전 검찰총장 △이귀남(12기) 전 장관과 김준규(11기) 전 검찰총장 △김현웅(16기) 전 장관과 김진태(14기) 전 검찰총장 등 사례가 있다. 현재 박범계 장관 역시 김 총장보다 3기수 아래다.


역대 법무부와 검찰의 역사를 보면 기수역전 때 검법 갈등이 있기는 했지만, 이는 정치인과 비검찰 출신 장관의 마찰로 보는 시각이 크다.

 

노무현 정부 당시 송광수 전 총장은 측근들의 인사상 불이익과 관련해 이른바 점령군이라 불렸던 강 전 장관과 크게 부딪혔다. 당시 차라리 내 목을 치라며 개혁에 맞섰던 송 전 총장은 대선자금 문제 등을 수사하며 팬클럽까지 생기는 등 국민적 인기를 얻었고, 참여정부는 송 전 총장이 개혁 의지가 부족했다고 비판했다. 

 

천정배 전 장관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강정구 동국대 교수 사건 당시 불구속 수사 지휘를 검찰에 내려보냈다 김종빈 총장이 반발해 항의성 사표를 던지는 등 갈등을 겪었다. 

 

이에 검사들 사이에서는 기수역전이 정치인 법무장관보다 낫다는 평가가 돌고 있다. 재경 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조국 전 장관을 비롯해 추미애, 박범계 장관에 이르기까지 눈치 보기식 수사에 대한 검찰의 피로도가 높다”며 “지금까지 항상 점령군 행세를 하는 정치인 출신 법무부 장관이 갈등의 씨앗이었다”고 반감을 드러냈다. 이어 “갈 사람은 가고, 남을 사람은 남아 본연의 업무인 수사를 하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