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해는 ‘블랙 위도’”… ‘계곡 살인’ 피의자들 형량은

“이은해, 남편 등 노리는 여성살인마 전형”
검찰 ‘계곡 살인’ 계획성 입증이 핵심 쟁점
최대 무기징역 가능… 이씨, 사고 주장할 듯
8억대 사망보험금을 노리고 남편 A씨를 숨지게 한 혐의로 공개수배된 이은해가 16일 인천지방검찰청으로 압송되고 있다. 뉴스1

“이은해는 ‘블랙위도(검은 과부 거미)’다.”’

 

‘계곡 살인’의 주모자 이은해(31)가 수차례 남편 A씨를 죽이려고 시도했다는 사실과 함께 전 남자친구 살인 의혹도 재조명되자, 전문가들 사이에서 그의 범죄 유형을 ‘블랙 위도’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블랙 위도’는 교미 후 수컷을 잡아먹는 미국 암컷 거미다. 서구에서는 남편을 죽이고 유산을 뜯어내는 여성을 부르는 별칭으로 쓰이곤 한다.

 

◆남편·내연남 노리는 女 살인마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17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이은해 사건은 연쇄성이 상당 부분 있었다고 볼 수 있는 보험 살인”이라면서 “이은해와 공범 조현수 두 사람이 나눴던 텔레그램의 내용을 보면 상호 간에 의사소통과 의사의 일치 그리고 근본적인 목적인 보험금을 편취하기 위해 살해를 계획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큰 틀에서 보게 되면 이 사건은 이른바 ‘블랙 위도’ 사건으로 요약된다”며 “가족에 대해서 장기간 지능적으로 교활하게 공격행위를 하는 팀을 이룬 여성 연쇄살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들은 일부는 사냥을, 일부는 채집을 하는 형태의 연쇄 팀 킬러”라며 “구속영장 청구 이후에도 관련된 여죄 수사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블랙 위도는 여성살인자의 유형 가운데 하나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연구보고서 ‘살인범죄의 실태와 유형별 특성: 연쇄살인, 존속살인 및 여성살인범죄자를 중심으로’(2008)에서 ‘블랙 위도’에 대해 “남편이나 애인, 친인척들을 죽이는 연쇄살인범으로 백인에서 많이 발견된다. 이들의 범죄 동기는 경제적 이득이 많지만 일부 사례의 경우에는 아무런 동기 없이 살인하며, 전형적으로 이용되는 살인 도구는 독극물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고령의 남성들에게 접근해 살해한 치사코 카케하이. 교토신문

대표적인 ‘블랙 위도’ 사건으로는 지난해 사형을 선고받은 일본의 70대 여성이 있다. 청산가리로 세 명을 독살한 치사코 카케하이는 2007년에서 2013년 사이 남편과 두 명의 내연남을 독살했다. 치사코는 피해자에게 모두 청산가리가 담긴 음료를 ‘건강음료’라 속여 마시도록 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치사코는 연애 중매 업체를 통해 연 수입이 최소 1000만엔(약 9790만원) 이상 되는 노인이나 병이 든 고령의 남성을 범죄 타깃으로 소개받아 ‘교제’하면서 10년간 10억엔(약 97억원)의 돈을 빼돌려 축적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이 보는 혐의는 크게 4가지

 

‘계곡 살인’ 피의자 이씨와 조씨는 공개수배 17일 만에 궁지에 몰리자 결국 자수를 선택했다. 이들이 현재 받는 혐의는 살인과 두 건의 살인미수, 그리고 보험사기 미수까지 크게 4가지다.

 

이씨는 내연남인 조씨와 함께 2019년 6월30일 오후 8시24분쯤 가평군 용소계곡에서 남편 A(사망 당시 39세)씨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는 당시 A씨가 스스로 물에 뛰어들었고, 두 사람은 구조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은 이들이 A씨 명의로 든 생명 보험금 8억원을 노리고 범행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지난 14일 이른바 '가평계곡 남편 살인사건'의 발생 장소인 경기 가평군 용소계곡에 물놀이 안전 주의를 당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연합뉴스

이들은 같은해 2월과 5월에도 복어 피 등을 섞은 음식을 먹이거나, 낚시터 물에 빠뜨려 A씨를 살해하려 한 살인미수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재수사 과정에서 이씨 등을 2019년 2월 강원도 양양군 한 펜션에서 A씨에게 복어 피 등을 섞은 음식을 먹여 살해하려고 했으나 독성이 치사량에 못 미쳐 미수에 그친 정황을 포착, 살인미수 혐의로 입건한 바 있다.

 

또 3개월 뒤인 2019년 5월 경기도 용인시 한 낚시터에서 이들이 A씨를 물에 빠뜨려 살해하려다가 잠에서 깬 지인에게 발각된 정황도 발견됐다.

 

이씨의 옛 남자친구가 태국에서 의문사한 의혹 등도 경찰이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씨의 전 남자친구는 지난 2014년 7월 이씨와 함께 태국 파타야 인근 산호섬에서 스노클링을 하다가 사망했다. 경찰은 당시 현지에서 단순 사고사로 처리된 부검기록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경찰 관계자는 “현지에서 이미 익사로 처리된 건이라 수사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이씨를 검거하는 대로 남자친구 의문사 의혹에 대한 수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계곡 살인' 사건의 피의자 이은해(31.왼쪽)·조현수(30)씨가 16일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검찰청으로 압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계곡 살인’ 형량은 계획성 입증이 관건

 

이씨와 조씨의 형량은 검찰이 ‘계곡 살인’의 계획성을 입증할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검찰은 지난해 재수사때 이들의 혐의를 부작위에 의한 살인으로 판단했다.

 

인천지검은 지난해 2월부터 11월까지 이뤄진 재수사를 통해 이씨 등이 수영을 전혀 할 줄 모르는 A씨에게 계곡에서 다이빙하도록 한 뒤 구조하지 않아 살해한 것으로 봤다.

 

‘위험의 발생을 방지할 의무가 있거나 자기의 행위로 인하여 위험 발생의 원인을 야기한 자가 그 위험 발생을 방지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 발생된 결과에 의하여 처벌한다’는 형법 제18조 근거한 부작위에 의한 살인은 상대적으로 형이 가볍다.

 

2018년 4개월 된 아들의 코와 입을 막아 숨지게 한 30대 여성은 부작위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 무죄, 2심에서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 역시 마찬가지 사례다. 금전적 문제로 중환자실에 있던 남편을 퇴원시킨 아내가 부작위에 의한 살인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사례가 있다.

사진=연합뉴스

다만 부작위 살인에도 의도성이 입증돼 중형이 선고된 사례가 있기는 하다. 

 

2009년 대법원은 낚시터에서 알고 지내던 여성의 엉덩이를 팔로 건드려 물에 빠뜨린 뒤 현장을 떠난 유모씨에게 징역 10년을 확정했다. 유씨는 1심에서 과실치사죄만 인정됐으나, 2심은 “피해자가 물에 빠진 이후 낚싯대를 피해자에게 내미는 등의 방법으로 직접 구호하거나 주변에 구호요청을 하는 등의 조치를 했다면 익사를 방지할 가능성이 있었다”며 부작위 살인 혐의를 적용했다.

 

1992년에는 조카 2명과 저수지 근처를 걷다가 조카들이 물에 빠지자 구호하지 않아 숨지게 한 이모씨에게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인정해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이씨가 조카를 살해하기로 마음먹고 일부러 미끄러지기 쉬운 둑 쪽으로 조카를 유인했다고 봤다.

 

일각에서는 피의자들의 자수가 형량 감경을 노린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자수로 인한 감경이 인정될 경우 법률상 감경 규정에 따라 사형은 무기 또는 20년 이상 50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로 감경된다. 무기징역은 10년 이상 50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로 감경된다. 유기징역 또는 유기금고의 경우 형기가 2분의 1로 줄어든다. 다만 대법원은 자수했다고 하더라도 감경은 법원의 임의 결정일 뿐, 감경하지 않는다고 해도 위법한 행위는 아니라고 본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10년 사이 보험 살인 주범의 경우 무기징역, 공범의 경우는 징역 15년 전후가 선고됐다.

 

이 교수는 “이은해·조현수는 보험 살인의 계획성이 입증되고 살인미수 등 가중되면 무기징역까지 가능할 수 있다”면서도 “검찰이 그렇게 구형해도 재판에서 만약 이은해가 ‘내가 그다음에 해야 할 일을 최선을 다해서 했다’라는 등 이른바 사고로 이와 같은 일이 생겼다고 주장할 수 있어서 따져봐야 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어 “공범인 조현수는 보증인적 지위가 없기 때문에 법정에서 또다시 한 번 다툴 여지가 상당히 크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