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지휘부가 총사퇴하는 등 검찰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을 둘러싼 반발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박병석 국회의장이 제시한 ‘검수완박’ 법안 중재안에 여야가 전격적으로 합의한 직후, 검찰 고위 간부들이 단체로 사퇴를 표명하자 해소 국면을 기대했던 국민들은 이제 ‘검찰 대 국회’의 대결구도를 우려하고 있다. 이같은 검찰의 집단행동을 두고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반성 없는 ‘조직 이기주의’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인수위도 “국회 존중” 메시지…검찰은 입법부와 대립각
대한민국 국회는 법치국가에 있어서 법률은 모든 국가작용의 근거가 되므로 법률의 제정·개정 및 폐지는 국회의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권한임을 밝히고 있다. 대한민국헌법 제40조 입법권이 국회에 속한다는 점을 명시한 것이다. 우리나라 입법부 수장은 국회의장이 맡는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역시 22일 여야가 박 의장의 ‘검수완박’ 중재안을 수용한 직후 이같은 입법부의 권한을 존중한다는 메시지를 내놨다. 최지현 인수위 수석부대변인은 이날 “원내에서 중재안이 수용됐다는 점을 인수위는 존중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재된 내용은 해당 분과에서 검토 중이고 추후에 별도로 입장이 있게 되면 말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사법센터는 이날 입법의견서를 내 ‘검수완박’ 법안을 “그간 우리 모임이 강조한 수사·기소 분리를 통한 검찰 기능 정상화가 반영된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민변은 “검사의 지위와 기능을 ‘소추 기관’으로 명확히 함으로써 헌법과 제도의 취지에 맞도록 조정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와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날 박 의장의 중재안을 수용하는 합의문에 공식 서명했다. 법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는 28일 또는 29일에 소집키로 했다. 앞서 박 의장은 이날 오전 검찰의 직접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고, 검찰 직접수사권을 한시적으로 유지하는 등 총 8개항으로 구성된 중재안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에 전달했고, 양당은 의원총회를 통해 수용 의사를 밝혔다.
검찰은 ‘검수완박’ 저지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양새다. 박성진 대검 차장검사를 포함해 이성윤 서울고검장, 김관정 수원고검장, 여환섭 대전고검장, 조종태 광주고검장, 권순범 대구고검장, 조재연 부산고검장 등 7명은 이날 오후 법무부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앞서 김오수 검찰총장도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겠다며 사직서를 다시 제출했다.
검찰 고위 간부들이 일시에 전원 물러나겠다고 나서면서 초유의 검찰 지휘부 공백 사태가 벌어지게 됐다. 대검찰청은 “법안이 최종적으로 통과되는 마지막까지 법안의 부당성과 문제점을 알리고 국회와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사실상 국회와 끝까지 대립각을 세울 것임을 분명히 했다.
◆시민단체 “부적절”…“사표가 우습나”·“의사당 앞에 드러누워라” 찬반 시끌
검찰은 중재안은 사실상 기존 검수완박 법안의 시행시기만 잠시 유예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결국 중요 범죄를 수사할 수 없게 되고, 피해는 국민들이 입게 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검찰 내부에서는 선거사범 수사가 어려워지는 등 정치인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법안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러나 계속되는 검찰의 집단행동에 대해 따가운 지적이 적지 않다.
임은정 법무부 감찰담당관(부장검사)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최근 (검수완박 관련) 울분과 속상함을 토로하는 동료들의 연락을 받았다”면서 “‘사법 피해자들이 고통받을 때 침묵해 놓고, 검찰권 사수할 때 국민을 내세우느냐, 국민이 포장지냐’고 화를 벌컥 냈다”고 밝혔다.
임 부장검사는 또 “검찰이 재소자들의 인권을 침해하여 진술을 조작했고, 검찰이 법정을 연극 무대화하여 사법정의를 조롱했고, 검찰이 검찰의 조직적 범죄를 거듭 은폐했다”면서 “이런 검찰이라면, 검찰권을 가질 자격도 없고 감당할 능력도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자정 능력 없는 것이 검찰의 현실”이라면서 “주권자로서, 직접적 또는 잠재적 사법 피해자로서 검찰의 현실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바로 설 때까지 계속 비판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참여연대는 지난 18일 논평을 통해 “검찰이 총장 이하 조직적으로 국회 입법 논의 자체에 반발하는 모습은 매우 부적절하다”며 “왜 국민들이 검찰 권한 축소를 요구하는지 반성이 먼저”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어 “윤석열 전 검찰총장도, 김 총장도 검찰개혁에 원론적 지지를 표명하다가도 정작 검찰의 권한 축소가 쟁점화가 되면 대단한 결단인 양 사표를 던졌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격앙된 분위기다. 민주당 조승래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대한민국의 어느 공무원이 주권자들을 대리한 입법기관의 논의에 대해 이렇게 항명할 수 있느냐”면서 “검찰은 스스로 권력기관의 자리에서 국민을 위한 봉사기관으로 내려와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주민 의원도 지난 19일 한 YTN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검사들도 국가 공무원”이라며 “그런데 입법부가 공무원의 역할을 조정한다, 권한을 조정한다 했을 때 저렇게 집단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박 의원은 “만약에 저희가 군대에 별자리 숫자를 줄이겠다. 군인들이 다 집단행동하고 또 정부 부처에 어떤 부처의 기능을 좀 줄이겠다. 그러면 그 부처에 행정 공무원들이 다 집단행동을 하고요. 이건 좀 상상할 수 없는 일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를 두고 온라인에서는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검찰이 최근 ‘검수완박’에 사활을 걸고 집단행동을 계속하자 온라인에서는 “사표가 우습나”, “일반 공무원은 상상도 못 할 일” 등 비난의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이 야합해 본인들 수사를 못하도록 했다”, “검사들 의사당 앞에 드러누워라”, “옷 벗고 변호사 하면 된다” 등 검찰의 집단행동을 지지하거나 국민의힘이 조정안을 수용한 것을 책망하는 의견도 많다.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이번 조정안을 놓고, 원안에 크게 못 미치는 누더기 법안이라는 비평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