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잠을 설치게 했던 대통령 선거가 엊그제 같은데 대통령 취임일이 2주 후로 다가왔다. 0.7%포인트의 박빙 승부였지만 이재명 후보가 깨끗이 패배를 인정하며 대한민국 정치가 한층 성숙해졌나 했는데 이후에도 여전한 진흙탕 정치판을 보면 아직도 선진 정치로 가는 길이 요원함을 깨닫게 된다.
윤석열 당선인은 정치 경험이 없는 평생 검사였다. 그런데 개방형 한국어 지식 대사전에도 등재된 ‘내로남불’ 정권을 심판하라는 국민적 열망을 업고 대통령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잘잘못을 따지는 일에만 평생 매진했던 당선인이기에 정치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이 평탄치는 않으리란 예상이 일반적이었다. 그래도 직접 조감도를 설명하며 집무실 이전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을 돌파하려는 모습은 논란이 있을 때 뒤로 숨지 않는 대통령을 기대한 국민의 마음을 어느 정도 충족해 줬다.
집무실 이전 국면이 정리되고 나니 이제는 신임 내각을 둘러싼 두 번째 정치적 전장(戰場)에 돌입하였다. 내각이란 무엇인가? 대통령을 보좌하고, 정부조직을 총괄하며 정책을 집행하는 리더의 집합이 아닌가. 과거 일부 국무위원이 최고 공직자가 되기에 부적절한 행적과 부족한 역량으로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지만 내각이 대한민국 정부의 최고 엘리트 권력집단임은 분명하다.
윤석열정부의 첫 내각을 구성할 총리와 장관 후보자를 보니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 경력이 검증된 후보를 선택하였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기득권층에 속했던 인사가 많이 추천되었고 ‘서(울대)육(십대)남(성)’ 내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대통령 당선인의 첫 내각이 정쟁의 대상이 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명박 정권의 고소영 내각, 박근혜 정권의 성시경 내각, 문재인 정권의 캠코더 내각처럼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정치인 출신의 전임 대통령과 달리 윤 당선인은 신세 질 세력도, 정치적 운명공동체도 없이 국민만 바라보면 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그래서인지 내각의 후보들은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지만 대부분 특정 집단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취임 전부터 윤 당선인이 인위적인 지역·계층 할당은 적절하지 않고, 능력 본위의 내각을 구성하겠다고 천명한 결과다. 문재인정부에서 벌어졌던 편 가르기 정책은 근절되리라 전망한다.
능력을 중시하는 당선인의 생각 그 자체에는 틀린 점이 없다. 수백조원의 예산을 다루며 정책을 기획하고 첨예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국무위원을 뽑는 최우선 기준이 능력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에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이번 인선에 여전히 아쉬운 점이 있다. 바로 국정을 심의하는 행정부 최고 기관의 역할엔 국가 운영뿐 아니라 민주주의 실천도 포함된단 점을 간과한 것이다.
대통령 중심제 사회에서 정부의 역할은 삼권분립하의 행정부 그 이상이다. 정부는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수호하고 국민이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행정을 펼치면서도 국회 못지않게 민주주의 원칙을 실현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관료제 조직인 직업공무원이 행정의 효율성을 담당한다면 정무적 조직인 내각은 민주주의 원리를 반영하여 다수와 소수를 함께 어우르는 대표기관이 되어야 하는데 첫 내각에서 이러한 면은 찾아보기 어렵다.
내각은 일을 잘하면 되는 조직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민간조직과는 존재 이유부터 다르다. 가령 사기업은 이익을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의 조직이다. 따라서 능력 있는 사람끼리 모여 가시적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정부조직, 그 가운데서도 내각은 정부 운영은 물론, 고도의 정무적 소임을 수행해야 하기에 단순히 정책적 성과만을 위해 구성되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는 모두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인류가 집단지성을 통해 발전시킨 사회구조다. 그래서 다수의 의사를 따르면서도 소수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는, 일면 비효율적 의사결정 구조로 보이지만 다름의 인정을 통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따라서 내각에 외형적 경력과 성과에 기반한 후보자만 추천된다면 이 내각 구성원들은 민주주의의 다원성과 이에 따른 비효율성 원칙을 이해하지 못하고 국민과 유리된 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이번에 입각할 후보자들이 민주주의 기본 원칙에 무지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내각이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국정기관이 되려면 인적 구성의 다양성은 중요한 선결 조건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미 최고 엘리트 관료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무위원까지 시험 잘 보고, 정해진 성공의 경로를 밟은 사람이 독식할 이유는 없다.
서육남 장관은 필요하다. 하지만 20대 장관,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 출신 장관, 동성애자 장관, 탈북민 출신 장관도 필요하다. 감색 슈트가 어울리는 장관과 더불어 후드티가 어울리는 장관도 있어야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다. 이제 출발이고 5년 내내 새로운 사람이 발탁될 것이다. 앞으로 민주주의 원리가 구현되는 인선이 시행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