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만에 돌아왔다 독립영화의 축제

전주국제영화제 5월 7일까지 열흘간 열려

개막작 파친코 감독의‘애프터 양’
팔레스타인 브로커의 일상 ‘지옥의…’
아름다운 영화음악의 성찬
30년 베일 싸인 밀란 쿤데라 조명
왼쪽 미스터 란즈베리기스, 오른쪽은 파리의 책방.

전주국제영화제 상징인 전주돔이 28일 3년 만에 다시 열렸다. 그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때문에 온라인을 주무대로 했던 전주국제영화제가 이날 ‘축제성의 완전한 회복’을 선언하며 코로나19 대유행 이전 규모로 개막했다.

관객과 영화인 기대도 크다. 특히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해제되면서 오프라인 좌석은 일찍부터 매진 행렬을 보이고 있다. 올해 영화제에서는 세계 56개국 217편(해외 123편·국내 94편)이 상영된다. 지난해보다 8개국 31편이 늘었다. 코로나19 확산 이전과 비슷한 수준이다. 출품작은 다음달 7일까지 전주 영화의 거리 5개 극장, 19개 관에서 상영된다. 3000석 규모의 돔 상영이 재개되고 새로운 섹션과 부대 행사도 늘어났다. 3년의 기다림 끝에 만난 축제인 만큼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들의 자문을 받아 영화제 기간 볼 만한 작품들을 꼽았다.



◆‘파친코’ 감독 코고나다 두 번째 작품… 개막작 ‘애프터 양’

영화제의 꽃은 역시 개막작이다.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포문을 여는 작품은 코고나다 감독의 ‘애프터 양(사진)’이다. 세계적 영화음악 작곡가 사카모토 류이치가 음악을 맡았다.

진보한 기술이 일상에 스며든 가까운 미래, 제이크 가족이 소유한 안드로이드 ‘양’은 아시아계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중국에서 입양한 딸 미카의 보호자 역할은 물론 미카의 정서와 문화적 기반을 공고히 하는 형제인 셈이다.

하지만 어느 날 양은 갑작스레 작동을 멈춘다. 양을 고치기 위해 여러 곳을 전전하던 제이크는 양에게 기억을 저장하는 특별한 기능이 있음을 알게 된다. 양의 기억 데이터를 들여다보기 시작한 제이크는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 양의 사적인 기억과 시간들을 발견하기 시작한다.

‘애프터 양’은 애플TV플러스 ‘파친코’로 익숙한 한국계 미국인 코고나다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자 ‘미나리’ 제작사 A24의 신작으로도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 단편소설 작가 알렉산더 와인스틴 원작 ‘양과의 안녕’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코고나다 감독 특유의 정적이고 독특한 연출력을 보여준다.

◆영화 한계 시험하는 담대한 작품들

전주국제영화제는 논쟁적 주제와 영화의 한계를 시험하는 담대한 표현을 드러낸 영화들을 소개하는 ‘프론트라인’ 섹션으로 유명하다.

‘불타는 마른 땅’은 SF 장르를 통해 브라질 현대사를 비판했던 아지레이 케이로스 감독과 조아나 피멘타가 공동 연출한 작품이다. 다큐멘터리를 찍듯 담아낸 이번 작품에서도 보우소나루 대통령 취임 이후 현재 브라질 상황을 거대 빈민가를 통해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브라질리아 최대 빈민가 갱스터 자매인 시타라와 레아는 지역 바이커들에게 불법으로 휘발유를 유통해 그 돈으로 공동체를 돌본다. 낮에는 감옥을 다녀온 사람들의 권리 보호를 위해 선거 홍보 마이크를 들고, 밤에는 검은 석유를 채굴하며 마른 땅에 울림을 퍼뜨린다.

‘지옥의 드라이버(사진)’는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남쪽 마을 젠바에서 8년에 걸쳐 촬영된 은밀하고도 참혹한 초상이다. 군대로부터 추격을 당하면서도 매일같이 국경을 건너는 밀입국 중개업자의 삶을 다룬다. 그는 매일 불법 노동자들을 태우고 이스라엘 군대와 경찰을 따돌리며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 중 하나인 이곳을 넘나든다.

◆한 편의 연극 같은 ‘파리의 책방’

‘파리의 책방’은 친밀하고, 시적이며, 감동적이다. 작품은 마치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베네수엘라 출신의 영화음악가 아르투로 안네키오의 아름다운 피아노 음악과, 영화의 분위기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삽입곡들의 향연도 놓칠 수 없는 매력이다. 2016년 타계한 이탈리아 영화 거장인 에토레 스콜라 감독 원작을 세르조 카스텔리토가 감독과 주연을 맡아 만들었다.

파리에서 책방을 운영하는 고지식한 서점 주인 빈첸초는 파리에 있는 자기 소유의 서점과 딸을 위해 일생을 바친다. 늘 똑같은 일상을 유지하던 빈첸초의 삶은 유쾌한 연극배우 욜랑드를 만나면서 달라진다.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형성되고, 여러 가지 변화를 만들어낸다.

◆역사적 인물 조명하는 작품들

밀란 쿤데라는 미스터리에 싸여있다. 30년 동안 인터뷰에 응하지도,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밀란 쿤데라: 농담에서 무의미까지(사진)’는 쿤데라 작품의 어떤 점이 그를 전설적인 작가 반열로 올렸는지 질문을 던진다. 작품은 쿤데라를 둘러싼 미스터리들을 풀어나가면서 이 세계적 작가의 삶과 예술세계를 풍부한 자료 화면을 통해 보여준다.

리투아니아 독립운동을 이끈 지도자 비타우타스 란즈베르기스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미스터 란즈베르기스’도 있다. 그는 1990년에 소련 탈퇴를 선언하고 고르바초프에게 리투아니아의 주권을 인정하라 요구했다. 인터뷰와 아카이브 영상 자료를 결합한 이 작품은 동유럽 국가를 지배하려는 러시아의 이기심이 30여년이 지난 현재에도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관객들에게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