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들도 저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똑같이 대처했을 겁니다.”
부산광역시 시내버스 업체 대진여객 소속 김성윤(45)씨는 지난 28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차분한 말투로 이같이 답했다. 전화 너머로 들린 그의 목소리에서는 힘과 강단이 느껴졌다.
이야기는 통화 이틀 전인 2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산 해운대구 반송동에서 출발해 사상구 괘법동에서 회차하는 129-1번을 운행하는 그는 이날 오후 3시12분쯤 부산 지하철 1호선 교대역 정류장에서 한 남성 승객 A씨를 태웠다. 정류장에서 담배를 피우다 버스에 오르는 A씨를 보고는 ‘마스크를 제대로 써 달라’ 말한 후, 곧바로 차를 출발시켰다.
운전 중 김씨는 차내에서 수상쩍은 행동을 연달아 보이는 A씨를 룸미러로 발견했다. A씨는 다른 여성 승객에게 성추행으로 보이는 행동을 했고, 운행 내내 이를 주시하던 그는 정류장 중 한 곳인 금정경찰서 서금지구대 앞에 버스를 차분히 세웠다. 그리고는 버스 근처에 있던 행인에게 대신 경찰관을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차를 세운 후에는 승객들 안전부터 챙겼다. 뒤쪽에 있던 이들을 버스 앞쪽으로 이동시킨 후 A씨의 앞을 막는 자세를 취했다. 혹시 모를 돌발상황에 대비해서다. 지구대에서 곧바로 출동한 경찰관들이 버스에 오르면서 상황은 무사히 마무리됐다.
교대역 정류장에서 서금지구대까지는 포털사이트 지도에서 버스로 18분 거리다. 실제로도 15분가량 운행을 이어갔다고 김씨는 통화에서 떠올렸다. 누군가에게는 짧을 수도 있지만, 그에게는 그 시간이 길었을 법도 하다.
김씨는 여성을 일단 멀리 떼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운행 중인 버스에서 움직이는 행동이 위험하다는 것을 말하려는 듯 ‘아주머니 이쪽으로 오이소’라는 말로 여성을 A씨 근처에서 떨어지게 했고, 운전석 쪽으로 온 여성에게 자신도 모든 상황을 봤다면서 ‘경찰에 신고해야 남성을 처벌할 수 있다’고 침착하게 말했다고 김씨는 통화에서 밝혔다.
이는 평소 기사들을 대상으로 한 사측의 안전교육 덕분이기도 하다. 김씨는 “회사에서도 버스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성범죄 등에 대한 대응을 교육한다”며 “침착한 대처의 필요성을 강조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김씨의 조카도 이 노선으로 등·하교를 한다고 한다. 내 가족, 내 조카가 버스에서 비슷한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순간 화가 났다는 솔직한 심정도 그는 통화에서 언급했다. 계속해서 “혹시라도 비슷한 일을 겪는 승객분이 계시다면, 차에서 내린 후에라도 일단 112에 신고해주셔야 한다. 그래야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당부했다.
지구대 앞에 약 10분간 정차했던 버스는 경찰관에게 사건을 인계한 후에야 현장을 떠났다.
술에 취한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자신이 버스를 탄 것조차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 금정경찰서는 A씨를 성폭력 처벌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해 조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