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댓국 9000원, 순댓국 특 1만1000원’
서울 강남의 한 순댓국집에 있는 가격표다. 서민들의 대표 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 국밥 가격이 심상치 않다. 최근 가게들이 하나둘 가격을 인상하면서 순댓국 한 그릇이 1만원에 육박하거나 넘는 그야말로 국밥 만원 시대다.
요즘은 오르지 않는 게 없다. 석유는 물론 밀가루, 식용유 등 식자재 가격이 오르고, 이에 외식비 가격도 크게 오르고 있다. 한국소비자원 참 가격에 나와 있는 외식비를 살펴보면 서울에서는 냉면이 9962원, 비빔밥이 9385원, 김치찌개 백반이 7154원이다.
이처럼 외식 물가가 크게 올라 고된 하루 일을 끝내고 국밥에 소주 한 잔을 낙으로 삼던 저소득층들이 점차 갈 곳을 잃어가고 있지만, 아직도 국밥 한 그릇을 2000원에 파는 가게가 있다.
지난 28일 서울 종로구 낙원동에 자리한 이 가게는 점심을 먹으러 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가게 앞에서 사장 권모(76)씨는 큰 솥에 우거짓국을 끓이고 있었다. 가게 안에는 나무로 된 원형 테이블이 군데군데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옅게 양념 된 깍두기와 굵은 소금 그리고 고춧가루가 놓여 있었다. 주문한 지 3분도 안 돼서 우거지와 두부가 들어간 우거짓국과 공깃밥이 나왔다.
이 우거짓국의 가격은 2000원. 8년 전에는 1500원이었으나 식재료값 상승으로 2014년부터는 2000원을 받고 있다. 이곳의 한 끼 밥값은 3000원에 파는 막걸리나 소주 한 병을 시켜도 5000원밖에 되지 않는다. 이곳은 단골손님이 많다. 20년 동안 값을 1000원밖에 올리지 않은 데다 깊은 감칠맛을 잊지 못해 지갑 형편이 넉넉지 못한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이날 점심에만 100그릇이 넘게 팔렸다.
은평구에서 왔다는 배종명(87)씨는 “매주 2번 정도 이곳을 찾는다”면서 “다른 곳은 너무 비싸져서 부담스럽다. 이곳마저 가격을 올리면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인근 낙원 상가에서 장사한다는 김모(52)씨도 “요새 장사가 너무 잘 안돼서 솔직히 점심값도 부담스러울 때가 많았다”며 “다만 이 동네는 아직 물가가 저렴하고 여기 국밥을 먹으면 싼 가격으로도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이 해장국집은 같은 자리에서 70년 가까이 장사를 해 온 동네의 터줏대감이다. 방송인 송해도 30년 넘게 드나든 단골집으로 입소문이 났고 실제로도 낙원동에 오면 반드시 들를 정도라고 한다. 심지어 가게의 간판도 송해가 어느 날 “간판 새로 하는 다는 게 어때?”라고 말하며 50년 넘은 간판을 교체해줬다고 한다.
식재료 값이 오르고 있음에도 권씨는 싸고 맛있는 집으로 소문이 난터라 가격을 올리기가 조심스러웠다고 한다. 52년간 가게를 운영해온 권씨는 “우거지도 그렇고 재료비는 매년 올라가고 특히 요즘은 예년보다 크게 오른 느낌이라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래도 당분간은 올릴 생각이 없다. 그만큼 더 많이 팔면 되지 않겠나”고 덤덤히 말했다.
지난 10일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3월 외식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6.6% 상승했다. 이는 1998년 4월(7%) 이후 가장 큰 상승 폭이다. 품목별로 보면 39개 외식 품목이 모두 올랐다. 갈비탕(11.7%)이 가장 크게 상승했고 죽(10.8%), 햄버거(10.4%), 생선회(10.0%)도 10% 이상 상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