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국회’가 돌아왔다… 부끄러움은 국민 몫

밀치고 쓰러지고… 구급차까지 출동
‘폭력 국회’ 앞 유명무실해진 국회법
다수당 입법 독주·졸속 입법도 문제
지난 4우러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검찰청법 개정안 처리에 앞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 의원들이 설전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가장 강하고 가장 폭력적인 증오는 언제나 문화 수준이 가장 낮은 곳에서 보게 될 것이다.”(요한 볼프강 폰 괴테)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인 검찰청법 개정안이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폭력국회’의 행태가 벌어졌다. 부끄러움은 국민 몫이었다. 8년 전 통과된 국회선진화법에 따르면 회의장이나 근처에서 폭력 행위를 하거나 의원의 출입을 방해할 경우, 5년 이하 징역 혹은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이를 어기면 처벌 수위에 따라 의원직 상실 및 출마 기회도 박탈될 수 있지만, 현직 국회의원들은 국회법에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욕설·몸싸움…반복된 구태

 

이날 본회의 열리기 전 정진석 국회부의장 등 국민의힘 의원들은 국회 의장실로 몰려갔다. 이들은 박병석 국회의장과의 면담을 요청하며 의장실 앞 복도에서 피켓을 들고 ‘검수완박 규탄’ 구호를 외쳤다. 이후 박 의장이 본회의장으로 입장하려 하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그를 둘러싸고 거센 항의를 시작했다. 격렬한 몸싸움에 일부 보좌진 등은 뒤엉켜 바닥에 넘어지기도 했다.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국민의힘 양금희 의원은 구급차에 실려 갔고, 허은하 의원과 황보승희 의원도 병원을 찾았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직원들에게 여성 의원이 밟혔다며 이후 진상조사와 관련자 처벌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김웅 의원이 “XX, 천하의 무도한 놈들”이라며 욕설을 내뱉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국회부의장인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이 지난 4월 30일 검찰청법 개정안 표결 처리를 위한 본회의에 앞서 사회 교대에 자신이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 박병석 의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청법이 본회의 개의 6분 만에 재석 177인 중 찬성 172인, 반대 3인, 기권 2인으로 표결 처리되고, 박 의장이 개정안 가결을 선포하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단상 앞에 나가 항의하고, 들고 있던 피켓을 던지는 이들도 있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박 의장을 향해 삿대질하며 고함을 쳤다.

 

국회선진화법은 2012년 5월2일 제18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처리돼 제19대 국회에서 처음 적용됐다. 여기에는 이처럼 충돌과 몸싸움이 반복하는 국회의원들의 행태를 막자는 목적이 담겼다. 안건신속처리, 의사진행방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제한, 안건조정위원회의 설치, 안건자동상정, 의장석·위원장석 점거 및 회의장 출입방해 행위에 대한 징계의 강화 등이 골자다.

 

◆다수의 횡포도 여전…“국회 수준 드러나”

 

검수완박 법안의 처리 과정은 우리나라 국회의 수준을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은 다수의 횡포를 통해 국회선진화법을 무력화했다. 국회선진화법은 다수당의 입법 독주를 지양하고 법안을 숙의하기 위해 여야 동수의 안건조정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사보임과 고의적 탈당 등으로 법의 취지를 무색하게 했다는 지적이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지난 4월 27일 검찰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 법안 처리를 위해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회선진화법은 애초에 다수당의 입법강행을 막기 위한 제도로 출발했다. 이명박 정부였던 제18대 국회에서 친이(친이명박)계가 장악한 거대 여당이 쟁점 법안을 처리하기 위해 속도전에 나섰다가 20일간 민주당과 ‘입법전쟁’을 펼친 것이 계기였다. 2008년 12월 여당의 부자 감세 예산안 처리, 한미 자유무역협정 동의안 일방 상정에 이어 2009년 7월 미디어법 통과, 2010년 1월 4대강 사업 예산 강행 처리 등 다수당의 밀어붙이기식 입법이 정치 실종을 낳았다는 비판이 제기되던 때다.

 

이런 배경으로 2014년 국회선진화법이 도입됐지만, 이번 검수완박 법안을 둘러싼 여야 간 대치와 검찰청법 개정안의 단독 처리 과정은 18대 국회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연상하게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은 2020년 총선에서 원내 절대 과반인 180석을 얻었다. 현재는 171석이지만 검수완박 법안을 처리하기 위해 우군을 더 끌어모을 수 있었다. 민주당 출신 무소속 6석에 법안 표결에 찬성 입장을 밝힌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 국민의당 권은희 의원, 정의당 6석 등이다.

 

민주당이 검수완박 법안을 국회 본회의에 직행시키기 위해 법사위에 사실상 민주당 의원이라고 할 수 있는 무소속 의원을 잇달아 배치했던 점은 국회선진화법의 빈틈을 노린 행태로 지적된다. 특히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법사위로 사·보임된 민주당 출신 무소속 양향자 의원이 돌연 검수완박에 반대 의견을 내자 민형배 의원이 갑자기 민주당에서 탈당해 무소속이 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민 의원이 무소속으로 안건조정위에 참여해 사실상 민주당과 동일한 의견을 내자 소수당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열린 안건조정위도 17분 만에 끝났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민주화 이후 20년이 지났는데도 ‘폭력국회’, ‘동물국회’라는 말이 나와서 국회선진화법이 도입됐던 것”이라며 “그런데 민 의원이 안건조정위에 편법과 꼼수로 들어가 통과시킨 것,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의장 중재안을 받았다가 파기한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