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 처리 과정을 지켜보면서 무력감을 느낀 이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어제 국무회의 일정까지 늦춰가며 74년 지속된 사법체계에 종지부를 찍었다. 과거 국회에서 법안 날치기 파동을 보긴 했지만 이번처럼 지능적이고 교활한 수법이 동원되진 않았다. 사보임과 위장 탈당으로 안건조정위원회 절차를 희화화했고 ‘회기 쪼개기’로 소수당의 필리버스터를 무산시켰다. 타협 정치를 촉진시킬 것이라며 도입한 국회선진화법은 ‘국회악용법’으로 이름을 바꿔야 할 판이다.
사법부와 법조계는 물론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졸속 입법 반대에도 민주당이 검수완박을 밀어붙인 데는 기댈 언덕이 있어서다. 흠이 적잖은 대선 후보였음에도 절반에 육박하는 표를 몰아주고 문재인 대통령의 40%대 지지율을 뒷받침해주는 세력. 이들만 붙잡아둔다면 6월 지방선거도, 후년 총선도 승산이 있다고 셈을 하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언론 인터뷰에서 “한 번도 링 위에 올라가지 못했다”고 억울해하면서 문재인정부는 실패하지 않았다고 강변한 건 정치 일선에서 순순히 퇴장할 뜻이 없다는 메시지로 들렸다.
민주당 의원들이 이탈 없이 찬성표를 던진 일사불란함은 열린우리당 시절의 국가보안법 파동을 떠올리게 한다. 2004년 탄핵 바람을 타고 국회에 입성한 열린우리당 강경파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밀어붙였다. 여야 협상이 이뤄졌지만 강경파 목소리에 밀려 합의는 무산되고 당 지도부는 해체됐다. 자중지란으로 국보법 폐지를 이루지 못했던 그때에 비해 일사불란하게 검수완박을 달성했으니 ‘대성공’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스냅 사진으로 본다면 그럴 것이다.
윤석열 당선인에 여야 원로급 인사들이 참여하는 ‘국가통합비전위원회’ 상설화를 제안했던 민주당 원로는 검수완박 파문에 “협치가 되겠느냐”고 했다. 당장 윤 당선인 측은 검수완박 대응 차원에서 국민투표 카드를 꺼냈다. 국민과의 직접 소통을 늘리기 위해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실을 강화하겠다고도 한다. 대통령이 야당과의 대화 대신 ‘국민 앞으로’(going public)를 선택해 입법, 정책 성과를 올리기는 어렵다. 문 대통령이 그랬듯 분열과 갈등의 골이 파이게 할 뿐이다.
정권 인수인계 기간에 다수 힘으로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정치 세력은 전무후무할 것이다. 지난해 4·7 재보선, 20대 대선에 진 뒤 “민심을 오독했다”고 반성한 것도 잠시, 민주당은 달라지지 않았다. 정치는 스냅샷이 아니라 다큐다. 저지른 일에 책임을 지는 순간이 반드시 돌아오기 마련이다. 민주당 내에서 “검수완박의 교훈을 잊지 말라”는 말이 나오는 건 시간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