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이상 된 자본시장에서의 경험과 시각을 자꾸 ‘코인 시장’에 적용하려 한다.”
국내 1위 가상화폐 거래소인 ‘업비트(Upbit)’를 운영하는 두나무의 최고경영자(CEO)인 이석우 대표는 최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가상화폐의 특수성을 정책 담당자들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답해 했다.
급성장 속에 당국의 규제 그물망으로 들어간 시점의 인터뷰라 부담이 있을 법했지만 이 대표는 차분하게 가상화폐 시장 현안과 정부 규제를 둘러싸고 현장에서 느낀 소회를 풀어냈다.
다음은 이 대표와의 일문일답.
―대기업 집단 지정을 예상했나.
“지난해 재무파트에서 집계할 때 이 추세대로 가면 자산이 10조원을 넘을 것 같다고 걱정했다. 금융기관들은 예탁자산을 전체 자산에서 빼는 등의 조항이 있는데 두나무는 근거법이 없다 보니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지난해 연말부터 대기업 지정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공정위로서도 명확한 법적 예외규정이 없는 상태에서 임의대로 ‘빼 줘야 한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가상화폐와 관련한 ‘업권법’이 없어서 생기는 여러 문제 중 하나라고 보고 있다.”(현재 가상화폐와 관련해 마련된 법은 지난해 3월부터 시행된 개정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뿐이다. 특금법은 암호화폐 거래소, 지갑 업체 등 사업자를 규제하는 법일 뿐, 가상화폐 투자자를 직접적으로 보호하거나 가상화폐 상장 같은 구체적인 행위를 규제하는 법은 아니다.)
―최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디지털자산 기본법을 제정하기로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 자체가 디테일하고 명확하게 가상화폐 산업에 대해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윤 대통령 참모와 정권에 중요한 역할을 하시는 분들에게도 가상화폐에 대한 믿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앞으로 가상화폐 관련 입법을 하게 되면 가급적 폭넓게 했으면 좋겠다. 이 분야는 기술 발전 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6개월마다 업계의 화두가 변한다. 자칫 입법 과정에서 협소하게 규정해 버리면 나중에 그 법에 되레 발목이 잡힐 수 있다. 자금세탁 방지를 위한 장치나 고객확인 의무 등 반드시 규제해야 할 것은 ‘의무 규정’으로 법 조문에 담더라도 기업들이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놔달라는 것이 업계의 요청이다.
―현장에서 느끼는 애로사항은.
“정책을 입안하는 분들이나 기성 언론인들은 자본시장의 관점에서 가상화폐를 바라본다. 예를 들어 가상화폐 거래소에 ‘왜 공시를 안 하느냐’고 지적한다. 그런데 비트코인의 경우 만든 사람이 누군지 지금 아무도 모른다. 2008년 10월 창안한 것으로 알려진 ‘사토시 나카모토’는 가명일 뿐이다. 그렇다면 비트코인은 누가 공시해야 하는가? 또 자본시장의 논리대로 가상화폐 시장도 예탁결제원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쪽 현실을 모르는 것이다. 가상화폐는 인터넷에 연결된 ‘핫월릿’(뜨거운 지갑)과 보안을 위해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은 ‘콜드월릿’(차가운 지갑)에 나눠 보관된다. 24시간 실시간으로 출금이 이뤄지는 상황이라 새벽에 문제가 터질 수도 있다. 이 때문에 회사에서 ‘가상화폐 지갑’을 담당하는 직원들은 24시간 교대로 일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출퇴근이 쉽도록 회사 근처에 집까지 구해줬을 정도다.”
―디지털 자산 범죄 선제적 대응과 금융사기 피해자 보호를 위한 활동에 나서고 있는데.
“투자자 보호를 위해 업계가 모범을 보여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상화폐가 어떻게 범죄에 쓰이는지 누구보다 우리가 잘 알고 있어서다. 예를 들어 지금 우리는 케이뱅크와 같이 일하는데, 케이뱅크 계좌를 통해 업비트로 간 뒤 가상화폐로 바꾸는 식이다. 케이뱅크 계좌와 업비트 거래가 동일인물이라면 문제가 없지만, 다른 사람 돈이 들어와서 가상화폐로 바뀐다면 99.99% 보이스피싱이다. 저희는 이런 형태의 거래가 일어나면 (교환을) 막는 조치를 취한다. 그런데 한계가 있다. 현재 약관 상 24시간밖에 거래정지를 못한다. 그렇게 24시간이 지나면 어쩔 수 없이 보이스피싱인지 알면서도 풀어줘야 한다. 시간 안에 송금한 사람들을 찾아야 하는데 민간회사인 우리가 알 수는 없다. 그래서 서울경찰청과 디지털 자산 관련 불법행위 근절을 위한 업무협의회를 개최하는 등 노력하는 것이다.”
―정부가 한때 가상화폐를 투기로 규정해 강력 규제했는데.
“2017년과 2018년 초에 한 번 큰 기회를 놓친 것 같다. 당시에 (가상화폐 시장이) 부작용도 있었지만 정부가 나서서 옥석을 가려 주는 기준을 세웠어야 했다. (하지만) 정부나 입법부 모두 가상화폐 가격에만 몰두해 있었다. 당시엔 부정적인 모습에 집중돼 있었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만나 주지도 않았다. 그 때 정부가 기준을 잘 잡았으면 지금 디지털금융 허브가 됐을 것이다.”
―고객예치금의 이자를 수익으로 처리해 논란을 빚었는데.
“이자 수익으로 지난해 벌어들인 58억원 전액을 투입해 다중채무 등 리스크에 노출된 청년을 지원하기 위한 ‘넥스트 스테퍼스’(Next Steppers) 기금을 조성한다. 일단 19∼34세 다중부채 청년 600명에게 1인당 500만원을 지원하고, 사회연대은행과 공동으로 의무 금융교육을 할 예정이다.”
―국내 상장 계획은.
“국내에서 할 수 있으면 좋지 않겠나. 명확한 계획은 없다. 국내에서 상장을 안 받을 것이라는 소문이 나고 그 때문에 기사도 났는데 기사 이후 여러 IB(투자은행)에서 ‘상장할 때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 아직은 거기까지 고민은 안 하고 있다. 언젠가는 하지 않겠나.”
―다른 업체들과 다른 트래블룰(Travel Rule·자금이동규칙) 도입 등 가상화폐 업계에서 독점적 위상에 대한 비판도 있다.
“각자 자기 고객을 위해서 무엇이 어떤 방법이 최선인가에 대해 의견이 다르다 보니까 조율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길어졌다. 방법과 방법의 차이가 있고 기술의 차이가 있었다. 맞춰 나가다 보니까 시간이 많이 지체된 것 같은데 그 과정에서 제일 불편을 겪었던 것도 고객들이고, 고객분들께 죄송해서 드릴 말씀은 없다. (독점 논란은)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업비트는 2년 전만 해도 빗썸에 한참 뒤처진 입장이었다. 시장이 워낙 변동성이 심하다. 고객 입장에서 보면 전세계 거래소를 다 쓸 수가 있다. 전 세계로 따지면 업비트 점유율은 굉장히 작을 것이다. 한국에서 70∼80% 점유한다는 게 의미가 있겠는가.”
―미국 긴축이 가상화폐에도 영향을 주나. 올해 가상화폐 시장 전망은.
“영향은 있을 것이다. 2019년부터 미국 기관들이 이 시장에 들어왔다. 기관들은 1000억, 3000억, 조 단위로 들어온다. 기관들이 들어오면서 가격이 올라갔다. 과거엔 주가가 떨어지면 비트코인이 올라갔다. 개인의 헤지 수단이었다. 이제는 주식시장과 같이 움직인다. 기관이 들어오니까 그렇다. 이렇게 주식과 같이 움직이는 시장이 돼서 올해는 대체적으로 힘들기는 할 것이다. 한국에선 가상화폐 시장에 기관들이 못 들어오게 막아 놨다. 100% 개인 거래다. 그래서 더 출렁거린다. 그나마 비트코인은 해외에서 많이 거래되는 편인데 작은 가상화폐들은 개인만 거래한다. 그러니 호재 악재에 따라 널뛰기를 한다.”
―구상 중인 대체불가토큰(NFT·Non-Fungible Token) 신사업은 어떻게 진행 중인가.
“NFT를 잘만 이용해 디지털 저장물과 결합하면 온라인 저작권 등기소가 될 수 있다. 최근에 미국 NBA에서 탑샷이라는 사이트를 열었는데 디지털 농구 카드를 만들었다. 디지털 아트워크와 결합되면서 매출이 굉장히 늘었다. 그런 시장이 또 뭐가 있을까 찾아보니 엔터테인먼트 시장이 있었다. 예를 들어 BTS처럼 스타가 있고 팬들이 있는 그런 시장을 찾아서 공략해 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미국에서 좋은 아티스트까지 갖춘 하이브와 조인트벤처 업체를 세웠다. 그들을 활용해 NFT를 발행해 미국에 진출하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석우 두나무 대표는…
●1966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미국 루이스앤드클라크 대학교 법학박사 ●중앙일보 기자 ●카카오 대표이사(CEO) ●중앙일보 조인스 공동대표 ●두나무 대표이사(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