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원로인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11일 임기 이틀째를 맞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당장은 인기를 얻지 못하더라도 중장기적인 국정 계획과 목표,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전 의장은 이날 세계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그동안 대통령 단임제를 유지해 온 결과 5년마다 정권이 바뀌는 정도가 아니라 모든 정책이 싹 바뀌었다. 중장기 계획을 잃어버린 나라, 비전이 없는 나라가 돼 버렸다”고 지적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국가 경쟁력과 성장 동력이 떨어지고 국민들이, 특히 청년들이 꿈을 잃어버리는 결과가 오게 된 것은 단임 대통령들의 ‘5년 내에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무리한 욕심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김 전 의장은 윤 대통령이 인사를 조금 더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윤 대통령의 리더십을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인사를 지금보다는 더 신중히 할 필요가 있다”며 “조금 더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 전 의장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실패했다고 욕을 먹는 건 자기 편만 위한 정치를 했기 때문”이라며 “중장기 계획을 세우는 건 정치색이 없는 사람들과 각계 전문가들, 지역·성별로 다양한 사람들, 야당 인사까지 다 망라해서 해야 할 일”이라고 역설했다. 그렇게 인사를 해야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조언이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에서 윤 대통령이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를 비롯한 초대 내각 인선을 밀어붙이는 등 ‘불통의 리더십’이란 비판을 쏟아내고 있는 것을 두고 김 전 의장은 “그건 서로 간 신뢰의 결핍에서 나오는 것”이라며 “(윤 대통령이) 정 후보자를 내쳤을 때 민주당이 내각 구성에 협조할 것 같으면 벌써 그렇게 했지 않겠느냐. 계속해서 정부·여당을 흔들려는 게 분명하다고 윤 대통령은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민주당은 정 후보자가 낙마해도 다른 사람, 가령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내치려 할 것이고 그러면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 걷잡을 수 없게 된다”며 “여야 양쪽 다 신뢰할 수 있는, 중간에 메신저 역할을 할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건데, 그래서 인사를 잘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극단적인 여소야대 상황의 해법과 관련해 김 전 의장은 “지금은 야당한테 ‘잘한다, 잘못한다’고 얘기해 봐야 듣지 않는다”며 “민주당은 공격이 들어오면 들어올수록 더 발목을 붙잡고 공격을 더 강하게 할 수 있는 의석수와 조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싸움을 걸려고 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이어 “민주당을 상대로 정치하는 게 아니라 오직 국민을 중심에 놓고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진중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며 “국민의 신뢰와 지지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지, 민주당에 이기고 지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전했다.
김 전 의장은 윤 대통령에 대한 또 다른 당부 사항으로 적극적인 ‘소통’을 통한 국민통합을 언급했다. 그는 “문재인정부에서 국론이 반으로 갈라지고, 갈등의 골이 깊어졌는데 이 때문에 윤 대통령의 국정 제1의 과제는 국민통합이 됐다”며 “윤 대통령이 누구를 찾아가고, 이야기를 경청하고 이런 건 잘 하지 않느냐. 그걸 적극적으로 하는 게 국민과의 소통”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에 윤 대통령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냐고 물었다. 김 전 의장은 “윤 대통령은 누구보다 사심이 없는 사람”이라며 “누구에게 빚진 것도 없고 얽매인 것도 없는 상황이니 초심을 잃지 말고, 군림하려 하지 말고, 국정을 잘 이끌어 가면 될 것”이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