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의 국회 인준이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인준 여부를 놓고 여야 간 갈등이 점점 고조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연일 더불어민주당의 ‘발목잡기’라고 비판하며 박병석 국회의장에게 한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직권상정해 달라고 촉구했다. ‘한덕수 불가론’으로 기우는 듯했던 민주당은 일단 여론의 추이를 살피며 신중 모드에 돌입했다. 한 후보자 인준 절차가 지지부진한 사이 윤석열 대통령은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일부 장관 임명을 강행하면서 내각 진용 갖추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
◆與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해 달라”
이에 대해 국회의장실 관계자는 “의장이 총리 임명동의안을 직권상정한 전례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며 “박 의장께서 여러 의견을 듣고 계신다”고 전했다. 인사청문회법상 의장의 직권상정은 가능하나, 전례가 없다는 점을 함께 언급하며 곤혹스러운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해석된다.
국민의힘은 한 후보자 인준에 찬성하는 국민 여론이 높다는 점을 내세우는 등 여론전을 펴기도 했다. 전주혜 의원은 이날 라디오에서 “며칠 전 여론조사를 보면 한 후보자 임명동의안에 찬성하는 여론이 더 많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윤 대통령이 정호영 후보자에 대한 지명 철회를 결단해주면 총리 인준에 힘을 받지 않겠느냐’는 취지의 물음엔 “한 후보자 인준과 다른 장관 지명 철회 여부를 연계하지 않는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
다만 국민의힘은 이해충돌 등 잇단 의혹에 휩싸인 정호영 후보자의 경우 ‘국민 눈높이’를 이유로 지명 철회 가능성을 열어놨다. 전 의원은 “장관 지명 철회 여부는 국민의 공감대나 눈높이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류 달라진 野, 당내 이견도 분분
전날까지만 해도 곧 ‘한덕수 불가론’을 기치로 내걸 태세였던 민주당은 속도 조절에 나선 모양새다. 당 원내지도부는 한 후보자 인준 동의 여부를 놓고 고심을 이어가고 있으나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이날 “양당 원내수석부대표 간 회동이 있었지만, 본회의 일정에 이르지 못했다. 한 후보자 임명동의안 가결을 보장하라는 국민의힘의 무리한 요구에는 도저히 동의하기 어렵다”면서도 “총리 인준 문제는 청문회를 통해 드러난 결과와 국민 여론을 반영해 의원총회에서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당초 이날 열겠다고 예고했던 의총은 순연됐다. 한 후보자 인준에 찬성한다는 여론이 높은 일부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자 내부적으로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시간을 좀 더 갖고 여론의 추이를 살피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신중 모드를 택한 민주당은 이번주까진 인준 동의 여부를 결정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선 한 후보자 인준 동의가 민주당이 쓸 수 있는 유일한 카드이기 때문이다. 윤석열정부 초대 내각 후보자 중 낙마한 인사는 자진 사퇴한 김인철 사회부총리 후보자가 유일하다. 거대 야당이 된 후 처음 맞는 인사 청문 정국인 만큼 최소 내각 후보자 2명 이상은 더 낙마해야 하지 않느냔 말도 당 일각에서 나온다. 한동훈·정호영 후보자를 염두에 둔 주장으로 읽힌다.
민주당에선 다른 장관 후보자가 자진 사퇴하거나 윤 대통령이 지명 철회를 하지 않고 임명을 강행한다면 최후 카드로 한 총리 후보자 인준을 부결시킬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도 꾸준히 제기된다. 다만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발목잡기 프레임에 휘말릴 것을 우려하는 이들도 상당수다. ‘이재명계 좌장’인 정성호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책임을 물을 때 묻더라도 일단 기회는 주는 게 정치 도리이고 국민들도 원하는 것”이라며 “한 후보자에 대한 조건 없는 인준 표결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민주당 초선 의원은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지방선거를 앞두고 과도하게 의석수로 힘을 쓰는 것처럼 보이면 역효과가 날 수 있어서 우려하는 의원도 적지 않다”고 귀띔했다.
◆尹, ‘정호영·한동훈’까지 임명할까
윤 대통령은 이날 박진 외교부·이상민 행정안정부·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임명을 재가했다. 국회에서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박진·이상민 장관과 채택된 이창양·이양 장관을 한날 임명하는 등 속도전을 편 것이다. 정부 출범 사흘 만에 18개 부처 장관 중 11명이 임명됐다. 이는 이명박정부(17일), 박근혜정부(51일), 문재인정부(195일)와 비교할 때 빠른 속도다. 아직 후보자조차 없는 교육부 장관을 제외하면 이달 내로 17개 부처 장관 임명이 마무리될 전망이다.
일단 대통령실은 국무회의 개의 정족수인 11인 이상을 맞출 수 있게 되면서 여론의 반대가 큰 정호영·박보균(문화체육부) 장관 후보자와 야당의 반대가 큰 한동훈·원희룡(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 등의 임명을 미룰 시간을 벌었다. 윤 대통령이 이들 후보자의 임명을 강행할지 여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대통령실은 연일 경제와 안보 위기를 강조, 국무회의를 통한 국정운영의 정상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순차적으로 장관 후보자를 임명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지만, 민주당의 거센 반발로 한 총리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부결될 수 있다는 우려의 시각도 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추가 임명 시점과 관련, “국회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기 위해 더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호영 후보자 임명 여부에 대해서는 “현재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하루빨리 같이 일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