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러 ‘디폴트 카드’ 꺼내든 美… EU는 에너지 앞에 사분오열

러 채무이행 유예시한 25일로 만료
연장 않을 땐 ‘국가 부도’ 이어질 수도
러 “디폴트 선언 안 해… 루블화로 상환”
전쟁범죄·잔혹행위 증거 수집도 속도

헝가리·체코 등 러 석유 의존도 높아
원유 금수 등 EU 제재 블록도 흔들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 도시 마리우폴의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 투항한 우크라이나군 병사들이 17일(현지시간) 친러시아 분리주의자가 장악한 도네츠크 지역으로 호송되고 있다. 올레브니카=AP연합뉴스

미국이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침공 책임을 묻기 위한 제재 고삐를 바짝 당기고 있다. 돈줄을 완전히 차단하고 전쟁범죄 의혹 조사에 착수하는 등 전방위적인 압박을 통해 한시라도 빨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발을 빼게 하려는 노림수다. 이런 미국의 행보는 전쟁 초기 대러 제재 목소리를 한껏 높였던 유럽연합(EU)이 러시아산 에너지 수급과 관련해 자국 입장에 따라 사분오열하는 모습과 대비된다.

 

미국 정부가 다음 주부터 러시아의 국채 원리금 상환을 차단해 디폴트(채무불이행)를 부추기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로이터와 블룸버그통신이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 재무부 산하 해외자산통제국(OFAC)은 러시아가 미국 채권자에게 국채 이자와 원금을 상환할 수 있도록 한 대러 제재 유예시한이 이달 25일 만료되면 연장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미 재무부는 러시아가 지난 2월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러시아 재무부, 중앙은행, 국부펀드와 거래를 전면 금지했다. 다만 미국 재무부는 채권 원리금, 주식배당금은 이달 25일까지 받을 수 있도록 유예기간을 뒀다.

 

25일 이후 채권 원리금 상환을 강제로 막는 조처가 시행된다면 러시아 디폴트 가능성이 커진다. 디폴트는 국가 부도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재 러시아의 대외 국가채무 규모는 400억달러(약 50조8000억원) 정도로 알려졌다. 러시아는 당장 이달 27일까지 2026년, 2036년 만기 외채의 상환을 이행해야 한다. 27일 만기를 넘기더라도 다음 달 24일 2028년 만기 국채의 이자 상환 시기가 또 돌아온다.

러시아 안톤 실루아노프 재무장관은 이날 한 포럼에서 “러시아는 디폴트를 선언할 계획이 없다”면서 “만일 서방 기구(채무상환 중개기관)가 폐쇄되더라도 루블화로 지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고 타스 통신이 전했다.

 

미 국무부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저지른 전쟁범죄와 잔혹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해 관련 증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저지른 ‘중대한 전쟁범죄’를 비난하고 러시아에 책임을 묻겠다는 결의를 강조한 바 있다.

 

EU의 대러 제재 블록은 에너지 앞에 속속 무너지는 모양새다. EU 회원국들은 전날까지 러시아 원유 금수조치를 논의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EU는 향후 6개월간 러시아 원유 수입을 단계적으로 중단하고 내년 1월엔 석유제품까지 수입을 끊는 제재안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러시아 석유 의존도가 높은 헝가리, 체코 등의 반대로 합의 도출이 쉽지 않은 모습이다.

우크라이나 남부 마리우폴의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 빠져나온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17일(현지시간) 친러시아 군병력의 수색을 받고 있다. 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의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 러시아에 끝까지 저항하다 투항한 병사의 운명도 국제사회의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이날 영국 일간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측은 즉시 포로 교환을 통해 자국 병사의 귀국 절차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는데, 러시아 안에서 사형·재판 등을 요구하는 강경 목소리가 커지면서 이들의 행선지가 불투명해졌다.

 

러시아에서는 전쟁 상황에 대한 자성이 필요하다는 내부 비판이 나오고 있다. 러시아 퇴역 대령이자 유명 군사 전문가인 미하일 호다료노크는 16일 러시아 국영TV에 출연해 러시아가 완전히 고립됐고, 전쟁 상황이 더욱 불리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 친정부 매체에서 자국이 처한 현실을 지적하는 의견이 전파를 탄 것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