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성추행·폭행 전력에도… 지방의원 재출마 논란

전국 광역·기초의원 3751명 중 126명 징계
민주당 68명 최다… 국민의힘 24명 뒤이어
사진=뉴스1

기초·광역의회 의원의 상당수가 성추행과 성희롱, 이권개입 등으로 징계를 받은 것으로 22일 확인됐다.

 

세계일보가 전국 17개 광역의회와 226개 기초의회 소속 지방의원 3751명에 대한 전수조사를 진행한 결과, 기초·광역 의회에서 활동한 지방의원들 중 126명이 ‘성추행·성희롱·음주운전·폭행·이권개입·농지법 위반’ 등으로 내부 징계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2018년 치러진 6·13 지방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세계일보의 조사에 앞서 일부 지역에서는 후보들에 대한 자질 논란이 일었지만, 주요 정당들은 이들을 6·1 지방선거 후보자로 공천해 지역 유권자의 공분을 사고 있다.

 

정당 차원에서 부적격 후보들을 걸러 내지 않는 점도 문제지만 공천 과정에서 해당 지역구 의원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지방의회 후보 선출 과정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정당별로는 더불어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 포함)이 징계를 받은 지방의원이 68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국민의힘(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포함) 소속 지방의원 24명, 무소속 22명, 기타 정당(소속 정당 비공개 포함) 소속 12명이다. 권역별로는 경기도가 16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경북·대전 15명, 전남 13명, 광주 12명, 대구 11명, 전북 10명, 서울·충남 9명, 강원 6명, 부산 5명, 경남 3명, 인천·충북 1명 순이다. 이번 조사는 전국 광역·기초 의회를 대상으로 정보공개청구를 실시, ‘최근 4년간 지방의회 의원 징계현황(중복자 포함)’을 확보해 분석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해외 연수 기간에 접대부 요구했던 의원, “나 몰라 재출마”

 

경북 예천군의회는 일부 의원이 2018년 진행된 해외 연수 중에 현지 가이드를 폭행하고 접대부가 나오는 술집 등을 요구해 전국적 공분을 샀다.

당시 박종철 군의원(당시 자유한국당)은 현지 가이드를 폭행했고 함께 연수에 참여했던 권도식 군의원(당시 무소속)은 여성 접대부가 나오는 술집을 요구해 물의를 빚었다. 이로 인해 현지 경찰이 출동하는 등 국제적 망신을 당하며 전국적 공분이 일자 예천군의회는 이들 의원을 모두 제명 처분했다. 국내에서는 ‘예천군 농산물 불매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이들은 ‘군민의 선택을 받겠다’며 현재 무소속으로 6·1 지방선거에 재출마한 상황이다.

 

자신이 속한 의회로부터 징계를 받은 지방의원 중에는 동료 여성 의원은 물론, 의회 공식 행사에 참석한 시민을 성추행하는 등 성범죄 전력을 가진 의원도 있었다. 서울 관악구의회 이경환 전 의원(당시 더불어민주당)은 2019년, 관악구의회 최고 징계 수위인 제명 처분을 받았다. 이 전 의원은 의회 내 토론 세미나 이후 열린 회식 자리에서 세미나에 참석한 여성 회원을 성추행한 혐의(강제추행)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동료 여성 의원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제명 처분된 지방의원도 있다. 박찬근 전 대전 중구의회 의원(당시 더불어민주당)은 2019년 7월, 동료 의원들의 무기명 투표 결과에 따라 중구의회에서 제명됐다. 박 전 의원은 같은 해 동료 의원들과 저녁 회의 자리에서 한 여성 의원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또 이보다 앞선 2018년에도 여성 의원에 대한 성추행 의혹이 제기됐었다.

 

◆입찰 ‘입김’… 불공정 수의계약 물의

 

지방의원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자신과 가족이 금전적 이득을 취하거나 각종 이권에 개입한 사례도 있었다. 경북 구미시의회 김태근 의원(당시 자유한국당)은 2019년 감사원 감사 결과, 자신의 가족기업이 구미시로부터 수의계약을 따낸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감사원은 구미시가 지방계약법을 위반해 2010∼2018년에 87건, 13억4700여만원 상당의 각종 관급공사를 김 의원과 가족이 소유한 건설사에 수의계약으로 발주했다고 지적했다. 논란이 일자 김 의원은 구미시의회로부터 ‘공개회의에서 사과’ 징계를 받았다.

강원 춘천시의회 김양욱 의원(당시 더불어민주당)도 지난해 ‘가족회사를 통한 불법 수의계약 논란’에 따라 출석정지 징계를 받았다. 앞서 국민권익위원회는 2021년 5월, 김 의원의 부모가 소유한 업체가 2019년부터 3차례에 걸쳐 춘천시와 수의계약을 한 사실을 적발했다.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 제33조에 따라 ‘지자체의 지방의회 의원 또는 그 배우자의 직계 존·비속은 그 지자체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계약을 체결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경기도 고양시의회 김완규 의원(당시 자유한국당)과 부산 사상구의회 권경협 의원(당시 더불어민주당)은 재임 중인 2019년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됐다. 또 부산 동구의회 전근향 의원(당시 더불어민주당)은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은 아파트 경비원에게 막말을 해 2018년 제명됐다. 전 의원은 다만 이에 ‘제명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 최종 승소하면서 의원직을 유지했다.

◆자격 논란에도 정당 공천으로 재입성 노려

 

내부 징계를 받은 지방의원에 대한 자질 논란이 일고 있지만, 일부 의원은 무소속은 물론 주요 정당 공천까지 받아 6·1 지방선거에 재출마한 것으로 조사됐다. 코앞으로 다가온 6·1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지방의회 재입성이 가능한 상황이다.

 

충북 청주시의회 박정희 의원(당시 미래통합당)은 2020년 6월,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차량에 치일 뻔하자 운전자의 얼굴을 폭행한 혐의로 벌금 100만원의 선고유예 처분을 받았다. 또 같은 해 5월에는 농지법 위반으로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은 뒤 청주시의회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박 의원은 이번 지방선거에 국민의힘 소속으로 4선 청주시의원 도전에 나섰다.

 

지난해 음주운전 혐의로 법원으로부터 벌금형 처분을 받은 전북 전주시의회 송상준 의원(당시 더불어민주당)도 이번 지방선거에 재출마한다. 당시 전주시의회로부터 ‘공개회의에서의 경고’ 처분을 받았지만 송 의원은 전주시 타 선거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지난 1월, 음주운전으로 7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경남 함안군의회 윤광수 의원(당시 더불어민주당) 역시 이번 6·1 지방선거 경남도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나섰다.

 

일부 자격 미달 지방의원의 선거 재출마와 관련해 지역 시민사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선영 충북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농지법 위반과 폭행을 저질러 처벌을 받은 의원이 정당 공천을 받고 재출마하는 상황은 공정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다”며 “지역 유권자를 기만하는 행위로 지역 정치권에서 퇴출돼야 할 대상이다”라고 비판했다.

 

광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최근 성명을 내고 “전과가 있는 후보자들의 경우 판결문을 공개해 유권자들이 공천받은 후보자들을 검증할 수 있게 하라”고 요구했다.

공당인 정당의 책임 있는 공천 시스템이 도입돼야 한다는 학자들의 주장도 강하다. 김기석 강원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각 정당별로 후보자 공천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 만큼 해당 기준에 부합하는 후보를 각 정당에서 공천한다면 자격 미달 공천 논란은 없을 것”이라며 “여야 정당 모두 보다 시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책임 있는 공천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점에서 볼 때 정당공천제가 필요한 이유도 공당이 최소한의 자격심사를 거쳐 적절한 후보를 공천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