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전파를 피해 아이들과 캠핑에 빠져 살았어요. 캠핑장 인근에는 포도농원도 있더군요.”
경기 의정부시에 사는 직장인 김모(41·남)씨는 ‘산업관광’의 남다른 맛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집에 갇혀 외출조차 제대로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즐길 거리를 찾던 그는 종종 가족과 함께 파주시의 캠핑장을 방문해 ‘아빠 찬스’를 외쳤다. 이 캠핑장 주변에는 와인 농장과 대형 와인 저장고가 있었다. 김씨는 “농원을 찾아 즉석에서 찍은 가족사진으로 만든 와인 라벨을 붙였고, 아이들을 위한 잼 만들기 체험까지 더해져 풍성한 시간이 됐다”고 회상했다.
26일 경기관광공사에 따르면 산업관광은 문화 또는 사회적 가치가 있는 산업현장과 생산품 등을 관광자원으로 이용하는 새로운 관광 모델이다. 공장을 방문해 식품의 가공공정을 견학하거나 기업의 홍보전시관을 찾아 개별 산업의 역사와 현황을 배울 수 있다. 전통수공업 제품을 만드는 곳을 방문해 온 가족이 체험에 나서기도 한다. 전통 향토산업부터 근·현대 산업유산, 강소기업과 첨단산업체의 시설과 기업박물관까지 대상도 다양하다.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리면서 새로운 관광지를 방문하고 싶어하는 국내 관광객에게 견학과 체험의 기회를 두루 제공하고, 기업의 매출 증대도 돕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앞서 도와 경기관광공사는 사전실태조사 등을 거쳐 올해 초 산업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42곳을 선정했다. 기술산업, 화장품제조, 농·축산업, 도예산업, 자원재생 등 16개 분야를 아우른다.
개별 장소들은 각각의 색깔과 역사를 품고 있다. 고양시 일산서구의 현대모터스튜디오는 국내 최대 체험형 자동차 테마파크이다. 차량 전시, 시승 프로그램 등을 통해 방문객이 다양한 체험을 맛볼 수 있다. △아시아 최대 규모 유가공 공장인 서울우유협동조합(양주시) △금속활자를 이용한 인쇄술 체험이 가능한 활판인쇄박물관(파주시) △우리나라 술의 맛과 향을 재현한 좋은술양조장(평택시) 등도 좋은 평가를 받는다.
도와 경기관광공사는 도내 산업관광지들을 소개하기 위해 산업관광 홍보 전자책과 전자 안내지도도 마련했다. 경기관광포털 누리집 안의 ‘간행물실’에서 볼 수 있다. 산업관광 자원의 여행상품화를 위한 업계 대상 팸투어도 진행 중이며, 산업관광 활성화를 위해 산업관광지 연계 여행상품을 개발한 뒤 홍보물을 제작하는 여행사에 최대 400만원을 지원한다. 공사 관계자는 “올해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산업관광 활성화 사업을 통해 도내 관광과 경기 부양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같은 산업관광은 이미 해외 선진국에서 문화·사회적 가치를 지닌 시설을 중심으로 활성화해 있다. 하이네켄 맥주 공장(네덜란드)과 아사히 맥주 공장(일본), 벤츠 박물관(독일) 외에 와이너리(프랑스)와 위스키 공장(영국) 등이 주요 방문지로 꼽힌다. 예컨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하이네켄 공장에선 수백년에 걸친 맥주 양조의 역사를 배우며 단순히 맥주를 좋아하는 ‘애주가’에서 ‘맥주 전문가’로 거듭나게 된다. 국내에선 철강기업인 포스코의 포스코역사관, 삼성의 이노베이션뮤지엄 등이 주요 벤치마킹 모델로 거론된다.
경기관광공사가 마련한 산업관광도 이처럼 여행과 배움을 짝짓기 했다는 게 특징이다. 맘껏 놀고 구경하다 보면 무언가 하나라도 배워갈 수 있도록 짜였다.
◆‘김중업 건축박물관’ ‘느린마을 산사원’ 등 대표적… “놀면서 하나라도 배워”
안성시 공도읍의 ‘팜랜드’는 128만여㎡의 초지 위에 조성된 국내 최대 체험형 목장이다. 전통 소인 칡소와 당나귀, 면양, 산양, 토끼 등 다양한 동물을 만날 수 있다. 면양마을에선 목동이 돼 양을 몰아보고, 목장 이곳저곳을 오가며 한가롭게 풀을 뜯는 아기 면양들의 앙증맞은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가축체험장에선 당나귀, 라마, 양에게 당근·건초 등의 먹이를 주는 체험도 가능하다. 산책로를 걷다 만나는 팜랜드 역사관과 동화마을 연못, 말타기 체험을 진행하는 승마센터도 찾아봐야 할 곳들이다.
근대건축의 거장과 만나고 싶다면 안양시 만안구의 ‘김중업 건축박물관’을 찾으면 된다. 김중업은 한국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1세대 건축가로, 세계 근대건축의 거장인 르코르뷔지에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로 알려져 있다. 서구 건축기술과 전통건축, 예술을 접목한 그의 건축관과 생애는 옛 유유산업 안양공장의 연구동을 리모델링해 2014년 개관한 이 박물관에 녹아 있다. 이곳은 1959년 설계된 김중업의 초기 작품이다. 건물의 구조체계를 노출해 조형적 효과를 거두려는 의도가 반영됐다. 서울 삼일빌딩의 설계비도 받지 못한 채 1971년 고국을 떠나 프랑스로 가게 된 사연 등 김중업의 삶 외에 서강대와 부산대 본관, 주한 프랑스대사관 등 대표 작품들의 모형과 설계도, 사진 등을 만날 수 있다. 박물관 용지는 827년 조성된 중초사지 당간지주와 고려시대 삼층석탑이 남아 있는 역사 공간이기도 하다.
포천시 화현면의 ‘느린마을 산사원’은 운악산 자락에 있는 전통술 박물관이다. 일제강점기에 사라진 전통주 문화를 되살렸다. 크게 본관과 산사정원으로 나뉘는데, 본관은 우리 술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전시가 주를 이루는 전통술 박물관, 평생을 전통주에 매달리며 시장을 개척한 배상면을 추억하는 우곡기념관, 배상면주가에서 생산된 술을 음미하고 구입하는 시음 코너와 판매장으로 구성된다. 산사정원은 ‘산사나무가 있는 정원’이라는 뜻으로 ‘산사춘’의 원료가 되는 산사나무를 강원도에서 발견해 20그루를 옮겨다 심었다. 세월랑이라 부르는 전통 증류주 숙성고에선 400여기의 대형 술독이 늘어선 모습을 접할 수 있다. 세월랑 뒤에는 150년 된 전남 부안의 쌀 창고를 그대로 옮겨 온 부안당이 자리한다.
전기·수소차까지 발전한 자동차 기술이 궁금하다면 고양시 일산서구의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을 방문하면 된다. 거의 매일 타고 다니는 자동차에 숨은 과학지식을 접할 수 있다. 현대차에서 생산한 아이오닉5, 캐스퍼, 투싼, G90 등 전시 차량도 탑승 가능하다. 상설전시관에선 강철이 어떤 과정을 거쳐 자동차로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준다. 프레임을 만들고, 페인트를 칠하고, 운전석과 유리를 부착하는 등 전체 공정을 나열한다. 에어백의 원리와 바람의 과학, 사운드 기술 등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자동차와 관련된 과학기술도 시각화해 설명한다. 어린이를 위해 미래 차량을 레고로 직접 디자인하는 코딩 교육과 올바른 교통안전 의식을 함양하는 어린이 교통안전 워크숍도 마련됐다.
양주시 광적면의 ‘조명박물관’에선 남포등·가스등 등 다양한 조명기구와 조명예술을 만날 수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 이곳에선 빛, 조명, 색이 갖는 다양한 의미를 고찰하고 배운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두 개의 빛을 비추면 그 색이 그림자에 입힌다는 설명도 곁들여진다. 빛의 그러데이션 효과로 만들어진 엘리스의 문도 흥미를 더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빛의 통로가 4차원 세계로 통하는 입구처럼 느껴진다. 과학이 들려주는 빛이야기는 빛의 굴절, 분산, 직진, 색 혼합 등을 재미있게 설명한다.
이 밖에 부천시 길주로의 ‘한국만화박물관’에선 ‘아기공룡둘리’와 ‘달려라하니’ 등 동심을 자극하는 만화의 추억을 되살릴 수 있다. 이곳은 6000여권의 단행본과 1000여권의 잡지를 보관한 수장고와 만화도서관 등으로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