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26일 “합리적 이유가 없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는 판단을 내리면서 산업현장에서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혼란과 갈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이 임금피크제의 효력 여부에 대한 ‘판단 기준’을 제시했지만, 임금피크제의 ‘적정 수준’은 개별 사업장마다 다르다고 판시해서다. 각 회사의 임금피크제 위법 여부를 확인하려는 근로자들의 소송이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고령화 추세 속에서 고용 안정을 위해 정년을 보장하는 대신 임금을 삭감하자는 취지로 2000년대에 도입된 임금피크제의 근간이 무너질 수 있다는 전망과 함께 ‘올바른 임금피크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쟁송은 대기업에서 더 빈번하게 일어날 전망이다. 고용노동부의 ‘2021년 6월 말 기준 사업체노동력조사 부가조사결과’에 따르면 정년제를 운용 중인 34만7422개 업체 중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곳은 전체의 22.0%인 7만6507곳이다. 규모가 ‘300인 이상’인 사업체 경우는 총 3265곳의 절반 이상(53.6%)인 1750곳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공공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 제기도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임금피크제는 박근혜정부에서 노동자의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늘리는 ‘60세 정년’ 의무화에 발맞춰 2015년 말 모든 공공기관에 도입해서다.
일선 기업에선 대법원이 제시한 기준에 따라 부랴부랴 임금피크제 내용 수정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임금피크제 적용자의 업무강도를 낮춰주거나, 정년을 연장하는 식이 될 전망이다. 익명을 요구한 노무사는 “기업 인사 평가를 하다 보면 나이만을 기준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회사가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장에선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커질 것을 대비해 정부 등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용노동부 또는 노사정 합의체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대법원 판단 기준에 맞춰 올바른 임금피크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석열정부가 국정과제로 선언한 공공기관 직무급제 추진 또한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종혁 한국공인노무사회 부회장은 “임금피크제가 사회 고령화로 연공급 임금 체계를 유지하면 노동 생산성이 떨어지니 이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됐는데, 소송이 잇따르면 임금피크제 제도 자체가 흔들리게 될 것”이라며 “현장에서 임금피크제가 점점 축소되고 연공급제가 한계에 부딪히면 직무급제로의 전환 논의가 본격화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