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슬픔 나누러 유밸디 간다”… 대국민 메시지 ‘주목’

21명 희생된 총기난사 사건에 격분
“왜 미국에서만 이런 일 일어나나…
총기 로비에 맞서기 위한 행동 시급”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조지 플로이드 사망 2주기를 맞아 경찰 개혁에 관한 내용이 담긴 행정명령에 서명하기 전 손으로 눈 주위를 닦고 있다. 워싱턴=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최근 총기난사 사건으로 어린이를 포함해 21명이 희생된 텍사스주(州) 유밸디를 방문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에만 있는 총기난사 사건이 이젠 지긋지긋하다”며 연방의회에 총기 규제 강화 입법을 주문했지만, 공화당이 의석 절반을 차지한 상원은 여전히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번 사건이 오는 11월 의회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 ‘악재’로 작용해 여당인 민주당이 상원을 장악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에서 “오는 일요일(29일) 우리 부부는 텍사스주 유밸디로 가서 끔찍한 총기난사 사건으로 21명이 목숨을 잃은 지역사회 주민들과 슬픔을 나눌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의회를 향해 “이 고통을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라며 총기 규제 법안의 신속한 처리도 당부했다.

 

앞서 지난 24일 유밸디의 한 초등학교에 18세 남자 고교생이 몰래 들어가 총기를 난사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초등학생인 어린이 19명과 교사 2명 등 21명이 목숨을 잃었다. 총기 관련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미국에서도 근래에 일어난 것 중 단연 최악이다. 범인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현장에서 사살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격분했다. 닷새에 걸친 한국·일본 순방을 마치고 전용기 ‘에어포스원’에 올라 귀국하던 중 이같은 보고를 접한 바이든 대통령은 즉각 보좌진에 조기 게양과 대국민 연설 준비를 지시했다. 백악관에 도착하자마자 방송 카메라 앞에 선 그는 대국민 연설에서 “이런 종류의 총기난사 사건은 세계 다른 나라에선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며 “왜 우리 미국인들만 이 대학살과 함께 살려고 하는 것이냐”고 탄식했다. 이어 “이젠 정말 지긋지긋하다”며 “우리는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입법권을 쥔 연방의회 의원들이 총기 규제를 강화하는 법률 제·개정에 나서야 한다는 의미다.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유권자들이 들고 일어나 압박을 가해야 한다는 뜻도 담겨 있다.

 

26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유밸디 주민들이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으로 희생된 어린이들을 추모하고 있다. 유밸디=AFP연합뉴스

하지만 의회의 행동은 여전히 굼뜨기만 하다. 여당인 민주당이 다수당인 하원은 몰라도 민주당과 공화당이 50석씩 양분한 상원은 말 그대로 요지부동이다. 공화당은 총기 보유를 국민 기본권으로 규정한 수정헌법 2조를 무슨 성경책처럼 떠받드는 집단이다. 보수 색채가 짙은 공화당은 미국의 총기 제조업체 및 그들이 고용한 로비스트로부터 막대한 정치자금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에서 “우리는 대체 언제쯤이면 총기 로비(gun lobby)에 맞설 수 있을까”라고 말한 것도 연방의회 의원 일부가 총기 로비에 좌우되는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당장 법무부, 국토안보부, 연방수사국(FBI)이 힘을 합쳐 ‘국내 테러’에 대응하는 부서를 신설하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인 일명 ‘국내 테러 방지법안’이 상원에서 공화당 반대로 제동이 걸렸다. 국내 테러란 극단주의자의 총기난사와 같은 범죄를 지칭하는 용어인데 이 법안이 통과되면 필연적으로 총기 규제 강화가 뒤따를 수밖에 없어 공화당 의원 다수가 거부감을 느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1명이 희생된 미국 텍사스주 유밸디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 범인 살바도르 라모스(18)가 자신의 SNS에 올린 사진. 라모스는 범행 직후 출동한 경찰에 사살됐다. AFP연합뉴스

백악관·민주당은 연방기관인 알코올·담배·총기단속국(ATF)의 책임자 임명을 놓고서도 공화당과 마찰을 빚고 있다. 총기 관련 법률을 시행하고 총기 허가 및 소지를 관리하는 이 기관 수장이 누가 되느냐는 총기 규제 강화와 관련해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바이든 대통령은 검사 출신 법조인 스티브 데텔바흐를 ATF 국장 후보자로 지명했으나,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썩 내키지 않는 모습이다. 이에 화가 난 바이든 대통령은 ATF가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5년부터 벌써 7년가량 국장 없이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돼 온 점을 거론하며 공화당에 “즉각 데텔바흐를 ATF 수장으로 인준하라”고 촉구했다.

 

미 정가에선 이번 총기난사 사건이 연방대법원의 낙태권 판결과 더불어 오는 11월로 예정된 의회 중간선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대법원이 여성의 낙태권을 부정하는 판결을 내리고 거듭되는 참사에도 의회의 총기 규제 움직임이 지지부진하다면, 2030 여성 유권자를 중심으로 표심이 여당인 민주당 쪽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오는 29일 유밸디에서 바이든 대통령 부부가 얼마나 공감이 가는 대국민 메시지를 내놓을지에 이목이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