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 규제, 뭐라도 해라" 고함에 바이든 "그럴게요"

텍사스주 유밸디 참사 현장 방문… 눈물 ‘글썽’
BBC "총기 규제 강화 약속했지만 현실적 난관"
미국 텍사스주 유밸디 총기난사 사건 이후 총기 규제론자들의 항의 시위가 격화한 가운데 29일(현지시간) 유밸디를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주변을 경호원들이 삼엄하게 경계하고 있다. 유밸디=AP연합뉴스

“뭐라도 좀 해보세요(Do something)!”

 

“그렇게 하겠습니다(We will).”

 

29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州) 유밸디의 한 가톨릭 성당 앞. 5일 전 어린이 19명을 비롯해 21명의 목숨을 앗아간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 희생자 추모 미사를 마치고 성당을 나서는 조 바이든 대통령 부부를 향해 시위대가 소리쳤다. ‘대체 정부는 어디에 있느냐’는 힐난이 섞인 이 외침에 바이든 대통령은 ‘행동으로 옮기겠다’는 뜻을 담아 단 두 단어로 답했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부인 질 여사와 유밸디를 방문했다. 지난 24일 이 조용한 고장의 초등학교에선 18세 남자 고교생 샐버도어 라모스가 초등학생 및 교사를 상대로 AR-15 소총을 난사해 21명이 숨지는 참사가 벌어졌다. 희생자 중 19명이 초등학생인 어린이였고 그들 곁에 있던 교사 2명도 목숨을 잃었다. 총기난사가 잦은 미국이지만 근래 벌어진 사건 중에선 인명피해 규모가 가장 컸다.

 

바이든 대통령 부부는 가장 먼저 희생자 유족을 만나 위로했다. 학생 19명과 교사 2명을 황망히 떠나보낸 학교 관계자들과도 슬픔을 나눴다. 마침 영부인 질 여사는 본인이 교육자인 만큼 이번 참사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BBC는 “대통령과 영부인 두 사람 모두 선글라스 밑에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목격됐다”며 “질 여사는 희생된 아이들 각각의 사진을 차례로 어루만졌다”고 보도했다.

 

추모 미사가 예정된 성당 주위에는 총기 규제 강화를 요구하는 시위대가 몰려들어 대통령 일행을 기다렸다. 민심이 극도로 악화한 상태라 백악관 경호팀이 잔뜩 긴장했지만 물리적 충돌 같은 돌발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부부가 29일(현지시간) 텍사스주 유밸디를 찾아 총기난사 사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유밸디=AP연합뉴스

미국은 올해 들어 총기난사 사건이 벌써 200건을 넘어섰다. 미 사법당국은 총을 쏜 사람을 제외하고 4명 이상이 총에 맞아 다치거나 사망하는 사건을 ‘총기난사’(mass shooting)로 규정한다. 범행 현장에서 경찰에 사살된 범인 라모스는 경찰의 집 압수수색에서 실탄이 1657발이나 발견됐다. 더 많은 이가 목숨을 잃는 끔찍한 참사로 이어졌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대목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총기 규제 강화를 약속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는 게 언론 분석이다. BBC는 “유밸디 참사로 미국에서 총기 규제에 대한 새로운 요구가 거세진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공화당 지도층에서는 여전히 총기 규제 강화에 반대한다”고 전했다. 양원제 의회를 가진 미국에서 하원은 총기 규제 강화에 찬성하는 여당 민주당이 과반 다수당이지만 상원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50석씩 균점하고 있다. 상원의 공화당이 제동을 걸고 나서면 어떤 개혁 입법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당장 오는 2024년 대선의 공화당 후보에 도전할 것이 확실시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점잖은 미국인들이 ‘악’(惡)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있도록 총기 보유 및 소지를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화당 소속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텍사스주) 역시 “민주당과 일부 언론이 이번 참사를 기회 삼아 총기를 보유할 시민의 헌법적 권리를 제한하려 든다”고 비난했다.

 

이 때문에 바이든 대통령의 다짐에도 불구하고 당장 뭔가 가시적인 조치가 나오긴 어렵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BBC는 백악관 관계자를 인용해 “바이든 대통령이 민주당과 공화당 간의 미묘한 협상에 간섭하지 않기 위해 앞으로 몇 주 안에 구체적인 정책 제안을 내놓거나 행정명령을 내리려 할 것 같지는 않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