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을 젖히니 하늘빛이 아직 어둡다. 새벽길을 조심스레 밝히고 있는 할로겐 빛이 파리 골목길에 스며든다. 해가 뜬 건지 아직인지 모를 날씨지만 침대에서 일어나 커피를 내린다. 아침 일상은 이렇듯 자연스레 커피 한잔과 가이드북을 들춰 보며 시작된다.
호텔을 나서니 에펠탑이 정면으로 보인다.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부지런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사람들이 붐비지 않은 공간에서 그들만의 추억을 쌓고 있는 듯하다. 주위를 산책하고 인류박물관(Musee de l'Homme)으로 향한다. 센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박물관은 에펠탑 전경을 품고 있다. 파리 뮤지엄 패스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 관광객들 방문이 많지는 않지만 선사시대, 생물학과 문화인류학 컬렉션을 즐기고자 한다면 한 번쯤 들려볼 만한 장소이다.
박물관 카페테리아에서 브런치를 즐기는 사람들을 바라보니 에펠탑과 어우러진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워 보인다. 대화를 즐기는 그들을 뒤로하고 샹젤리제 극장으로 향한다. 연극을 관람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극장 내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다. 파리에서 보기 드문 발렛파킹 안내를 본다. 극장 내부 무대처럼 화려한 실내는 점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파리지앵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공연이 있는 날은 유명인사들도 만나고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의 대화로 시끌벅적했을 테지만 공연 없는 점심시간은 들뜨지 않은 분위기로 음식을 즐기기에 충분했다.
점심을 즐기고 로댕과 피카소 비교 전시를 기획하고 있는 피카소 미술관으로 향했다. 물론 피카소 미술관만으로도 매력적이지만 이번 기획 의도는 흥미롭다. 피카소 국립 미술관(Musee National Picasso-Paris)은 1985년 파리 마레 지구 중심에 있는 살레 호텔에 자리 잡았다. 1973년 프랑스 정부에 상속세 대신 기증된 작품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피카소 작품들을 시대별로 모두 볼 수 있다. 피카소의 수집품과 더불어 피카소 작품들을 둘러보고 피카소와 로댕이 표현한 작품들도 비교하며 본다. 같은 대상을 이렇게 다르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피카소의 우스꽝스러운 모델과 로댕의 근엄한 모델이 동일한 인물 발자크(Balzac)라는 것에 한참을 들여다본다.
피카소 미술관을 나와 카르나발레 박물관(Musee Carnavalet)으로 향한다. 파리 역사를 다루고 있는 카르나발레 박물관은 카르나발레 호텔(Hotel Carnavalet)과 르 펠레티에 드 생 파르고 호텔(Hotel Le Peletier de Saint Fargeau) 건물 두 개를 같이 쓰고 있다. 박물관 입구를 들어서면 안으로 아담하고 아름다운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태양왕 루이 14세 조각상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전시관에서 파리의 처음 정착 시기부터 세계적인 대도시로 거듭나기까지의 변천사를 둘러보고자 하니 문 닫을 시간이라고 안내한다. 부랴부랴 약속 장소로 향한다. 코로나19를 잘 버틴 친구와 저녁을 함께 하기로 했다. 파리는 한국보다 엄격한 통제로 힘겨웠다고 하니 위로와 축하를 전하며 저녁으로 해산물 요리(plateaux de fruits de mer)을 즐긴다. 어느덧 하루가 저무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