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오지 마다않고 34년 팔도 관중과 호흡한 ‘만인의 오빠’ [송해 1927∼2022]

송해, 95년 인생

6·25때 혈혈단신으로 남하한 실향민
통신병 복무 당시 한국전 휴전 타전

전후 가수로 데뷔, 코미디언·MC 활약
1988년부터 전국노래자랑 ‘터줏대감’
소탈하고 격의없는 진행으로 사랑받아
세계 최고령 진행자로 기네스 등재도
사진=뉴스1

원조 국민 MC, 현역 최고령 MC, 영원한 현역, 만인의 오빠, 일요일의 남자. 숱한 애칭으로 불리며 매주 일요일 “전국∼”이라는 외침과 함께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받은 KBS1 ‘전국노래자랑’ 사회자 송해가 8일 영면에 들었다. 향년 95세.

1927년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난 고인은 그야말로 한국 현대사를 헤쳐오며 서민과 함께한 코미디언이자 가수, 그리고 방송인이었다. 본명은 송복희. 해주예술학교에서 성악을 배웠고,23세 때 6·25전쟁이 발발하자 남한에 혈혈단신으로 내려왔다. 해주에서 눈밭길을 헤치며 걷고 나룻배를 타고서 연평도까지 내려온 후 유엔군 상륙선에 탑승한 피란 대열에 섞여 부산으로 내려왔다. 이때 실향민으로 바닷길을 건너오면서 바다 ‘해(海)’ 자를 예명으로 썼고 그게 지금의 이름 ‘송해’가 됐다. 부산 현지에서 군 통신학교에 입대한 후 통신병으로 복무하며 1953년 7월 27일 모스 부호로 전군에 휴전협정 타결 소식을 알리기도 했다. 고인은 생전 당시 모스 부호 타전을 여러 차례 방송 등에서 입으로 재연해보이곤 했다.



연예계에는 1955년 ‘창공악극단’에서 가수로 데뷔했다. 당시 악단에서 가수를 했지만 악단 공연 특성상 진행을 하면서 입담을 살려 분위기를 띄우는 역할도 하다 보니 이때부터 자연스럽게 MC 경험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1960년대 대중문화가 극장에서 방송으로 옮겨 가면서 고인도 TV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MBC ‘웃으면 복이와요’에서 여성 코미디언 1인자 이순주와 콤비로 활약했다. 코미디언 배삼룡, 구봉서 등과도 한무대에 섰다. 특유의 구수한 입담으로 TBC(동양방송) 라디오 방송 ‘가로수를 누비며’를 1974년부터 17년간 진행했다.

1988년부터는 KBS1 ‘전국노래자랑’의 진행을 맡았다. 오프닝 멘트에서 고인이 “전국∼” 하고 외치면 관중들이 “노래자랑∼”이라고 화답하는 장면은 해당 프로그램의 트레이드마크. 고인은 이때부터 34년간 전국 팔도 안 다녀 본 곳이 없다. 1998년 금강산 관광단으로 북녘 땅을 밟았을 때는 아이처럼 좋아했고, 2003년 ‘전국노래자랑-평양’편에서는 ‘한 많은 대동강’을 부르며 “다시 만납시다”라고 안타까운 작별인사를 전했다. 다만 자신의 고향 땅을 한번 밟아보는 게 평생 소원이었다. 가수 태진아는 “송해 선생님과 함께 전국 팔도를 다 다녔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우리 가수들이 재기하고 히트곡을 내놓은 것은 다 선생님과 ‘전국노래자랑’ 덕분”이라고 애도했다.

고인은 전국을 누비며 무려 1000만명 넘는 사람을 만났다. 송해 특유의 친화력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긴장하고 있는 출연자 마음을 훈훈하게 녹였다. 고인 스스로도 몸을 사리지 않았다. 낙지, 장어 등 각종 지역특산물을 들고 올라오는 참가자의 짓궂은 장난도 단 한 번 거부하지 않고 그들이 건네주는 특산물들을 모두 맛봤다. 참가자와 함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가수 배일호는 “선생님은 출연진과 스태프에게 싫은 소리 한번 안 하실 정도로 불평, 불만, 투정을 안 하셨다”며 “조금 마음에 안 드는 부분도 편안하게 받아주시고, 높은 사람 낮은 사람 따지지 않고 격의 없이 사람을 대하며 배려해주셨다”고 추모했다.

고인의 이러한 삶은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아 지난달 23일 기네스 ‘최고령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Oldest TV music talent show host)’ 세계기록에 이름을 남기기도 했다. 또 대한민국연예예술상 특별공로상, 백상예술대상 공로상, 은관문화훈장 등 무수히 많은 상을 받았다.

고인은 사랑하는 가족들을 먼저 떠나보내는 슬픔도 겪었다. 하나 있던 아들을 1994년 교통사고로 잃었고, 2018년에는 부인 석옥이씨를 먼저 보내면서 큰 상실감에 빠지기도 했다. 부인 고향인 대구 달성군에 부부가 함께 묻히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내곤 했던 것으로 전한다.

송해는 자신을 수식하는 수많은 말 중에 ‘오빠’가 가장 좋다고 했다. “양평에 갔을 때는 105세 된 누님도 나한테 오빠라고 했어. 나처럼 동생 많은 사람이 없다니까. 오빠라고만 하면 그저 좋아.” 서울 종로2가 육의전빌딩부터 낙원상가에 이르는 240m 구간은 ‘송해길’로 불리며, 대구 달성군에는 ‘송해공원’과 송해기념관이 조성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