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이하 화물연대)의 총파업 이틀째인 8일 이른 아침부터 곳곳에서 물리적 충돌과 물동량 감소가 가시화하며 파업 여진이 확산하고 있다. 경찰의 강경 대응 방침에 따라 이날 하루 전국에서 체포된 화물연대 조합원은 20명이 넘고, 시멘트나 타이어 등 일부 품목의 수송은 멈춰선 상태다. 앞서 화물연대는 안전 운임제 일몰제 폐지 등을 요구하며 전날 0시 총파업에 돌입했다.
이날 오전 8시30분쯤 경기 이천시 하이트진로 공장 앞에서 공장을 오가는 화물차량을 막아선 혐의로 화물연대 조합원 A씨 등 15명이 무더기로 검거됐다. 이들은 하이트진로 측이 고용한 기사가 몰던 3.5t 출하차량의 운행을 방해했고, 이 중 A씨가 화물차량 밑으로 들어가 운행을 중단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하이트진로 이천공장과 청주공장의 화물 운송 위탁사 소속 화물차주 130여명은 파업에 돌입했다. 두 공장은 이 회사 전체 소주 생산량의 70%를 차지한다.
산업 현장에서는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부산항 북항과 신항의 반출입량은 각각 평소 대비 30∼40%와 15% 수준인 반면, 장치율(보관 능력 대비 실제 보관된 컨테이너 비율)은 74.5%까지 치솟았다. 전날 74%에서 더 상승한 수치다. 부두 내 컨테이너 장치율이 높으면 컨테이너를 옮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터미널 운영 효율성이 떨어진다.
평택항의 지난 7일 반출입량은 68TEU(1TEU는 6m 길이 컨테이너 1개)로 집계돼 평소보다 98% 줄었다.
시멘트 출하도 이틀째 전면 중단됐다. 충북 단양군에선 한일시멘트와 성신양회 화물차 운송이 멈춰 섰다. 시멘트협회는 전날과 이날 시멘트 출하량이 각 1만5500t, 1만3660t으로 평소 대비 10% 이하에 그쳐 하루 매출 손실액이 각 153억원, 155억원이라고 추정했다.
불똥은 레미콘사에도 튀었다. 건설 수요가 많은 수도권의 경우 이날부터 생산이 중단됐다. 배조웅 전국레미콘연합회장은 “내일부터는 공장 가동이 중단되는 곳들이 속출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자동차업계에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을 오가는 화물연대 소속 납품 차량은 이날 오후 2시부터 운송 거부에 들어갔다. 이로 인해 일부 생산라인이 오후 4시쯤부터 가다 서기를 반복했다. 현대차 납품 업체인 현대글로비스와 계약한 운송업체는 19개사로, 이들 운송업체 소속 화물 노동자 중 70%가량이 화물연대 조합원으로 알려졌다. 화물연대의 파업이 장기화하면 전체 생산에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국타이어는 대전공장 출하 물량이 평소의 30% 정도로 줄었고, 금호타이어는 공장 3곳에서 아예 출하를 못하고 있다. 철강업계는 포스코와 현대제철에서 총 7만5000t가량의 운송이 늦어지고 있다.
편의점업계는 소주 물량 부족으로 발주 제한에 나섰다. CU는 이날부터 하이트진로 소주 참이슬과 참이슬 오리지널, 진로이즈백 발주를 점포당 하루 1박스로 제한했다. 세븐일레븐과 미니스톱은 앞서 지난 4일부터 이들 제품의 발주를 1박스로 제한했고, 이마트24도 3박스만 가능하도록 했다.
◆화물연대 “안전운임제 유지” 국토부 “대화로 풀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산하 화물연대본부가 연일 안전운임제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총파업은 불가피했다고 거듭 역설했다. 국토교통부는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면서도 안전운임제 개정 등은 국회 입법사항이라며 확답을 피했다.
화물연대는 8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총파업 돌입 배경과 요구사항을 설명하며 “안전운임 일몰제가 6개월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의 행태가 바뀌지 않고 탄압 일변도로 나가 투쟁 수위를 높일 수밖에 없다. 이른 시일 내에 전국 화물차(자동차) 생산 라인을 멈추고 유통·물류를 완벽하게 세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유가 급등으로 화물 운송 비용이 급상승했는데도 화물 운송료는 유지되고 있다”며 “유류비가 증가한 만큼 화물 노동자의 소득은 감소했다”고 호소했다. 화물 노동자의 월평균 순수입은 약 342만원 수준인데, 경유 가격 인상으로 100만∼300만원 가까이 지출이 증가하면 이들의 수입은 사실상 ‘0’에 가까워진다는 게 화물연대 주장이다. 화물연대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전국 평균 경유 가격은 47.6% 상승했고, 요소수 가격은 97% 뛰었다. 25t 화물차량의 경우 월 운송 거리를 1만889㎞로 산정하면 월 유류비가 현재 668만원 수준으로, 1년 전(약 373만원)보다 295만원 늘어났다. 안전운임제가 유지되면 운송료가 연료비에 연동해 오르내리기 때문에 최근처럼 유가가 급등해도 화물기사의 수입이 줄지 않게 된다.
노동·사회·종교 단체 관계자들도 화물연대의 총파업을 지지하며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전국민중행동 박석운 공동대표, 금속노동조합 윤장혁 위원장 등은 이날 같은 장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는 화물연대 노동자의 파업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응하겠다’는 협박만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토부는 화물연대 파업과 관련해 “언제나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는 입장이다. 어명소 국토부 2차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여부에 대해 “법률 개정사항으로, 국회가 열린다면 조속히 논의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즉답을 피했다. 그러면서 “화물연대는 일몰제 폐지나 연장을 계속 주장하고 있고, 화주는 물류비 상승이나 처벌 규정에 불만이 있는 데다 안전운임제의 효과 자체도 낮다는 문제 제기를 하고 있어 이해관계가 다른 상황”이라며 “화물운임 태스크포스에서 이런 부분을 충분히 논의해 왔고 앞으로도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