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해 운전대를 잡았다가 대만인 유학생을 치어 숨지게 한 50대 남성이 5번의 판결 끝에 징역 8년형을 확정 받았다. 상습 음주운전자를 가중처벌하는 ‘윤창호법’에 위헌 결정이 내려졌으나 형량은 줄어들지 않았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9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위험운전치사와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모(53)씨의 재상고심에서 원심의 징역 8년형을 확정했다.
앞서 김씨는 2020년 11월6일 서울 강남구의 한 도로에서 술에 취한 채 차를 운전하던 중, 횡단보도 건너던 대만인 유학생 쩡이린(曾以琳·당시 28세)씨를 치어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사고 당시 혈중알코올농도 0.079%로 만취 상태였던 김씨는 과거에도 두 차례 음주운전으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다. 1심과 2심은 김씨의 사회적 비난 가능성이 높다며 검찰 구형량(징역 6년)보다 무거운 징역 8년이라는 이례적인 선고를 내렸다.
김씨 측은 재판 과정에서 각막 이식 수술로 오른쪽 눈엔 렌즈를 착용하지 못했고, 왼쪽 눈에 착용한 시력 렌즈가 순간적으로 옆으로 돌아가 당황해 피해자를 보지 못한 것을 참작해달라는 취지로 진술했다. 이후 김씨는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다.
헌법재판소는 2심 판결 이후 도로교통법 중 2회 이상 적발된 음주운전자를 가중처벌하는 조항(148조의2·이른바 ‘윤창호법’)이 과잉 처벌이라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은 이에 따라 지난해 말 김씨의 판결을 파기했다. 김씨에게 적용된 도로교통법 148조의2 1항이 위헌 결정으로 효력이 상실된 점을 파기환송 이유로 들면서다.
파기환송심에서 검찰은 위헌 결정이 나온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관련 가중처벌법 대신 일반 처벌 조항을 적용하는 취지로 공소장을 변경했다. 이에 형량이 파기환송 전보다 다소 감경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같은 형량인 징역 8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음주운전이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생명과 재산을 침해할 위험이 높은 범죄로 이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피해자는 횡단보도에서 보행자 신호에 따라 길을 건너던 중이었으므로 피해자에게 돌릴 책임은 전혀 없다”며 “피고인은 주의력과 판단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만연히 운전했다는 점에서 주의의무위반 정도가 크고 매우 무겁다”고 강조했다.
계속해서 “피해자가 사망했다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났고, 유족은 슬픔 속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비록 피고인이 잘못을 뉘우치며 유족에게 사죄하는 모습이 보이기는 하지만, 유족에게서 용서받지 못한 점을 감안하면 이런 태도만을 유리한 양형 요소로 적극 참작하기 어렵다”고 했다.
김씨는 다시 대법원의 문을 두드렸으나 대법원은 징역 8년형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피고인만이 상고한 상고심에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항소심에 환송한 경우, 환송 후 원심 법원은 불이익 변경 금지의 원칙상 파기된 환송 전 원심 판결보다 중한 형을 선고할 수 없을 뿐이지 동일한 형을 선고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라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