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 울음 소리만 듣고 살았는데"… 이젠 '욕설'만 들리는 평산 마을

文 전 대통령 귀향 한 달… 180도 달라진 마을
8일 경남 양산 하북면 평산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인근 도로에서 한 보수단체 회원이 집회를 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10일 문재인 전 대통령이 5년 간 임기를 마치고 경남 양산 평산마을로 귀향한 지 한 달이 됐다. 

 

자유인으로 돌아간 그는 “잊혀지고 싶다”고 했다.

 

안식처로 선택한 평산마을에서 조용한 은퇴 생활을 맞았으면 하는 속내를 비춘 것인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한 달이 지난 지금 그의 바람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평산마을에서 펼쳐지고 있다.

 

사저가 있는 평산마을은 40여 가구에 100여명 주민이 농사를 짓거나 은퇴 후 전원생활을 즐기는 양산의 작은 시골마을이다.

 

그런데 문 전 대통령 퇴임 후부터 계속 이어온 극우 성향 단체 회원들의 집회와 시위로 마을주민들이 몸서리를 치고 있다.

 

마을주민들은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여태 본 적 없는 낯선 모습에 문 전 대통령 퇴임 전과 후 마을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했다. 

 

집회와 시위로 인한 소음 문제와 저급한 욕설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70~90대 주민 10명은 환청과 불면증 등 피해를 호소하며 병원 진료를 받기도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경남 양산 평산마을 주민들과 함께 가마에 불을 때고 막걸리를 나눠마시는 모습을 8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공개했다.    문 전 대통령 트위터

참다못한 주민 30여명이 시위하는 극우 성향 단체 회원들을 찾아가 중단해달라고 항의하기도 했지만 헛수고였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반지성이 작은 시골 마을 일요일의 평온과 자유를 깨고 있다”고 비판하던 문 전 대통령이 결국 직접 나섰다. 

 

지난달 31일 3개 단체 회원 3명과 성명불상자 1명 등 4명을 모욕 및 명예훼손, 살인 및 방화 협박 등의 혐의로 고소한 것이다.

 

이후 경찰이 일부 단체의 평산마을 집회를 금지하고 제한을 통고하면서 상황이 나아지는가 싶었지만 별 차이가 없다는 게 마을주민 설명이다.

 

되레 최근 연 집회나 시위에서는 플라스틱 모형 수갑 수백 개가 내걸리는 등 수위가 예전보다 심해지고 있지만, 체념한 상태라고 하소연했다.

 

심한 욕설이 난무하고 시끄럽게 하더라도 법의 테두리 내에서 집회‧시위가 진행한다면 달리 막을 방도가 없다는 것을 마을주민들이 ‘이제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마을에서 30여년 살았다는 60대 주민은 “초반보다는 집회‧시위가 나아졌지만 여전히 보수단체 회원 3~4명이 시위 중이며 저급한 욕설은 계속되고 있다”며 “이제는 거의 체념했다. 마을 사람들이 항의하니 (상대가)대화가 안 되는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8일 경남 양산 하북면 평산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인근 도로에 한 보수단체 회원이 최근 설치한 모조 수갑이 걸려 있다.   뉴스1

이 주민은 “우리 마을이 언론에 자꾸 거론되면서 괜한 반감을 살까봐 사실 염려스럽다”며 “조용히 살고 싶다는 분한테 시위대는 욕만 하고 있고, 이런 상황을 해결할 마땅한 방법이 없는 게 답답할 뿐”이라고 했다.

 

사저 인근에 사는 도예가 신한균(63)씨는 “지금 주민들이 많이 지쳐 있다. 우리 같은 시골사람들은 매일 개구리 울음 소리만 듣고 살았는데 이런 집회‧시위는 익숙하지 않다”며 “지금 평산마을은 180도 바뀌었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이웃사촌으로 왔기에 원망할 수는 없다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이 그저 안타깝다”고 하소연했다.

 

평산마을에 온 지 6년째인 예성수(63)씨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없던 노이로제가 생겼다. 경찰의 집회 금지 통고 이후에도 상황이 크게 달라진 건 없다”며 “주말에는 극성 시위가 많아 몇몇 주민은 이를 피해 다른 가족 집으로 피신 아닌 피신을 가는 형편”이라고 토로했다.

 

지난달 25일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에 보름째 주차중인 문 전 대통령 반대 단체 집회 차량. 양산=연합뉴스

그러면서 예씨는 “지난 3일에 국가인권위원회에 이런 집회‧시위를 막아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썼는데 아직 연락은 받지 못했다”고 했다.

 

10일 평산마을 주민 대표격인 10여명의 마을개발위원들이 한자리에 모이기로 했다. 

 

최근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태와 관련해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한다.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시위를 막을 수 없다는 걸 알지만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문 전 대통령 귀향 후 홍역을 치르고 있는 평산마을에 평화가 언제 다시 찾아올지 세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